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인생 2막’, 위기의 베이비부머
막막한 ‘인생 2막’, 위기의 베이비부머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3.27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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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부머 4가구 중 3가구 최소 노후자금도 없다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Social Focus] 베이비부머의 노후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들이 대거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대부분 노후 대책이 막막한 실정이다. 베이비부머란 한국전쟁 직후 출산율이 급증한 베이비붐 시기(1955~1963년)에 태어난 이들로 전체 인구의 약 15%에 달한다. 이들은 치열하게 살아온 만큼 안락한 노후를 기대해 왔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12월 1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통계청의 ‘2010년 가계금융조사’의 분석 결과, 베이비부머 가구주 370만 명 중 280만 명이 은퇴 후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산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 부양, 자식 교육에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꿔

대전지역 중소기업에 다니는 백 모(53)씨는 정년이 3년 남았다. 현재 8년째 거주하고 있는 32평 아파트 한 채(1억 3,000만 원), 몇 해 전 예금을 털어 사둔 충북소재 시골 집터(6,000만 원), 보험 몇 개가 백 씨 재산의 전부다. 그는 홀어머니 부양과 3남매 뒷바라지에 회사에 청춘을 바쳤지만, 정작 자신의 노후를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은 6년 전부터 붓기 시작한 연금저축이 고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년 작은딸 결혼자금으로 당겨써야 할 형편이다. 백 씨는 “매일 9시까지 출근하며 평생을 회사에 몸담는 동안 10시까지 잠 좀 실컷 자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그런데 정작 정년을 3년 앞두고 내 미래를 생각하니 단 잠은 고사하고 막막할 뿐이다”며 “먹고 살려면 날품팔이라도 나가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공무원 정 모(49)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정 씨는 내년이면 고3을 맞는 딸과 현재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외벌이 가장이다. 그는 현재 24평 아파트 한 채(1억 7,000만 원)와 준중형차(1,900만 원)를 보유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대학등록금과 두 자녀의 결혼비용까지 생각하면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월급(350만 원)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자녀 교육비로 할애하는 그는 “당장 내년이 걱정이다. 노후자금 준비는커녕 집마저 팔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게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지만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고민거리다. 이들 대부분은 직장을 다니며 부모를 봉양하고 자녀 교육비로 월급을 써 온 탓에 남아있는 재산이라곤 집 한 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씩 모아놓은 저축통장이 있지만 잔고는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베이비부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퇴직 이후 노후생활 준비가 돼 있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반면 준비가 안됐다는 응답은 절반 이상인 56%나 차지했다. 더불어 베이비부머들은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02년만 해도 30대의 68%가 ‘노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가족의 책임’이라고 응답했지만,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 노부모를 부양하겠다고 응답한 30대는 32%에 불과했다. 결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년 이후는 제 2의 치열한 삶이 펼쳐질 전망이다.

 

금융자산만으로 버틸 경우 3~10년 내 자금 바닥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자체 조사자료(가계자산 및 금융수요 실태조사 원시자료)와 통계청(사회조사, 가계동향조사, 가계금융조사), 한국투자자보호재단(펀드 투자자현황조사 원시자료)등의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가구의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자금은 현재 자산기준으로 3억 6,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1년 말 현재 베이비부머의 평균 총자산이 3억 3,775만 원인만큼 현재가격 기준으로 2,000만 원이 부족한 셈이다. 은퇴시점인 만 55세를 기준으로 27년을 더 산다고 보면 이들 베이비부머들의 생활에 필요한 자금은 적어도 월평균 148만 원에 이른다는 게 연구소 측의 분석이다. 특히 이를 가구 수로 환산했을 때 보유자산만으로 최소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베이비부머 가구는 2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원경 연구위원은 “최소한의 노후대비가 돼있는 가구는 4가구 중 1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생활비 충당도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51.7%는 은퇴 후 필요한 최소자금의 절반도 안 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가진 자산을 은퇴 시점까지 지킬 수 있는 가능성도 희박하다. 최소자금 3억 6,000만 원은 자녀 교육비와 결혼자금 등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자녀 결혼(평균 7,800만 원), 자녀 대학등록금(2,500만 원), 자녀 해외유학비(7,100만 원), 개인 창업(1억 2,600만 원) 등을 포함하면 노후를 위한 최소자금은 4억 9,000만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연구소는 최소자금도 보유하지 못한 가구는 은퇴 후 3~7년 이내 유동성 위기를 맞을 수 있고, 최소자금 이상을 보유한 가구도 10년 이내에는 비슷한 처지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유동성 위기까지 거론된 까닭은 베이비부머의 자산 가운데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이 20%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는 부동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 부동산을 먼저 내다팔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황 연구위원은 “현재 상태에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사회 불안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가구 소득증대와 소비지원, 근로기간 연장 등 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함께 금융권도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산구조 변화를 적기에 지원할 수 있는 종합자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믿었지만, 월 45만8000원 그쳐

서울에 거주하는 이 모(49)씨는 지금까지 10년 8개월분 국민연금 보험료 1,168만 3,000원을 냈고, 현재 월 소득액 168만원을 신고해 매달 15만 1,200원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이씨가 60세까지 앞으로 126개월분(1,905만 1,000원)을 더 납부할 경우 63세부터 받는 연금은 매달 45만 8,000원으로 노후 준비는커녕 기초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빠듯하다. 이 씨가 남성 평균 수명(2011년 현재 77.1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받는 연금수령액은 총 납부액의 2.5배 수준인 7,694만 4,000원이다. 문제는 이 씨가 받게 될 월 45만 8,000원이 우리나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후에 받을 연금의 평균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국민연금 미가입자를 포함한 평균 금액이며, 납부자 기준 베이비부머의 연금 수령액은 평균 59만원이다. 국민연금공단은 11월 27일 “전체 베이비부머 758만 2,000명 가운데 현재 연금 보험료를 내고 있는 373만 명을 분석한 결과 이 씨가 월 수령액, 보험료 납부기간, 현재 소득 수준이 모두 평균에 해당돼 노후 준비의 표준인으로 꼽혔다”고 밝혔다. 최근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노후 대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해법이 되기에는 미흡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그나마 연금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 베이비부머는 전체의 3분의 1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베이비부머 758만 2000명 중 연금 보험료를 10년 이상 납부해 노후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33.8%다. 40.9%는 보험료 납부 이력이 10년 미만이고, 25.3%는 단 한 차례도 보험료를 낸 적이 없다. 즉 베이비부머 세대의 70%는 제대로 된 노후대책이 없는 셈이다. 이미 조기노령연금을 신청해 받은 이들도 급증했다. 공단에 따르면 2010년 베이비부머 첫 세대인 만 55세 조기연금 신청자는 9,832명이었다. 2009년과 비교하면 8,714명 늘어난 수치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령빈곤을 걱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명예퇴직 등 노후 준비 없이 갑작스레 경제적인 타격을 받은 이들이 주로 신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단 측은 “연금을 받을 수 없는 베이비부머들은 가입기간을 늘리거나 납부 예외자․적용 예외자의 경우 다시 연금에 가입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노후대비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전에 일시적으로 받았던 연금을 반납하거나 무소득 기간의 연금보험료를 추후 납부해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기간인 10년을 채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정부의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연금보험료 납부 여부에 관계없이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석재은 교수는 “베이비부머는 국민연금 도입 이후 세대인데도 70% 정도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건 노후 보장 제도로서 국민연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라며 “이대로라면 전 세대의 ‘복지 부담’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석 교수는 “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을 축소하려 하고 있으나 오히려 국민연금과 통합해 연금의 보편성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는 노후세대의 복지대책 재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약계층 대책마련 시급

베이비부머 소득이 줄면서 생활수준 전반이 하향 조정될 것이라는 예상을 넘어 취약계층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직장 생활동안 목돈을 마련치 못한 많은 베이비부머는 은퇴 뒤 국민연금 외에 별달리 돈이 나올 구석이 없는 데다 재취업이라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경제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달 들어오는 임금 소득이 필수인데, 정부의 재취업 대책은 중고령자(55∼64세)보다는 고령자(65세 이상)에게 여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적절한 지원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재취업에 성공했더라도 퇴직 전 임금수준을 보장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피델리투자산운용이 2010년 7월에 낸 ‘은퇴백서’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 가계의 은퇴 뒤 희망 생활비가 은퇴 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목표소득 대체율은 62%였지만 은퇴 후 예상소득이 은퇴 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은퇴소득 대체율은 41%에 불과했다. 월 500만원을 벌던 사람이 은퇴 뒤 31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원했지만 실제 소득은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205만 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소득 자체도 기대에 떨어지지만 여기서 비롯되는 심리적 박탈감이 사회 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끼칠 수 있다. 노인 자살자수가 최근 10년간 2배 급증했고, 자살 충동을 느낀 노인의 41%가 그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 하는바가 크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최성재 교수는 “베이비부머들의 소득은 계속 늘었지만 자녀에게 많은 투자를 하다 보니 남아 있는 게 없다. 임금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오래 견디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다”라며 “은퇴 이후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사회적으로 재고용하거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에 앞서 노후를 새롭게 인식하는 ‘은퇴 준비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주역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됐다. 부모 부양과 자녀 교육의 짐을 어깨에 지고 살아온 이들의 고충을 덜어줄 대책마련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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