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에 죄의식 사라졌다
솜방망이 처벌에 죄의식 사라졌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5.17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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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성매매, 강도, 방화 등 2년 새 48% 급증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Juvenile Crime] 청소년 강력범죄

 

청소년 범죄에 대해 더 엄격한 처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웬만하면 법적 처벌을 하지 않거나, 강력범죄까지 솜방망이 처벌이니 죄의식은 없고, 경각심도 경종도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은 죄를 지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13세 청소년, 즉 ‘촉법소년’을 포함해 만 13세까지를 ‘사리분별이 완전하지 못한 형사 미성년자’로 규정, 이들의 범죄는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있다. 소년범인 만 14~18세 범죄 역시 성인범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상례다.


 

되풀이되고, 대담해지는 범죄양상
서울소재 A중학교에 다니는 H군은 만 12세이던 2010년 특수절도 혐의 등으로 네 차례나 검거됐지만, ‘부모가 교육하라’는 식의 보호처분만 받고 풀려났다. 법적으로 죄를 지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觸法)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만 10~13세 소년을 지칭하는 법률 용어로 형사처벌 대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재범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보호처분’이다. 형법 9조는 촉법소년을 포함해 만 13세까지를 사리 분별이 완전하지 못한 ‘형사 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용서’에 익숙해진 H군의 범죄는 더 대담해졌다. 2011년 4월 또래 여중생을 성폭행해 경찰에게 붙잡혔지만 피해 여중생이 피해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면서 또 풀려난 것이다. 이에  H군은 친구들에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했고, 같은 해 9월 친구 6명이 합세해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했다.
중학교 2학년 P양은 2010년부터 작년까지 또래 중학생 두 명에게 세 번이나 성폭행을 당했다. 2010년 연말, 알고 지내던 중학생 K군이 성폭행했다. 하지만 당시 12세였던 K군은 형사처벌을 면하고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만 받았다. 이 일이 또래 학생들에게 알려지자 작년 8월 K군의 선배가 P양을 두 차례 성폭행했다. 그러나 K군의 선배는 경찰에 구속됐다. 만 14세 생일을 갓 지나 형사처벌이 가능한 ‘소년범’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구속은 됐지만, 성인범죄자 보다는 훨씬 낮은 형량이었다. K군의 선배는 경찰 진술에서 “후배가 성폭행하고서도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처벌받지 않을 것으로 알고…”라고 진술해 큰 충격을 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들의 범죄행위는 더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하철 안에서 여중생의 몸을 더듬고, 강간까지 하려 한 혐의(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제추행 등)로 J군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J군은 지난 10일 퇴근 시간인 오후 5시 40분경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서 뚝섬유원지역까지 약 12분간 A(13)양을 추행한 뒤 역내 화장실로 끌고 가 강간까지 하려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J 군은 이전에도 같은 범죄를 저지른 이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이 일로 청소년 강력범죄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대가 변해도 청소년 범죄 관련, 법·제도는 30년 전 수준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검찰의 청소년범죄 처리건수는 2005년 6만 7,000여명에서 2008년에는 13만 4,000명을 기록했다. 매년 10만 명 선을 오르내리는 수치로, 각종 소년범죄 중 살인과 성매매, 강도, 방화 등 강력범죄는 2년 새 48%가 급증했다. 이들 중 중학교 2학년~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14~16세 청소년의 범죄가 평균 35%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에 폭력 등 비행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촉법소년들의 범죄 가운데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비율이 2010년 기준 13% 이상을 차지했다. 청소년 범죄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현실은 보호처분으로 ‘부모나 친지 관리’가 대부분이고, 살인 등 극악범죄의 경우도 소년원에 보내 2년 정도 수감교육에 그친다. 하루하루가 급하게 달라지는 세상에 청소년 범죄 관련, 법과 제도는 30년 전 그대로라 현실과 괴리가 큰 것이 사실이다. 요즘 13~14세 청소년들의 체격과 정신연령이 성인들 못지않은 수준임에 비춰봤을 때 법은 이들을 철부지로 보는 수준이다. 선진국의 경우 소년범죄에 대해서도 온정주의보다는 엄격주의를 적용하는 추세다. 미국의 일부 주는 형사처벌 면제 대상이 만 7세 미만, 영국은 만 10세, 네덜란드는 만 12세 이하로 분류돼 있다.
국내 법 규정의 맹점을 악용하는 범죄까지 생기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촉법소년 수는 2005년 6,060명에서 2009년 1만 1,609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우리 법체계에서 촉법소년에게 적용되는 '죄와 벌'의 균형은 현격하게 어긋나 있다. 검찰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촉법소년의 범죄 가운데 강도·강간 등 강력범죄 비율은 전체의 13.1%에 달한다. 하지만 2007년 이후 3년간 서울가정법원이 촉법소년에게 한 보호처분 중 51.8%가 ‘부모나 친지가 관리하라’는 1호 처분이었다. 소년원에 보내는 9·10호 보호처분은 0.4%에 불과했다. 살인 등 극악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도 소년원에 2년간 보내는 게 고작이고, 웬만한 범죄에는 '보호자에게 감호 위탁' 등 가벼운 처분이 부과되고 있는 실정이다.

 

네티즌 ‘소년법 폐지 혹은 개정이 필요하다’
청소년 강력범죄가 급증하면서 이를 보다 강력하게 처벌 할 수 있도록 소년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 됐다. 2011년 12월 2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사이트 청원게시판에는 ‘소년법 폐지 혹은 개정이 필요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글쓴이는 대전에서 지적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고등학생 16명이 법원으로부터 전원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사실을 들며 만 14세 미만에 형 집행을 할 수 없게 한 소년법 조항을 문제로 들었다. 그는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온갖 이유를 들어 보호해주는 이상한 법이 바로 소년법이다. 이 덕에 청소년들은 점점 더 법을 우습게 알게 된다. 법의 보호 아래 강력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고 비판했다. 또 미국에서 권총강도를 한 십대 여학생들이 초범인데도 10년 이상의 형을 받은 사례를 비교하며 “최근 뉴스에서는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하루건너 하나씩 소개된다. 소년법은 이제 악법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전과자 양산을 막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소년법 조항이 ‘솜방망이 처벌’로 전락했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년법 폐지·개정에 동의하는 글을 남겼다. 아이디 jjo**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나 요즘은 어린 나이에 별의별 것 다 아는 시대다. (법이) 더 강력해 질 수 없나”, A3****는 “소년법을 폐지할 때가 온 듯하다. 애들이 점점 미쳐가고 악랄해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wis***도 “소년법의 근거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멋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하는데, 현실은 소년법이 어떤 건지 알고 악용하는 청소년들이 너무 많다. 정말 뭣도 모르고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소년법으로 보호된 가해자들에게 자행되는 네티즌의 보복범죄가 ‘사법의 공백’을 파고들 가능성을 경고한 이도 있었다. win****는 “소년법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시대에 맞는 사법적 조치가 미흡하다보니 함무라비 법전식 징벌이 온라인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근본적인 해결책 강구해야 할 때’
한편 전문가들은 소년법 폐지·개정에 대한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는 쪽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 공감하는 전문가들은 소년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예방처우연구센터 소속 김지선 박사는 “법원에서 부모와 아이를 불러와 훈계 및 경고만 하고 돌려보내는 조치인 소년법 1호 처분을 폐지하거나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박사는 “실제로 1호 처분은 교화 효과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보호관찰제도의 경우에도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진숙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은 “소년 범죄가 갈수록 ‘저연령화·흉포화’하는 데다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법을 어긴 가해자가 법의 혜택과 보호를 받는 경우는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은정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검사도 “영미권 등 선진국에서도 소년범에 대한 온정주의 정책이 청소년 범죄의 확대를 초래한다는 반성이 일면서 엄격주의로 돌아가자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어른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승헌 한국소년정책학회 상임이사는 “청소년에게 가혹하게 형벌은 가하는 것은 성인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사실 소년범죄를 들여다보면 황금만능주의 같은 성인사회의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상임이사는 소년원이나 소년교도소에 보내면 외형상 재범률이 낮게 집계돼 보일 수 있지만, 사회에 돌아가면 더 나쁜 죄질의 범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한순간의 실수로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끊어버리면 도리어 괴물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청 범죄예방위원인 고금자 경기대 교수도 “처벌보다는 가해학생들을 장기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인성교육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청소년 범죄를 처벌로 근절할 수는 없다. 소년법 보호·관찰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속적인 상담을 실시하는 등 사회와 가정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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