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된 2016 촛불집회
100만 촛불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된 2016 촛불집회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7.01.03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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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100만 촛불이 모여 거대한 횃불이 된 2016 촛불집회 

폭력 사라지고 질서와 자정능력 갖춘 문화의 장으로 발돋움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시민의 힘으로 일궈낸 결과라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유례없는 평화적인 범국민적 촛불집회가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웠고, 국민주권 회복의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연대와 책임의 원리가 사라지고 분열해가던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의를 평가했다.



민주주의, 촛불로부터 다시 일어서다


촛불집회는 항의나 추모를 목적으로 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주요방식이다. 특히 한국에서 촛불집회는 ‘촛불문화제’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야간시위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제약을 넘어서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시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가 집단시위나 저항행동의 주요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촛불집회가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창 월드컵 열기에 도취되어 있던 지난 2002년부터이다. 2002년 촛불집회는 미군장갑차사건 이후 가해 미군이 무죄평결을 받으면서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주도했다. 당시 촛불집회에는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이 참여했고, 각종 시국회의와 종교계의 추모의식이 잇달았다. 2008년 촛불집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내용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의 모임에서 출발하여 100일 이상 계속됐고, 약 2개월간은 연일 수백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했으며 7월 이후에는 주말집회가 지속됐다. 집회가 계속되면서 내용이 교육, 대운하, 공기업민영화, 정권퇴진 등의 이슈로 확대되기도 했다.

 
새로운 시위방식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특정 이슈로 모인 촛불집회는 촛불운동, 촛불민주주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자체가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는 광장의 문화가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 내고 시민의 정치적 힘을 행사하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는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러나 제도적 대안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한계도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 낸 것이 바로 ‘2016년 촛불집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적 촛불집회의 열기로 달아올라 있다. 최순실 씨는 정·관계 인사에 관여하고 예산을 움직였으며, K·미르 재단을 만들면서 기업인들을 압박했다. 딸 정유라씨는 특혜로 이대에 입학한 것이 확인됐다. 이 같은 국정 농단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은 지체없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2015년 11월 백남기 농민의 살수차 사망 사건 등으로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많았기 때문에 불 번지듯 규모가 빠르게 커져나갔다. 2016년 10월 29일 시민 2만 명이 참여해 시작한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의 성의 없는 사과와 미흡한 후속 조치로 11월 26일 전국적으로 190만 명이 모여 크게 증가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5차 촛불집회에 서울에서 150만 명(주최 측 추산·경찰 추산 27만 명), 전국에서 190만 명(경찰 33만 명)이 모이면서 헌정 사상 가장 많은 참가자가 모인 집회로 기록됐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촛불민심은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구속을 요구하며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한 회에 200만 명 가까운 시민들이 운집하고 있는 촛불집회는, 전국에서 100만 명이 모였던 ‘6월 항쟁’ 1987년 6월 26일과 비교해도 거의 2배에 이른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열린 그 동안의 촛불집회에 전국에서 4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20여일 간 진행됐던 6월 항쟁 집회의 연인원 500만 명에도 곧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촛불집회와 6월 항쟁은 민주주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비폭력 집회’라는 점에서 촛불집회가 차별화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참여연대’의 박근용 사무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촛불집회는 6월항쟁처럼 역사가 증명하듯 국민의 힘을 보여준 결정적 사건입니다. 민주주의가 훼손됐을 때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바로잡고자 하는 건강한 우리 사회의 능력이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신명나는 문화의 장으로 진보한 촛불집회  


헌정 사상 역대 최다 인원이 참석한 촛불집회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고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또한 이번 촛불집회는 새로운 시위 및 집회문화를 만들어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엄중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하나의 축제로 거듭났다. 특히 전국 190만 명이 모인 지난 2016년 11월 26일의 5차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문화축제’의 장이 됐다. 노래와 그림과 퍼포먼스가 있는, ‘1박 2일 하야가 빛나는 밤’이라는 이름의 문화제였다.

 

5차 촛불집회의 장관은 ‘1분간 소등행사’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주제로 열린 이 퍼포먼스는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은 대한민국의 어둠을 걷어내는 저항의 행사를 통해 전 국민의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 기획됐다. 밤 8시 광화문광장에 모인 130만 시민들은 카운트다운에 맞춰 모든 촛불을 껐다가 1분 뒤 다시 불을 밝혔다. 예술가들도 촛불집회의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5차 촛불집회에서는 오소연·정영주 등 뮤지컬배우 32명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곡 ‘나 여기 있어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민중봉기의 상징인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임옥상 화백은 ‘백만백성’이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백만백성’ 퍼포먼스는 검은 아스팔트에 하얀 천을 깔아 직위가 없는 백만 민초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뜻으로 기획됐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한문까지 500m에 이르는 하얀 천이 깔렸고, 임 화백은 시민들의 발언을 그 위에 담았다.

 

11월12일의 3차 집회 때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조PD 등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발언과 공연이 이어졌다. 이승환은 자신의 노래 ‘덩크슛’의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열창했다. 가수 안치환도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사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개사해 불러 눈길을 끌었다. 가수들의 출연은 모두 자발적으로 이뤄졌으며 출연료도 전혀 없는 형태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음향과 조명 등 무대장치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됐다.



또한 이번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상징물들도 의미를 더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는 파란색의 대형 고래 풍선이 집회 현장을 헤엄쳤다. 고래의 등에는 학생들을 상징하는 인형들이 노란 배와 함께 올려졌고, 꼬리에는 노란 리본이 달렸다. 고래 풍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고래를 타고 가족 곁으로 돌아오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아 세월호 관련 단체들이 제작한 것이다. 경찰 차벽을 옭아매던 밧줄이 사라지고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꽃스티커’가 차벽에 붙은 것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주로 ‘집회의 차단’을 의미하던 경찰 차벽을 꽃벽으로 승화시켰다. 만들어진 꽃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많았다. 꽃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비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꺼지지 않는 촛불’도 등장한 것도 화제거리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LED(발광다이오드)촛불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촛불’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불을 밝히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기도 했다.

 

또한 집회 현장에 참여한 시민들은 풍자와 패러디의 형식으로 현 세태를 지적하는 데 동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패러디한 ‘퇴근혜’, 국정 농단 세태를 꼬집는 ‘하야 순시려’,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매를 빗댄 ‘하야하그라’ ‘국격을 새우그라’ 등이 쓰인 피켓도 등장했다. 집회 알바를 동원해 보수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어버이연합을 ‘어부바연합’이라고 풍자한 깃발이 펄럭이기도 했다. 주최 측은 박 대통령이 여주인공의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제곡을 틀기도 했다.

 

집회를 찾아 분노를 쏟아내고 싶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분노배설소’를 찾아 ‘박근혜 두더지’가 적힌 두더지를 때리는 ‘두더지게임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인 ‘우병우 때리기’ 게임에도 참여했다. 박 대통령 모형을 체포하는 ‘박근혜 체포단’도 현장에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단순히 무거운 시위나 집회의 틀에서 벗어나 일종의 문화현상으로 진화한 이번 촛불집회는 대중문화 적으로 큰 발전을 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한 문화평론가는 “폭넓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서 집회문화가 달라졌고, 과거의 집회가 싸워서 이겨야 하는 투쟁의 형식이었다면 지금의 촛불집회는 하나의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자정능력 갖춘 비폭력 평화 시위


매 주말마다 열리고 있는 이번 촛불집회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비폭력과 자정능력이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혼돈 속에서도 차분히 질서를 지켰다. 최근의 집회 양상을 살펴보면 경찰 차벽에 올라간다거나 폭력성을 나타내는 집회 참여자에게 ‘하지마’를 외치며 폭력을 근원적으로 차단했고,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자발적인 청소는 물론이고 경찰 차벽에 붙인 스티커까지 회수하는 모습들이 확인됐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이승훈 사무국장은 “지난 촛불집회들은 폭력성도 띄었을 뿐만 아니라 운동권이 집회를 주도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감도 적지 않았지만 이번 집회에서는 순수한 뜻을 가진 국민들이 하나 되어 거리에 나섰습니다”라며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주체성을 갖기 시작하고 자정능력을 갖춘 비폭력 집회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번 촛불집회에 대해 “민주주의와 한국 정치에 대한 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며 이념과 정책을 초월해 전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2016년 10월 19일부터 현재까지 연인원 약 745만 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세계적 관심사가 된 촛불집회가 두 달을 훌쩍 넘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라고 할 수 있다. 

 

1,50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지난 2016년 12월 9일,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광장의 위대한 촛불이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언론의 반응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하나둘씩 광장에 모인 촛불은 옆 사람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며 전국으로 활활 타올랐다. 수만 명의 시민으로 시작한 광장의 촛불은 수십만 명에서 100만 명으로, 6차에는 230만 명 이상의 들불로 번졌다.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낸 주권자의 승리는 광장에 모인 촛불의 힘이라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한편 촛불집회를 기획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탄핵안이 가결되기는 했지만 박 대통령 퇴진이 확정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새로운 역사가 된 이번 촛불집회가 퇴색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모든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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