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사례로 돌아본 대통령 탄핵과 하야의 역사
국내외 사례로 돌아본 대통령 탄핵과 하야의 역사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6.12.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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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국내외 사례로 돌아본 대통령 탄핵과 하야의 역사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하야 정국 본격화

 

 

 


비선실세로 떠오른 최순실 씨와 관련된 논란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며 관련 집회가 연일 서울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탄핵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와 같은 고위 공무원의 위법행위에 대해 국회가 법원에 심판을 신청해 처벌을 받게 하는 일이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거나 스스로 하야하는 사례가 흔치는 않다. 그러나 전례가 없었던 일도 아닌 만큼 국내와 해외의 과거 사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탄핵의 위기 앞에 놓인 대통령


탄핵제도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별도의 절차를 통해 죄를 따져볼 수 있게 한 제도이다. 다시 말해서 일반 사법절차로는 소추나 처벌이 어려운 정부의 고급공무원이나 신분이 강력하게 보장되어 있는 법관 등에 대하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바에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제도를 뜻한다. 

 
탄핵제도는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로부터 비롯하여 14세기 말 영국의 에드워드 3세때에 확립된 제도인데, 우리나라도 제1공화국 ‘헌법’이 이를 규정했다. 현행 ‘헌법’ 제65조 제1항에,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제2항에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공무원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탄핵결정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되고, 소추의결서가 송달되면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

 
탄핵심판은 소추위원이 소추의결서의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함으로써 개시되고, 탄핵사건의 심판은 변론의 전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종합하여 정의 및 형평의 원리에 따라 행한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결정하는 데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탄핵결정은 탄핵대상자인 공무원을 공직으로부터 파면하는 데 그치지만, 그 공무원의 민사상·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탄핵결정을 받은 자는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으면 다시 고급공무원이 될 수 없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논란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는 이와 같은 탄핵에 대한 목소리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마저도 탄핵과 하야를 촉구하는 여론이 결집되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던 노년층도 하야 요구에 가세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같은 여론은 실제 행동으로 결집되고 있는데. 박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다. 수십만 명의 평범한 시민이 거리에 나온 모습이 마치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재현한 듯한 모습이라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국 대학의 교수와 학생이 너나없이 시국선언을 하고 나선 것도 민주화 이후의 보기 드문 풍경으로서 그동안 끓고 있던 국민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와 국민이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악화되는 여론으로 인해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면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내려지기까지 대통령 권한은 정지되고 총리가 대행한다. 헌법재판소는 180일 이내에 탄핵심판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한다. 헌재가 이를 받아들이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르게 된다. 국회 처리부터 선거까지 모든 절차를 거치려면 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탄핵은 성사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새누리당 의원이 129명으로, 여당에서 최소 29명의 이탈표가 나오지 않는 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없다. 또 헌재가 탄핵을 결정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9명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보수 성향’ 인사여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탄핵의 역사


국내 대통령 탄핵의 유일한 사례는 지난 2004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하고 측근비리를 막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탄핵소추안을 상정했다. 이 탄핵소추안은 야당 의원 대부분의 찬성으로 가결됐고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2004년 3월 12일부터 2004년 5월 14일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고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한 결과, 법률 위반은 일부 인정되지만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만큼 중대한 사유라고 할 수 없다며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 찬성 의견으로 기각을 선고했고 노 전 대통령은 5월 14일 63일 만에 대통령 집무에 복귀했다.

 
해외에서도 대통령 탄핵은 종종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지난 8월 말 자리에서 물러났다. 브라질 호세프 전 대통령은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연임까지 성공했지만 정부회계 부정 조작과 경제악화 등 여러 악재로 강제 퇴진당하는 불명예를 썼다.  

 
또한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은 2012년 6월22일 아순시온에서 벌어진 경찰과 빈농 간의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탄핵됐다.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 파카스 전 대통령은 후원자였던 러시아 사업가에게 리투아니아 시민권을 임의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2004년 4월6일 탄핵됐고 1997년 2월6일에는 에콰도르의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이 신체적·정신적 무능력을 이유 취임 6개월만에 탄핵 당했다.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힛 전 대동령은 2001년 7월,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2000년 11월, 베네수엘라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 모두 부패 혐의로 탄핵의 불명예를 입었다.

 
미국의 경우 아직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은 없지만 지금까지 3명의 대통령이 탄핵소추의 대상이 됐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8년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설에 휩싸여 탄핵소추를 받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대통령측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 도청을 했다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탄핵소추를 받았다가 표결 직전 하야했다. 앤드류 존슨 전 대통령은 1868년 '공무원 임기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역사상 최초 탄핵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됐다. 


 

▲최근 탄핵된 브라질 호세프 전 대통령

 

계속되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


탄핵과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下野) 요구도 계속되고 있다. 하야란 정계에서 물러나는 것을 뜻하는데, 사전적 의미로 시골에 내려간다는 의미로 관직이나 정계에서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는 주로 국가원수가 임기를 마치기 전에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으로 통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건국 후 모두 3명의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했다. 가장 먼저 하야 선언을 한 사람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지난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4·19 혁명이 일어난 결과로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4월 26일 하야 담화를 발표하고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당시 수석 국무위원이었던 허정 외무장관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바 있다. 같은 해 6월 국회에서 정부 형태를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됐고 이후 7월 29일 총선을 통해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의 제2공화국 들어서게 됐다.

 
당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간의 대립이 지속됐는데,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생한 이후 윤보선 대통령은 군사정변 이후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나 군부와 갈등을 빚으며 두 차례 하야를 발표했다가 번복하는 것을 되풀이했다.

 
결국 1962년 3월 22일 최종 하야 성명을 발표한 윤 전 대통령은 이후 권한대행 절차 없이 군정이 이어받아 1963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이 선거에서 박정희, 윤보선 후보가 맞붙어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며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됐다.

 
이어서 세 번째로 하야한 대통령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다.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이 된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의 12·12 사태로 실권을 잃었다. 결국 신군부의 압박으로 1980년 8월 16일 하야 선언하며 역대 최단기 재임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후에는 당시 대통령 간선기구인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를 거쳐 전두환 육군 대장이 대통령에 취임했다.

 
해외에서도 대통령 하야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국부로 추앙받던 샤를르 드 골 전 대통령이 1968년 5월 파리 학생혁명과 이듬해 지방자치제와 상원의 개혁안에 대한 국민투표 부결을 계기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중단한다”라는 말을 남긴 채 1969년 4월28일 하야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상대방 선거운동본부를 불법으로 도청한 사실,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이 밝혀지면서 탄핵위기에 몰리자 1974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하야했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지지율은 24%였다. 이에 못지않게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또한 심상치 않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5%라는 한 자릿수까지 곤두박질치며 추락했다. 역대 최저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인 6% 기록마저 갈아치운 것이다. 지지율이 정권의 생명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상식을 고려할 때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생명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보통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 혹은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치 체제와 문화가 상이하지만 일본과 이탈리아, 영국 등의 여러 해외 사례를 보면 지지율 하락은 결국 대통령이나 총리의 사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같은 현재 여론에 힘입어 ‘최순실 게이트’라는 초유의 상황에 대선주자들의 입장도 강경해지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을 향해 최후통첩을 하거나 퇴진을 직접 요구하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직접적인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2선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박 대통령을 겨냥한 ‘하야·탄핵 정국’의 길로 들어선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사태 수습을 위한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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