헌법, 대통령을 파면하다
헌법, 대통령을 파면하다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7.03.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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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된 광장 화합할 새로운 지도자 필요
[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Cover Story] 박근혜 대통령 탄핵인용

 

헌법, 대통령을 파면하다

분열된 광장 화합할 새로운 지도자 필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헌법재판소는 3월 10일 11시, 대심판정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언했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은 5월 9일로 확정됐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화합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권의 흐름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된 현직 대통령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이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에 울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시작된 지 21분 만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인용되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던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소속 여야 위원들은 그제야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권선동 법제사법위원장은 숨을 크게 몰아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 국회 측 변호인단과 일일이 악수했다. 대통령 측 이동흡(전 헌법재판관) 변호사와 채명성 변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서류를 챙겨 심판정을 빠져나갔다. 이중환 변호사는 선고가 끝나고 나서도 3~4분간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결의해 헌재로 넘긴 지 91일 만에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됐다.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익 추구에 직접 관여하고 이 사실을 줄곧 은폐하며 국회와 언론의 의혹 제기 자체를 비난해 왔다는 것을 가장 중대한 탄핵 사유로 꼽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 씨의 개명 이름)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며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어 “피청구인은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 수색도 거부했다”며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헌재는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헌재는 세월호 참사 책임, 언론 자유 침해, 공무원 임면권 남용 등 국회가 제기한 나머지 탄핵 사유는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통령의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에 대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탄핵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의 사장 해임을 압박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증거가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을 해임해 헌법상 직업 공무원제를 침해했다는 것도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숙제로 남은 두 개의 광장 통합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 결정을 인용하자 여야는 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박 대통령 파면 선고에 대해 대체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내놨지만, 일부 의원들은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 집회에 참석하기로 하는 등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안명진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3월 10일 여의도 당사에서 “자유한국당은 헌재의 고뇌와 숙의를 존중하고 인용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킨 집권여당이자 국정의 동반자였다”면서도 “하지만 집권당의 책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지금까지 국민이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국격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존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박 대통령의 파면 소식을 ‘국민의 승리’라고 반기면서 ‘헌재 결정 승복’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헌법 재판소에 인용이 된 것에 대해 “위대한 국민께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추미애 대표는 탄핵 선고 뒤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 결정 승복과 적폐 청산·정권교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문재인 전 대표 등 대선 후보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숭고하고 준엄한 가치를 확인했다”며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역사는 전진한다. 대한민국은 이 새롭고 놀라운 경험 위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헌재의 결정을 ‘시민혁명’으로 치켜세우며 향후 정국 과제로 통합과 개헌을 제시했다. 

 
대통령 파면이 결정되자 헌법재판소 앞에 모인 시민들은 환호와 탄식,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민저항본부는 탄핵 인용 발표 다음 날인 3월 11일,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제1차 탄핵 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어 탄핵 무효를 위한 불복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기존의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는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국민저항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헌재 결정에 대한 국민적 투쟁에 나서고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모아 신당 창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관용 저항본부 대변인은 “헌법재판관 9명을 새로 지명해 다시 탄핵 여부를 심판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신흥 부패권력으로 떠오른 언론과 검찰, 국회를 해체하고 국민혁명을 구체화하기 위해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최 측은 이와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박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 과정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했다. 

 
촛불집회는 축제 그 자체였다.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는 주최 측 슬로건처럼 가족 및 연인과 함께한 시민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같은 날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모이자! 광화문으로! 촛불 승리 20차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를 열었다. 20번째이자 마지막 촛불집회였다. 시민들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한편으론 변화를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앞서 퇴진행동은 별도 기자회견을 열고 새 사회에 대한 희망과 정치·경제·사회·문화 10개 분야에 대한 개혁 요구를 담은 ‘2017촛불권리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인용됐지만, 분열된 사회는 좀처럼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내부적으로 분열되고 찢어진 국민의 마음은 정치권의 통합 노력에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대선 모드로 돌아선 정치권과 달리 여론은 분열돼 선거기간 내내 진통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통합되려면 ‘법치주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나아가 이번 탄핵 사태를 시민사회를 성숙시키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조언도 남겼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대통령 탄핵 여부에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졌다.

대한민국 미래 위해 차기 정권이 짊어진 과제와 이를 심판할 국민


박 대통령의 파면 이후 대한민국에는 많은 과제가 남았다. 우선, 국론이 분열되고 세대 간 갈등이 초래된 현 사태를 화합할 차기 대통령이 필요하다. 또한, 지난 9년간 퇴행된 정치를 복원시키는 한편 두 번 다시 ‘최순실 국정 농단’ 같은 전근대적 사건이 재현되지 않도록 담보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한 개헌 이슈와 검찰·재벌체제 개혁 등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국론분열과 세대 간 갈등을 초래하는 신호탄이 됐다. 이에 각 대선주자는 국민을 화합할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지난 3월 14일, 첫 지상파 TV토론에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일고 있는 국론분열과 갈등을 통합하기 위한 제각각의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 후보 측은 이날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민통합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 대선주자 안철수 전 상임 공동대표는 “이번 탄핵은 분열이 아닌 통합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통합의 힘은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민주적 결정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고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4당 원내대표 역시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면서 국론분열이 이어지는 것과 관련해 국민통합을 호소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탄핵 결정 직후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국민 사이에 반목과 질시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심지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국회에 국민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박 대통령 파면은 국민이 이룩한 결과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TF)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을 두고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통해 빛났다’고 평가했다. FT는 지난 3월 12일, 사설을 통해 “지난해 말 한국의 충격적인 부패 스캔들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자기 나라를 부끄러워했다”며 “이제 그들은 자랑스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FT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대중의 분노에 응답하고 정당한 법 절차에 근거해, 한국이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번창한 나라라는 신뢰를 강화했다”면서, “전 세계에서 위협을 받는 자유 민주주의에 힘을 실었다”고 평가했다. FT는 “한국이 전 세계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모델이자, 일대에서 지정학적 핵심 플레이어가 되려는 순간에 섰다”며 “차기 대통령에게 많은 것이 달렸다”고 사설을 맺었다. TF의 사설처럼 국민은 민주주의에 한 발 더 다가섰고, 이는 차후 국가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대학원장은 “이번 탄핵은 기존 시스템이 아닌 국민저항권의 발동에 따른 ‘초일상의 정치’의 결과물”이라면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완성됐고, 경제민주화가 과제라고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원점에서 다시 정치·경제 민주주의를 함께 이뤄야 하고, 누가 집권하든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권은 시민사회 요구를 면밀하게 살펴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 시민은 광장에 나올 테고, 정치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5월 9일로 확정됐다. 차기 대통령은 국민을 화합하고, 정체돼있던 한국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분명한 건 앞으로 국민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광장에 나오고, 정치를 심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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