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안 숨어있는 역사를 발견하다
대구 도심 안 숨어있는 역사를 발견하다
  • 심가현 기자
  • 승인 2012.03.27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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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역사가 함축된 대구 읍성골목
[이슈메이커=심가현 기자]

Colorful Daegu & Travel

[대구 읍성골목 탐방]

 

[이슈메이커] 기차 창문 밖 겨울의 스산하지만 눈길을 끄는 풍경을 뒤로하고 잠을 청했다. 뒤척이다 두 시간쯤 지나서야 대구역에 도착했다. 추적추적 비가 오는 대구역에서 잠시 멈추어 미리 준비해온 자료를 확인했다.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짐작하고 큰 숨을 한번 몰아쉬고 발걸음을 뗐다. 지금부터 기자와 함께 보슬보슬 겨울비와 함께 대구 도심 속 숨어있는 역사의 장면들을 재현해보자.


대구 읍성로 태동을 살펴보다

대구의 중심 시가지인 동성로, 그곳이 읍성으로 칭하는 길 중 하나이다. 대구 읍성은 동서남북을 따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 네가지로 뻗어있다. 이렇게 대구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읍성에 대한 유래를 먼저 알아보자면 대구읍성(大邱邑城)은 조선 경상도 대구도호부(大邱都護府)에 있었던 읍성이라고 한다. 최초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교통상 요지인 대구에 읍성을 쌓게 하면서 요충지인 대구에도 토성으로 쌓았다가, 임진왜란 초 대구가 함락되면서 파괴되었다. 그 후 감영이 들어서게 되어 군사적 목적으로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조선의 흥선대원군 집권으로 서구 열강의 침탈을 대비하기 위해 크게 중수되었으나 일본의 침탈이 시작된 1906년 일본인의 상권을 확보해줄 목적으로 친일 관료에 의해 고종황제의 윤허도 없이 성벽을 허물었다고 한다. 성벽이 허물어진 자리는 도로가 되었으며 4성로(남성로·동성로·북성로·서성로)라 칭했다. 그러나 성 해체 후 성돌, 성문 등 모든 유적은 그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술인들이 꽃피운 거리, 북성로 향촌동

대구역 맞은편 길을 건너야 비로소 그 여정이 시작된다. 여정의 시작은 북성로 공구골목이다. 이곳 대구에서는 읍성골목이 관광지로 자리 잡아 있는지라 걷다보면 읍성골목 시티투어에 대한 안내를 자세히 볼 수 있다. 학생부터 외국인까지 다양한 코스와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구를 찾기 전 알아보도록 하자. 북성로를 따라 가다보면 오른 쪽 골목에 예술인들의 옛거리 향촌동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이곳은 대구의 행락업소가 가장 번창했던 지역으로 1950년 한국전쟁이 나면서 많은 문화 예술인들이 대구로 모여 전선문학의 꽃은 피웠다고 한다. 또한 전쟁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인 구상, 화가 이중섭 등 많은 예술가들이 지역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함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가 되었다. 백조다방, 목향, 르네상스 등이 유명하다.

도심 한복판 대구시민들의 쉼터, 경상감영공원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도심 한가운데 경상감영공원이 나온다. 경상감영은 경상도의 행정, 산업, 군무를 통괄하는 기구였다. 조선 선조 34년인 1602년 대구 포정동에 경상감영이 자리 잡은 후 대구는 영남지역의 중심역할을 담당해왔다. 지금의 경상감영공원은 중심에 자리잡아 삭막한 도심에서 대구시민들의 쉼터역할을 하고 있다. 경상감영공원과 맞은 편 우체국 거리로 걷다보면 대구 근대역사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일정 시간에만 문을 개방해 외부만 볼 수 있었지만 대구를 찾는다면 내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잘 알아보고 가기 바란다.

 

한약거리로 알려진 남성로 약전골목

조선 후기부터 개시되었던 한약재의 계절시장인 약전골목인 남성로를 찾았다. 골목 앞에서부터 한약거리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눈에 띠었다. 이곳은 개설조선 후기부터 경상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개시되었고 민족 항일기를 거쳐 광복 후 얼마 동안까지 대구 ‘약전골목’ 일대에서 봄·가을 두 차례 개시됐다. 우리나라는 물론, 만주, 중국, 아라비아,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로 한약재를 거래해 국제시장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골목에 깃든 한약냄새 덕분에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니 숨을 크게 쉬고 거닐어 보자.

역사의 흔적 3.1운동 길과 이상화 고택

약전골목 맞은 편 계산사거리를 따라 들어가면 매일신문사 맞은편에 3.1운동길을 볼 수 있다. 성당과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3.1운동길은 9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계단은 1919년 3월 8일 대구 조선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산병원 솔밭 오솔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현재는 동산병원 소나무숲과 오솔길은 사라졌지만 그 솔밭과 연결된 좁은 길은 여전히 3.1운동길로 불리고 있다. 매일신문사를 따라 우측 길로 가다보면 이상화 고택을 볼 수 있다. 계산동 2가 84번지에 위치한 고택은 항일문학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거주하던 곳이다. 한때 오래된 고택이 도로로 변할 위기에 처했지만 고택보존을 위한 대구 시민들의 100만인 서명운동으로 지금은 그대로 보존됐다. 그의 고택 입구에는 생전에 그가 지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의 글귀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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