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요구, 검은 시위
이유 있는 요구, 검은 시위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6.12.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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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도윤 기자]
이유 있는 요구, 검은 시위

임신중절수술 합법화가 여성인권 신장임을 외치는 사람들

 

▲ⓒ불꽃페미액션

 

폴란드에서 ‘임신중절수술 전면 불법화’에 반대해 대규모의 ‘검은 월요일’이 일어났다. 이에 폴란드 정부는 임신중절수술 전면 불법화를 폐지했지만, 시위 여파는 곧 전 세계로 확산되어 국내 검은 시위의 모델이 됐다. 한편, 남미에서는 루시아 페레스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이 촉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검은 시위가 등장해 관심이 집중됐다.

 

 

What is ‘검은 시위’?

예로부터 검정은 죽음을 상징해왔다. 최근 국내에 등장한 ‘검은 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시위 참가자들은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는 팻말과 함께 어두운 계열의 의상을 입었는데, 그 이유가 여성들의 자궁에 애도를 표한다는 뜻을 담기 위함이었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11월2일까지 입법예고한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예외 상황을 제외한 다른 이유로 임신중절수술을 할 경우 의료인의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반발한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보건복지부의 개정안 발표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임신중절수술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태도에 지난 10월 1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서 ‘검은 시위’가 처음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임신중절수술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시위는 부산, 광주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다. 국내 검은 시위에 대해 아일랜드 사회당 페미니스트 그룹인 ROSA는 한글로 ‘#검은 시위’라고 쓴 팻말을 든 사진을 게시했고, 아일랜드 Razem도 페이스북에 “저는 한국 생각과 달리 임신중절수술을 더 억압한다고 출생률이 증가하지 않는다”며 국내 검은 시위를 지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폴란드와 한국에서 일어난 검은 시위가 임신중절수술 불법화에 반대해 등장했다면,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검은 시위는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10월 19일,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난 ‘검은 수요일‘은 세 명의 남성이 16세 소녀 루시아 페레스를 강제 마약 투약, 성폭행과 고문 후 살해한 사건이 만천하게 공개되면서 비롯됐다. 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폴란드와 한국의 검은 시위 참가자들처럼 어두운 의상을 착용했으며, “Ni Una Menos(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팻말로 자신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특히, 루시아 오빠가 SNS에 남긴 글이 빠르게 전파되면서 시위 역시 남미 전역으로 확산됐다.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는 서윤(가명)은 “임신한 여성에게만 임신중절수술과 관련된 죄를 씌우는 것은 여전히 사회가 여성을 비주류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임신중절수술 합법화와 여성인권의 상관관계

국제앰네스티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10명 중 4명의 여성은 ‘낙태’가 금지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모자보건법상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1995년부터 임신중절수술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즉,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으로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등은 모자보건법에서 열외기 때문에 합법적인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임신 24주 이내에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 되며, 성폭력일 경우 반드시 형사고소나 검사가 기소해야만 임신중절수술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국내 검은 시위 참가자들은 태아의 인권보다 여성의 인권을 우선시해야 되며, 이를 위해서는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신중절수술 합법여부가 여성의 생명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 루마니아에서 임신중절수술 금지를 시행한 1966년부터 1989년까지 사회를 살펴보면 매년 500여 명의 임산부가 사망했다. 그 원인은 임신중절수술 불법으로 인한 불법 임신중절수술로 발생한 합병증 때문이었다.
 

  외국의 경우 낙태가 강력하게 제한된 아일랜드와 폴란드를 제외한 유럽국가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보험적용도 가능하다. 또한, 경구 낙태제로 알려진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을 허가하고 있다. 국내 검은 시위 참가자들이 도입을 요구한 미프진(Mifegyne)이 미페프리스톤을 뜻하며, 핀란드에서는 2009년 행해진 임신중절수술의 84%가, 스코틀랜드는 70%가 이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상용되고 있음에도 임신중절수술이 불법인 한국에서는 미페프리스톤 도입 논의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 심지어 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임신중절수술을 한 병원 네 곳을 고발해, 시술을 거부하는 병원이 늘어났고, 중절수술 비용이 치솟자 중국산 경구 낙태약이 불법 유통돼 부작용을 야기한 바 있다. 
 

  산부인과의 한 관계자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미페피르스톤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불꽃페미액션에 소속된 도윤(가명)은 “과거 남성피임약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지만 중단됐다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성에게는 당연한 피임약이 남성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논리가 성차별이라고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임신중절수술에 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태아의 존엄성과 여성의 존엄성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종교계, 정치계, 여성계 등 어떤 시각으로 봐라보는지에 따라 의견이 나눴었다. 태아의 생명을 지키면서 여성의 신체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좀 더 적극적인 피임 교육과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재고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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