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헐크 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
[단독 인터뷰] 헐크 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6.11.01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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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헐크 이만수, 라오스 야구 전도사 되다

그가 전하는 새로운 야구 인생의 2막 


 

▲ⓒ 박경보 기자

 

 


평범하길 거부했던 그라운드 위의 이만수


1982년 첫 출범한 KBO 리그는 그동안 30년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 해왔다. KBO에서도 지난 2011년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이해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을 선정한 바 있다. 야구인과 언론인, 그리고 팬들의 투표로 결정된 10명의 레전드 선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이는 포수 부분의 이만수 이사장이었다. 긴 프로야구의 역사에서 10명의 선수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으니 이만수 이사장은 예나지금이나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실력은 두 말 할 나위 없으며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도 이만수 이사장은 그라운드에서 평범하길 거부했다. 

  헐크라는 애칭을 가졌던 현역 시절 그가 홈런을 치고 어린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펄쩍 뛰는 모습은 아직도 팬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으며,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에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속옷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뛰며 세레모니를 펼치며 스포테인먼트를 몸소 실천해왔다. 또한 대한민국 야구에도 그가 남긴 족적은 크다. 특히 이만수 이사장은 최초의 기록과 인연이 많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 1호 안타, 홈런, 타점을 기록한 선수이며 KBO 최초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 1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 이만수 감독은 야구의 본거지인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MLB 코치 자리에 오른 것은 물론, 심지어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 시절에는 한국인 코치로서 최초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기도 했다. 평범함을 거부했던 헐크 이만수 이사장, 여전히 많은 야구팬이 그를 기억하고 아끼며 인정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돌려주고 싶어


2014 시즌 이후 SK 와이번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잠시 국내 야구계와 떠나있었던 이만수 이사장이 지난 9월 28일 인천 문학구장의 그라운드를 다시 밟았다. 한 평생 평범하길 거부했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을 찾았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국가인 라오스 아이들을 데리고 문학구장을 찾은 것도 생소한 모습이지만, 이만수 이사장은 야구의 불모지인 라오스에서 현지 최초의 야구단인 ‘라오 브라더스’를 만들고 구단주의 자격으로 방문했기 때문이다. 국내 야구계를 떠나있는 동안 그는 라오스 야구 전도사로서 현지 야구 문화 발전과 저변확대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라오스 정부에서도 이만수 이사장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 10월 8일 생드안 라짠타푼 교육체육부장관이 총리를 대신해 훈장 수여하고 양국간의 스포츠 교류에 대한 긴밀한 논의도 이어졌다. 국내 강연활동 및 행사, 야구를 통한 재능 기부, 그리고 라오 브라더스의 구단주이자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으로 그라운드에서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헐크 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을 이슈메이커를 찾았다.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어린 이야기와 새로운 인생 2막을 이슈메이커가 함께 해보았다.      


Q. 지난 9월 28일, 2년 만에 리오 브라더스의 구단주 자격으로 SK 문학 구장을 찾았습니다. 감회가 어떠셨는지요?


- 이전까지 오랜 시간 드나들던 홈구장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묘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문학 구장의 모습도 많이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포근하고 좋았습니다. 

 

Q. 이번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의 방한 계기와 국내 야구장을 처음 방문한 라오스 선수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 이번 방문은 부산광역시 국제교류재단에서 라오스 선수들을 3박 4일 일정으로 초청해서 이뤄졌습니다. 문학 구장 방문은 제가 직접 구단에 요청을 했습니다. 라오스 선수들이 정식 야구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선수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에 깜짝 놀랐으며 TV로 볼 때보다 훨씬 멋있다고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국내 일정을 마무리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기 싫어 우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Q. 대다수가 야구와 라오스를 함께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라오스를 방문하게 됐으며, 직접 방문해서 느낀 라오스의 이미지는 어떠셨나요?

- 2013년 SK 감독 시절 지인으로부터 야구 불모지인 라오스에서 재능기부를 가능하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승낙을 했지만 이후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2014년 시즌이 끝나고 감독 퇴임 이후 아내와 유럽 여행을 준비했지만, 저도 잊고 있었던 제안을 아내가 기억하며 지도자는 사소한 약속도 지켜야 한다며 앞장서서 라오스행을 제안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라오스가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도 몰랐고 사회주의 국가이자 야구 불모지에서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순수했으며 야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헐크 파운데이션

 

 

 

Q. 야구 인프라가 전무한 국가다 보니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 국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야구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비를 털어 아이들에게 운동화부터 야구 관련 장비를 선물했지만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내 야구 관계자들과 지인들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사회가 냉정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제가 갈 길을 걸어갔고 이러한 저의 진심이 전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더욱이 제가 처음 라오스로 떠날 당시 일회성에 그칠 것이며 이미지 쇄신을 위한 쇼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현지 아이들의 경우에도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마음이 많이 닫혀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제 스타일대로 웃고 소리치며 아이들과 스킨십을 나누니 아이들과도 금세 친해졌습니다.

 

Q. 라오스에서의 어려움이 헐크 파운데이션 창립의 계기가 됐을까요? 그렇다면 향후 헐크 파운데이션의 행보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십니까?


- 맞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세 차례 10년을 내다보고 꿈을 키웠습니다. 첫 번째가 중학교 1학년 때 야구선수를 꿈꾼 것이며, 두 번째가 은퇴 후 미국에서의 10년을 꿈꿨고, 마지막이 귀국 이후 한국에서의 10년을 내다보고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라오스로 떠날 땐 2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꿈꿨습니다. 4,000평이 넘는 대규모 부지를 매입해 야구장과 운동시설, 학교를 짓고자 합니다. 저 혼자만은 할 수 없는 부분이며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를 시작으로 후배들이 이 프로젝트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1904년 질레트 선교사가 국내에 야구 문화를 전했듯이 라오스에서도 많은 아이가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를 위해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 지난 4월 사단법인 헐크 파운데이션을 창립했습니다. 더불어 라오스 아이들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재단을 통한 재능기부에 힘을 쏟을 예정입니다. 그동안 야구로 받은 사랑을 야구로 돌려 드리는 것이 제 인생 2막의 시작이자 최종 목표입니다. 

 

Q. 야구를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길 바란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이사장님께서 어떻게 처음 야구를 접하게 되셨나요?


- 남들보다 다소 늦은 시기에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야구부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들은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했는데 교내 방송을 듣고 친구가 함께 나가자 권유해서 따라가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제 야구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Q. 이사장님께서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모두가 프로라는 개념이 생소할 시기였습니다. 현역시절 이사장님이 느꼈던 프로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도 프로야구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프로가 뭔지도 몰랐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이건희 구단주가 창단식에서 선수들을 모아놓고 프로란 무엇인 것 같으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당시 제가 했던 답변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프로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지만 프로 선수로 뛰며 5년이 지난 후에야 제가 한 말의 의미와 책임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Q. 선수 생활 중 무수히 많은 기록들을 세웠습니다. 이 중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기록은 무엇이며 현역 시절 어떤 자세로 그라운드에 나섰을까요? 


- 아무래도 국내 프로야구 첫 안타, 첫 홈런, 첫 타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적 기록이 아닌 최초의 기록인 만큼 평생 기억될 기록이며 이는 후손들에게도 자랑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저는 현역 시절 단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는 없다고 생각했으며 이 부분은 강연활동에서도 가장 많은 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Q. 이사장님께 야구는 어떤 의미이며 본인의 야구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수 있는 장면이나 경기는 무엇입니까?


-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것은 야구입니다. 야구가 인생과도 너무나 비슷하기에 여전히 야구를 사랑합니다. 야구 하나로 평생을 먹고 살았고 과분한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야구는 제 인생의 전부이자 삶 자체입니다. 또한 제 야구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지금입니다. 이미 제 야구 인생은 9회말까지 지났고 현재 10회말을 맞이한 상황입니다. 여기서 끝낼 것인지 11회로 이어갈 것인지 중요한 기로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경보 기자

 

 

Q. 오랜 시간 이사장님을 응원해준 팬들과 이슈메이커 독자들에게도 전해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 평생을 응원해주고 아껴준 팬들에게 어떠한 말로도 전하지 못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오랜 시간 야구를 통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저도 이제는 야구를 통해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다시금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바이며 팬 여러분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이만수가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이슈메이커 독자들도 헐크 파운데이션과 라오 브라더스, 그리고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저를 응원해주시고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한 야구 인생을 살아온 헐크 파운데이션 이만수 이사장. 야구를 통해 부와 명예를 모두 누려봤지만 기쁨은 순간일 뿐 또다시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단을 설립하고 라오스는 물론 국내 수많은 도시를 오가며 재능기부를 통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도 이만수 이사장은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이런 뜻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아내와 가족이 자신을 성장 시키는 원동력이라 말하며 마지막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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