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도어 민희진 대표와의 갈등 극복이 당면 과제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대기업 집단 등극 속 주어진 과제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HYBE)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자산 5조 원을 넘기며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 집단)이 됐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는 최초의 일이자 지난 2020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코스피에 상장한 지 4년도 채 안 돼 이뤄낸 성과다.
1994년 가요계 입문 후 세계적 프로듀서로 등극
하이브 지분 31.57%를 보유한 방시혁 의장은 이번에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방 의장은 국내 문화·콘텐츠 종목에서 독보적인 주식 부자 1위다. 기업분석 전문 업체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방 의장은 2조 6,302억 원의 주식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994년 서울대 미학과 시절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아 가요계에 발을 들인 방 의장은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창의성 총괄 책임자(CCO)의 눈에 띄어 1997년부터 JYP 대표 작곡가로 활약하며 히트곡을 쏟아냈다. god의 ‘하늘색 풍선’과 ‘Friday Night’, 비의 ‘나쁜 남자’,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2AM의 ‘죽어도 못 보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그의 작품이다.
이후 2005년 JYP에서 독립해 자신의 회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그는 2013년 방탄소년단을 데뷔시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프로듀서가 됐다. 미국 빌보드가 영향력 있는 음악업계 인사를 뽑는 ‘빌보드 파워 100’에 네 번 이름을 올렸고,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미국 레코딩 아카데미에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함께 회원으로도 뽑혔다.
2021년 3월 하이브로 사명을 변경한 뒤, 그 해 4월 하이브로부터 기존 빅히트의 레이블 사업부문을 단순·물적분할해 ‘빅히트 뮤직’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멀티 레이블 시행에 돌입했다. 상장으로 조달한 막강한 자본력을 지렛대 삼아 국내외 엔터 시장에서 공격적인 다각화로 ‘범위의 경제’ 구현을 노려 기존 레이블 지분 매입과 신규 레이블 설립, 지분 투자 등이 숨 가쁘게 이뤄졌다. 사명 변경 전 인수한 여자친구의 쏘스뮤직(2019), 세븐틴의 플레디스·지코의 KOZ엔터테인먼트(2020)와 함께 미국 연예기획사 이타카 홀딩스(2021), 미국 힙합 레이블 QC미디어홀딩스·라틴 레이블 엑자일 뮤직(2023) 등을 인수하며 몸집을 키우며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공고히 했다. 2018년 CJ ENM과 합작해 세운 빌리프랩은 작년에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제 하이브는 단순한 음악 회사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위 빌리브 인 뮤직(We believe in music)’이라는 슬로건 속에 음악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 실제 사업 부문이 레이블 외에도 다각화 된 상태인데, 솔루션 영역에는 공연의 ‘하이브360’, 지식재산권 ‘하이브IPX’, 게임 ‘하이브IM’, 오디오의 ‘수퍼톤’ 등이 있다. 플랫폼 영역에선 ‘위버스컴퍼니’가 세계 최대 팬 플랫폼 위버스를 운영 중이다. 국내 4대 기획사 중 JYP를 제외하고 하이브 레이블은 물론 SM·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들이 이 플랫폼을 이용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브는 지난해 국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2조 원을 돌파했다.
높아진 위상 속 사회적 책임 요구
하이브의 대기업 지정은 국내 엔터테인먼트의 높아진 위상이 공인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미 K-팝을 선봉으로 한 엔터테인먼트가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기여한 점은 인정됐으나, 여전히 산업적으로는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하이브가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주면서 일부 우려를 불식시켜 준 것이다.
다만 대기업 지정 이후 방 의장의 사내 리더십과 하이브의 업계 리더십은 더 큰 도전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출자제한과 기업집단 현황공시 등 대기업집단 시책이 적용된다. 각계각층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더 엄격해지고, 좀 더 책임감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또한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얽히고설킨 난맥상을 풀어내는 위기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하이브는 그동안 엔터테인먼트사로서 덩치를 크게 키워와 현재 11개 멀티 레이블을 운영하며 연결 대상 종속기업만 65개에 달한다. 이러한 멀티 레이블은 세계 음반 시장 1위 국가인 미국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 잡은 시스템이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뮤직 그룹과 같은 세계 3대 음반사는 이런 구조 속 수많은 레이블들을 거느리면서 전 세계 음악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 경영진과 핵심 레이블 중 하나로 뉴진스가 속한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갈등으로 인해 해당 시스템에 대한 각종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에도 무속 경영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인사 무시 논란, 불법 감사 논란 등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갈등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멀티 레이블 체제는 정체성이 겹치지 않고 상호 독립적인 여러 아티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한다는 부분에서 강점이 있다. 특정 아티스트의 군 입대 등에 따른 매출 공백이 발생할 우려를 낮출 수 있어 경영진 입장에서는 손익 통제력도 확보할 수 있고, 개별 레이블에서 상호 경쟁하며 각자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만큼 양질의 지식재산권(IP)을 다수 확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대기업 집단은 중앙집권적 시스템이라 각사를 존중해야 하는 구조인 멀티 레이블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방 의장과 하이브가 셈법이 복잡한 운영 방식을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대기업 집단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CEO)는 최근 1분기 실적 발표 기업 컨퍼런스콜에서 “멀티 레이블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극복하고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안을 통해 멀티레이블에 의문 가질 수 있겠지만, 고도화를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할 지 고민하며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대기업이 되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강조된다. 하이브는 방탄소년단과 유니세프와 함께 하는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세븐틴이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함께 전개 중인 ‘고잉투게더(Going Together)’ 같은 사회적 캠페인을 이미 진행 중이다. 앞으로 대기업에게 필수가 된 ESG 경영에도 더 힘을 실을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음반 판매 생태계 개선에 대한 요구도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희진 대표와 하이브 경영진 갈등 사이에서 부각된 랜덤 포토카드와 밀어내기 등 K-팝의 고질적인 병폐를 하이브가 앞장서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랜덤 포토카드는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과 여러모로 유사한 형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초 확률 조작이 사실로 밝혀진 게임사에 과징금 100억 원 이상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는 작년 K-팝 기획사의 포토카드 ‘끼워팔기 혐의’에 대해서도 현장조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