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61’번, 투지의 승부사 박찬호
영원한 ‘61’번, 투지의 승부사 박찬호
  • 임성희 기자
  • 승인 2012.04.27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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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의 비상은 지금부터다!”
[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한화이글스에서 활약 중인 박찬호(38) 선수는 MBC TV ‘주병진 토크 콘서트’ 첫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털어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지난 해 오릭스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후 국내 복귀 의사를 밝혀 국내 야구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자신의 야구인생을 국내에서 마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던 그에게 한화구단은 그를 조건 없이 특별 지명하도록 하는 ‘박찬호 특별법’을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 요청해 그의 국내 복귀를 도왔다. 대전에 살고 있는 황준상(27) 씨는 “태어날 때부터 한화를 응원한 한화의 골수팬으로서 박찬호 선수의 국내복귀를 환영하고, 박찬호 선수를 항상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불혹을 앞둔 나이까지 야구를 생각하는 그의 도전과 열정에 야구팬들은 아낌없는 애정을 보내고 있다.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를 달성한 투지의 승부사,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를 만나봤다.

 

한국 미운드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데?

“요즘 정말 정신없죠. 한국에 들어온 이후 이것저것 정말 바빴습니다. 그래도 ‘한국프로야구에서 뛰고 싶다’라는 바람이 이루어져 너무 좋고, 매 순간 올 한 해 한국프로야구에 어떠한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올해 펼쳐질 한국에서의 야구생활 역시 저에게 더 많은 배움의 시간을 안겨 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척 즐겁고 설레요.”

 

 

얼마 전 한국 복귀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는데?
“그날 경기 전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겠다’는 결의를 했어요. 아침부터 후배들이 ‘선배님 오늘 꼭 이길 겁니다’하고 격려해 줬는데 너무 고마웠어요. 또 저를 투수로 만들어 주신 전 공주중학교 오영세 감독님이 시구를 해 주시고, 부모님도 경기장에 와서 직접 경기를 보셨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뻤어요. 특히, 두산 이종욱 선수가 헬멧을 벗고 인사를 해줬고 나 역시 답례로 인사를 전했는데, 그 장면이 나에게는 의미가 컸던 것 같고 고마웠습니다. 그때 메이저리그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어요. 그때 저도 모자를 벗었는데... 이종욱 선수에게 답례하는 뜻도 있었고, 팬들과 한국야구에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날 경기는 야구를 떠나서 의미 있고 감동적인 경기였습니다.”

 

가장 고마운 선수는?
“다들 고맙지만, 신경현 선수가 고마워요. 최근 몸이 안 좋아 2군에 있다가 올라와서 정신이 없을 텐데 경기 전 모든 선수들을 모아 결의를 다지기도 하고 제가 던질 때는 더 잘해보자고 용기를 주더군요. 볼 배합이라든지 리드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90%정도는 일치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포수를 믿고 공을 던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한화이글스 입단 소감과, 구단 내의 생활은 어떠한가요?
“한화 구장에 21년 만에 온 것 같네요. 고향에 온 기분이고 어릴 적부터 생각하던 팀의 유니폼 입고 다른 선수들과 함께하니 같은 팀원이라는 기대감과 설레임들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긴 시간동안 해외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과 문화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이에 따르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현재는 서로 돕고 경험을 공유하며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후배들에게는 프로진출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선수들은 저에게 국내 적응에 많은 도움을 주며 생활하고 있어요. 올해 한화 분위기를 즐거운 쪽으로 끌고 가고 싶어요. 제가 홍성흔(롯데)처럼은 못하겠지만 류현진이나 김태균 같은 후배들을 잘 활용해 보려고요(웃음)."

 

공주 출신, 박찬호 선수만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충남 공주 인근 시골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 가서 자신 있게 촌놈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남들이 미련하다고 할 만큼 우직하고 묵묵히 훈련에 임해온 지난날들이었어요. 그 ‘촌놈의 힘’이 지금의 박찬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박찬호 선수의 학창시절을 소개해 주신다면?
“존경하는 오영세 감독님과 인연을 맺은 중학교 시절을 잊을 수 없어요. 그때 처음으로 야구와 관련된 지독한 훈련을 시작했거든요. 주변일대의 산이라는 산은 죄다 뛰어다니는 맹훈련을 연일 지속했죠. 그 시절 오 감독님께서 자의 재능을 알아보시고 중 2때부터 투수훈련을 시켜주셨어요. 제 투구 폼을 많이 고쳐주시기도 했고요. 오 감독님 개인적으로는 제 포지션을 바꾸는 일로 어려운 일을 당하기도 하셨지만 제 미래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죠. 지금의 박찬호는 오 감독님의 이러한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고교 야구 라이벌이었던 천안 북일고와의 추억도 기억이 납니다. 공주고와 북일고는 충남 대표 자리를 높고 늘 치열한 대결을 벌였죠. 그때는 정말 이기고 싶은 마음뿐 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라이벌이 있어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학창시절 박 선수만의 독특한 훈련법이 있다는데?
“고등학교 때 근처 공동묘지에서 혼자 했던 담력 쌓기 훈련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담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와의 싸움에 돌입했죠. 처음에는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무작정 뛰어다니기만 했어요. 하지만 매일 밤 훈련을 거듭하며 어느새 담력이 커져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무엇이든 직접 부딪혀보면 해결책이 보이고 덩달아 자신감까지 붙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한양대 진학한 이후, 메이저리그 진출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어요.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많았고 그 당시 한양대학교 측에서는 자신들의 선수를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미국에 보내는 것에 대해 걱정도 많이 했고요.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야구 시스템도 다르고 정말 모든 것이 달랐어요. 제가 잘한 선택인가 하는 생각을 매일 밤 수도 없이 했죠. 하지만 제 꿈을 향한 다짐을 되새기며 참고 또 참아냈습니다.”

 

메이저리그 첫 승한 날이 기억 나시나요?
“1996년 4월 7일이었죠. 미국 생활 2년 4개월 만에 거둔 첫 승이었죠. 진눈깨비가 흩날리며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었는데 부상당한 마르티네즈를 대신해 갑작스레 마운드에 오르게 됐습니다. 아직 몸도 덜 풀린 데다 긴장과 추위가 겹쳐 정말 오들오들 떨었죠. 하지만 정말 이를 악물고 공을 던졌습니다. 첫 타자 새미 소사를 삼진으로 잡으며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고 4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아내며 첫 승의 기쁨을 만끽했죠.”

 

메이저리그에서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을 하셨나요?
 “1995년 자만심에 빠져 메이저 리그로 가지 못하고 마이너 리그에 간 적이 있어요.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 기자회견을 하며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한 터라 스스로 더욱 비참한 기분을 느꼈죠. 정말 솔직히 말하면 마이너 행은 저에게 벼랑 끝과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그때 비로소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열심히 해나가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급하게 여러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오를 수는 없다’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늘 가슴속에 되새기며 메이저 리그에서 뛸 준비를 다시 차근차근 해나갔죠. 그리고 마음속에서 ‘자만심’이라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마음가짐을 점차 없애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순서를 밟아 정상으로 가는 것이 정도라는 큰 교훈을 얻었어요.”

 

일본에서의 1년을 평가한다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보낸 시간을 후회하지 않아요. ‘실패’가 아니라 ‘도전’과 ‘깨달음’의 시간이었죠. 1군에서 더 많이 던져서 감동도 안기고 승수도 많이 챙겼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승엽 선수가 했던 만큼의 역할을 못 해서 팬들께 죄송한 마음도 갖고 있어요. 미국과 다른 일본의 야구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교훈은 무명 선수들의 애환을 새삼 깨닫게 됐다는 점이죠.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마이너리그에서 땀과 눈물을 흘렸던 시절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일본프로야구의 화려함만 맛봤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오로지 1군만을 그리며 운동하는 2군 선수들의 마음을 다시 이해하게 됐어요.”

 

연봉 모두를 ‘유소년 야구발전’을 위해 기부해 화제가 됐는데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머니께서는 늘 남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어요. 이 말씀을 늘 마음속에 새기며 항상 주변을 살뜰하게 챙기려 노력해왔습니다.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 역시 그 일환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전례를 남겨 국내프로야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기도 했었지요.”

 

지금도 땀 흘리며 노력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운동선수라고 해서 운동실력만 출중해서는 안돼요. 한계가 있죠. 인성교육과 지식습득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이 있는 사람에게 미래는 희망이며 기쁨이다’라는 말을 꼭 가슴속에 새겼으면 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각자의 소중한 꿈이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진정한 ‘별(star)'이 될 수 있는 것이죠.”

 

앞으로의 경기 계획은?
“투수코치님과 상의해 투구 수를 계획하고 있어요.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 적응기가 될 수도 있지만, 편한 마음을 갖고 피칭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몸 컨디션은 상당히 좋아서 현재는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고 1승이든, 5승이든, 10승이든 다치지 않고 많은 경기에 나가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못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후배들은 저를 보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야구는 단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해왔고 세계적으로 실력이 입증 됐습니다. 이제는 세계 대회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과 상대해야하니 더 많은 연구와 공부가 필요할 것 같고, 이런 점에서 긴장감과 재미를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어떤 야구를 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한국에서 야구를 즐겁게 해 본 적이 없어요. 지도자들은 모두 선수들에게 야구는 전쟁이라고 했지요. 승패에 따른 보상도 극과 극이었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즐거움에는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계획한 결과를 내는 것, 목표를 정해 내가 얼마만큼 준비하고 그걸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어요. 철학이 있는 즐거운 야구를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국내 마운드에 설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무척 영광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꿈을 향해 달려오며 많이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지독한 외로움을 못 견뎌 스스로 무너질 뻔 한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꿈을 향한 열정이었습니다. 노력하면 자신의 목표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을 믿고 여러분도 희망찬 꿈을 가지고 노력해 나가시길 빕니다.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강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테니까요.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를 잘하고 싶고 야구를 발전시키고 싶은 제 꿈이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말이죠.”


취재/임성희 기자  정리/김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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