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도 건드리지 못한 국내 기업들
최순실도 건드리지 못한 국내 기업들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7.03.03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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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최순실도 건드리지 못한 국내 기업들

반듯하거나 어려운 기업은 외면한 미르·스포츠재단

 

재벌도 공범이다. 이 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반발한 국민들이 촛불시위 때 내걸었던 문구 중 하나다. 최순실은 53개 대기업에서 미르·스포츠재단 출연금 명목으로 774억 원을 뜯어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기업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의 기로에 서있다. 그런데 최순실이 접근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 비선실세를 피해간 기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강요에 이어 자금 뜯긴 국내 유수 기업들


국정 농단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최순실. 그는 무려 53개 대기업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명목으로 774억 원을 뜯어낸 혐의가 있다. 특히 정부 입김이 강한 포스코나 KT, 민원이 많은 재벌을 상대로는 모금 외에 회사 인수와 인사 청탁 등 각종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 12월 6일은 재계의 치욕적인 날이었다. ‘5공 청문회’가 열렸던 1988년 12월 이후 28년 만에 재계의 총수들이 대거 청문회 자리에 섰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재벌 총수 9명이 호출됐다. 이날 재벌 총수들이 모인 국회 본청 245호실에서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명목으로 거액을 투자한 여부가 조사됐다.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2015년 말~2016년 초 두 재단의 설립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최순실과 안종범에게 적용한 혐의는 ‘강요’다. 기업들이 재단 설립에 필요한 돈을 내는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증인들은 강제성을 일부 인정했다. 안종범의 지시로 직접 기업들에게 모금을 독려한 이승철 전 정경련 부회장은 기존에 설립된 재단과 미르·K스포츠재단과의 차이를 묻자(최교일 새누리당 의원) “여러 가지 세세한 부분을 청와대가 많이, 이렇게 관여하셨다는 게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강제성이 있었느냐고 되묻자 “그런 청와대의 지시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별로 할당을 받아서 그 할당한 액수만큼 저희가 낸 것으로 사후에 제가 알았다”고 말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청와대 요청을 우리 기업이 거절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기업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재단 출연 요청을 거부해 불이익을 받았단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 미르에는 자금을 출연하고, K스포츠에는 출연하지 않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5월 2일 오전, 갑자기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조직위원장직을 그만두란 통보를 받았다. 조 회장은 “이유는 묻지 않았다” “임명권자의 뜻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말했다. 도종환 의원은 이에 대해 “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을 거절한 게 해임의 원인으로 작용했단 일각의 의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그룹은 출연 요청을 받고도 K스포츠에 돈을 내지 않은 유일한 기업이다. 조 회장은 “대표이사가 와서 (미르에 낸 것에 더해) K스포츠에 또 추가로 하라고 해서, 저희 그룹이 평창조직위에 약 650억 원을 스폰서를 하고 있었고 또 저 자신을 비롯해서 40명의 한진그룹 직원이 평창조직위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같은 스포츠인데 또 돈을 내야 되느냐, 한 번 좀 알아 봐라 그렇게 코멘트를 했더니….”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좋은 먹잇감에도 뒤탈날 우려 있으면 빨대 못 꽂았다


지금까지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최순실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명목으로 국내 유수 대기업에 강제로 자금을 취득했다. 또한,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보복차원의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르던 최순실이 건드리지 않은 기업이 있다. 자금 사정이 넉넉한 KT&G와 농협중앙회 등은 아예 접촉하지 않았고, 현대중공업 등에는 기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고 전해진다. 국정감사를 받는 공기업들도 기금 출연 대상에서 빠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KT&G는 최순실의 좋은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2002년,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민영화된 실적 좋은 회사다. 5,800억 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15년 1조 3,600억원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1만 5,000원이었던 주가는 현재 10만원 안팎을 오르내리며 시가총액 17조원으로 코스피 시장 15~20위를 기록 중이다. KT&G보다 2년 먼저 민영화된 포스코는 주가가 한때 70만 원을 웃돌았으나 지금은 20만 원대 중반으로 줄었고, 1년 먼저 민영화됐던 KT는 15년 새 주가가 반 토막 났다. 또한, 이 회사는 담뱃세를 통해 사실상 가격 결정권을 가진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최고 실세였던 최씨 입장에선 이권을 챙기기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가진 기업이다. 하지만 KT&G 측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이 기부금을 챙기던 재작년 말부터 작년까지 최씨나 재단 측에서 한 번도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검찰의 한 관계자도 “최씨는 뒤탈이 우려되는 곳은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 측에서 ‘빨대’를 꽂을 만한 인사가 내부에 없었을 뿐더러 자칫 강제 모금을 했다가는 잡음이 생길 수 있는 기업 KT&G 였다.

 
KT&G 최고 경영진은 박근혜 정권 내내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2013년 정권 출범 직후 경찰은 당시 민영진 사장을 겨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사장에 오른 민 전 사장이 연임에 성공한 직후였다. 이 사건에 연루됐던 민 전 사장 등 회사 임직원 6명은 이듬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1년 뒤인 2015년 KT&G는 다시 수사를 받았다. 이번엔 최정예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수사를 담당했다. 두 번씩이나 수사를 받게 된 민 전 사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6개월간 수사를 받다 구속됐다. 재임 시절 협력업체와 회사 관계자, 해외 바이어에게 청탁을 받고 현금과 명품 시계 등 금품 1억 7,900만 원어치를 챙긴 혐의였다. 하지만 민 전 사장은 작년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에서 각종 명목의 금품 수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민 전 사장으로 끝날 줄 알았던 수사는 예상을 깨고 계속됐다. 검찰은 민 전 사장 후임인 백복인 사장에 대해서도 취임 5개월 뒤인 작년 3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그제야 백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 안팎에선 “현 정권에 밉보인 기업인을 찍어내기 위한 수사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 전 사장뿐 아니라 신임 백 사장 역시 정부와 코드가 맞는 인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민 전 사장이 사표를 내자 후임 사장으로 청와대 등은 백 사장이 아니라 다른 후보를 원했다고 한다. KT&G는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사내외 공모를 통해 사장 후보자를 내정한다. 당시 청와대와 경제 부처 등에선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의 미국 대학 동문인 외부 인사를 신임 사장으로 밀어달라고 사장후보추천위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G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밀었던 후보는 결격 사유가 적지 않았다”면서 “사장 선임에 계속 개입하면 그 내용을 폭로하겠다는 사장후보추천위원도 있었다”고 했다.

 
KT&G는 민영화 이후 정치인이나 관료 등 ‘낙하산’ 사장이 부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백 사장도 1993년 입사 이후 전략, 마케팅 부서 등을 거친 내부 승진자였다. 따라서 용도가 불투명한 자금 모금을 추진했던 최씨나 안 전 수석 입장에선 고분고분하지 않은 KT&G에는 아무리 챙길 이권이 많다 해도 접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와 인연이 없거나 경제가 좋지 못한 기업 못 건드려


최순실은 400조 원대 자산을 굴리는 농협중앙회에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농협중앙회는 2016년 1월, 회장이 바뀌었다. 8년간 재임했던 최원병 회장이 물러나고 김병원 회장이 대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최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등학교 동문으로 지난 정부 실세들과 친분이 깊었던 반면, 현 정부와는 인연이 많지 않았다. 호남 출신 첫 민선 농협 회장이 된 김 회장은 선거 당시 현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청와대는 영남권의 다른 후보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김 회장은 당선 직후 부정선거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작년 7월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에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러자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편파적인 수사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수뇌부가 정권과 거리를 둔 농협중앙회 역시 최 씨 측이 기부금을 강요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다. 

 
경영 사정이 좋지 않아 위기를 모면한 대기업도 있다. 오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그렇다. 현대중공업은 오너가 있는 10대 재벌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최순실 게이트’를 피했다. 당초 최 씨 측은 현대중공업에도 기금 출연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재무 상황이 너무 나빠 줄 돈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과 2015년 각각 3조원과 1조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한때 5위를 기록했던 이 회사 시가총액이 30위 밖으로 밀려나는 설움을 겪을 때였다. 현대중공업과 함께 세계 조선업계를 주름잡았으나 지금은 불황에 시달리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는 최 씨 측이 아예 기금 요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우조선 정성립 사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최씨에게 재단 모금과 관련해 어떠한 요청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최 씨는 국내 자산 규모 2위와 4위인 한국전력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과 시중은행에도 기금 출연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기업은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지만 국회 국정감사 대상이어서 출연 기금이 잘못 사용되면 야당 등에 들킬 가능성이 높으며, 시중은행들은 자산의 상당 부분이 고객 돈이기 때문에 각종 성금이나 기부에 제약이 많은 편이다. 일각에선 최 씨와 안 전 수석 등이 재단 기금 출연 대상 기업을 사전에 기획·선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뒤탈이 예상되거나 뻣뻣한 기업은 처음부터 모금 대상에서 제외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씨는 현안이 많고 약점이 있는 재벌 기업이나 대표 임면권이 사실상 정권에 있었던 포스코나 KT를 상대로는 다른 기업보다 더 많은 이권을 챙겼다. 최씨는 포스코를 상대로 재단 출연금 49억 원을 받아내고 광고 계열사를 강탈하려 했으며, 펜싱팀을 창단해 최씨가 운영하는 더블루케이가 펜싱팀 매니지먼트를 맡는 약정을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포스코는 전임 정준양 회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폭로가 이어졌고, 현 권오준 회장도 최 씨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회장 교체기마다 정치권 개입 논란이 있다. 최 씨는 KT를 상대로 18억원 기금을 출연받은 것 외에도 가까운 인사를 임원으로 취직시키고 자신이 실소유한 회사에 68억원 규모 광고를 받아냈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국내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서야하는 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 측에 약점이 많은 기업은 당했고, 오히려 깨끗하고 당당한 기업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기업에 끊을 수 없는 부정의 뫼비우스 띠를 씌울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례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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