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국의 대표적 지성에게 시대를 묻다
[단독]한국의 대표적 지성에게 시대를 묻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3.27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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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대안 생명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Power Interview]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천자문을 목청껏 따라 읽으면서 스승에게 “왜 하늘이 검냐”고 물었다가 쓸데없는 질문 한다며 꾸지람을 들은 소년이 있다. 이 소년은 어느덧 팔순이 됐지만, 그의 생은 언제나 물음표로 가득 찼다. 평생 동안 그가 던진 수많은 질문 속에는 의문부호만 있는 게 아니다. 감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바로 前 문화부 장관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다. 올해로 팔순을 맞이한 그는 말한다. “저한테는 죽음까지도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묘비명에 ‘여기 죽음이 궁금하여 호기심으로 마지막 들여다본 한 인간이 잠자고 있다’ 이렇게 쓰일지도 모릅니다.”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사진제공: 열림원)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평론가, 소설가, 수필가, 언론인, 교수, 장관 등 그를 나타내는 직함이 셀 수 없을 정도다. 다양한 인생과 다양한 의문을 품고 살아온 그는 남보다 한발 앞서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예고하는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기반의 생명자본주의 시대 도래

6년 전 디지로그를 주장했듯, 현시대를 평가한다면.

“‘내가 지각은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 ‘디지로그’입니다. 당시 디지털이 아날로그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로 발전해야한다고 주장했죠. 이는 모바일, 스마트폰 등을 통해 현실화 됐지요. 스티브 잡스나 구글, 페이스북 등 앞선 상상력이 온·오프라인의 벽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현실과 사이버 세계가 공존하는 시대가 왔어요. 제가 최근 새롭게 던진 화두는 생명자본주의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쇼크이후 전 세계의 금융·산업자본 시스템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사회주의 소련 붕괴 후 자본주의가 엄청난 발전을 할 줄 알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의 반 월가 점령으로 촉발된 금융자본주의 반대 시위 등 오히려 더 큰 몸살을 앓고 있잖아요? 이제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으면 희망은 없습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좋은 제도이지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요.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유리그릇처럼 전체시스템이 한 번에 깨질 일은 없을 거예요. 후대에는 우리가 겪었던 물질적 산업금융시스템에 기초한 자본주의와 달리 평화, 생명, 사랑 이러한 가치가 모든 생산 수단과 목적의 토대가 되는 자본주의를 물려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주장하는 생명자본주의입니다."

 

생명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새롭습니다. 의미를 설명하신다면.

“생명은 보편적으로 다 쓰는 말이죠. 라이프, 리빙 모두가 관심 갖는 단어죠. 다만 자본주의는 경제학자들이나 정치·경제계에 계신 분들만 주로 쓰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자본은 단순히 돈 같은 물질 개념이 아닙니다. 김연아의 자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실력과 미모가 아닙니까. 스포츠 선수는 다리를, 탤런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신체를 보험에 가입하기도 합니다. 즉 물질화된 자본 말고 인간 자체가 가진 자본을 보자는 뜻 이예요.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모두가 생명 자본을 하고 있어요. 아이를 출산하고 무사히 키우는 것도 생명자본이죠. 저출산 고령화가 왜 일어났겠습니까? 애 낳고 기르는 걸 자본이 아니라며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까 툭하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기존 경제학에서 GDP만 올라가면 다 되는 줄 알고 이런 생명자본 부분을 제외해 버린 것이 뼈아픈 실책이었던 셈이죠.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의료, 문화, 농업 같은 인간의 삶과 의식에 대한 뭔가를 찾아보자는 의미예요. 이미 우리 전통에도 있어요. 품앗이나 계모임이 대표적이죠.”

 

시대를 읽어내는 혜안이 있으신데, 영감을 얻는 곳이 있나요?

“제 생각이 적어도 5년, 10년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상상력 때문입니다. 50년대 저항문학인 ‘흙속에 저 바람 속에서’는 전통사회에서 어떻게 근대화, 산업화 패러다임으로 바꾸느냐는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그 다음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탈산업화와 이념의 벽을 허물기’에 중점을 뒀죠. 우연의 일치인지 베를린 장벽과 함께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지켜봤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을 주장하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새천년 준비 위원장을 맡았을 때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2000년 1월 1일 새벽 0.2초 차이로 처음 태어난 어린이의 울음소리를 전 세계에 영상메시지로 전달해 ‘미래는 물질에서 생명으로’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것이 최근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맞물려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 주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인생의 수확기 ‘80프로젝트’ 추진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올해는 내 삶의 구슬 꿰기이자, 내 인생의 한 턴을 이루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수확기(Last harvest)로 삼을 계획입니다. 흩어져 있는 책들을 모아 정리할 예정인데, 평생 큰 구슬은 못 만들었지만 내가 사방에 만들어 놓은 작은 구슬을 꿰면 아주 다양한 삶의 무늬가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저를 포함해 올해 팔순을 맞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내는‘O-80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개인을 넘어 전체의 잔치가 되도록 신문, 방송, 출판, 연극, 영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팔순은 여태 것 꿈꿔 왔던 것에 대한 수확기가 될 것입니다. 소박한 꿈이라면 내 이름을 건 창조학교를 새롭게 운영해보고 싶어요. 현재 월요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좀 더 활성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제 머릿속 지식과 아이디어를 모두 쏟아놓고 싶은 생각입니다.”

 

나이를 잊은 ‘열정’의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비결이라면 ‘몰두’하는 거예요. 시간의 신은 한눈팔고 권태감을 느끼거나, 무의미한 삶을 살 때 인간을 늙고 나약하게 만들어요.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50대만 되도 노인행세를 하려고 하는 조로증에 걸리지요.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시간이 잠시 내게서 멈춰버린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헌데 시간이 어디 내 맘처럼 움직입니까? 저 역시 청춘시절에 비교하면 기력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감퇴했지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일은 몰라도 지적작업은 팔순까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참입니다.”

 

詩·소설처럼 읽히도록 성경 풀이

 

▲이어령 저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사진제공: 열림원)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란 책을

출간하셨는데, 간략한 소개 부탁합니다.

“성경은 수천 년 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베스트셀러’입니다. 종교 이전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요 소설이자 드라마, 생생한 철학을 담은 생명의 책으로 존재해 온 것이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 무신론자,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 지식인들이 마음을 비우고 성경을 읽어보면 우선 재미있고 드라마틱하고 속이 후련해진다고 합니다. 또한 사물을 바라보는 충격적인 시선을 경험하게 되죠.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성경을 수사학 텍스트로 강의해 왔어요. 제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웃고 박수치고, 어떤 때는 탄성을 질러요. 안 믿는 학생일수록 더욱 관심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회심 이후 강연을 통해 성경을 신학이나 교리는 잘 몰라도 문학으로, 생활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잇는 신간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에서는 성경을 문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즉 성경의 ‘빵’은 왜 ‘떡’으로 번역돼선 안 되는지 설명한 것이죠.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완성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뒤가 비어 있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빈칸은 독자들이 찾아 채워줘야만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외국 작가, 시인들의 글을 번역본으로 읽었지만, 디테일은 몰라도 그 감동의 기저음은 똑같이 우리 가슴을 울렸습니다. 언어와 문화 코드는 달라도 시와 소설은 과학적 분석과는 다른 독특한 시학의 방법에 따라서 뜻도 이미지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유감스럽게도 새롭게 개역을 하고 문어체를 구어체로 고쳐 봐도 성경은 시와 소설처럼 그냥 읽기는 힘이 듭니다. 그냥 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해와 왜곡을 범하기 쉽습니다.

근대화와 함께 밥과 빵이, 떡과 케이크가 서로 뒤바뀌는 문명의 상황 속에서 살아온 우리지만 아직도 빵을 떡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서양도 성경도 신기루처럼 환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지요. 빵은 떡이 아니다. 학은 비둘기가 아니고 들에 핀 백합은 산골짜기에 핀 진달래가 아니다. 디테일을 넘어서 눈에 보이는 대상물들을 뛰어넘어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시와 소설 작품을 평할 때처럼 성경을 문학평론 혹은 문화 비평의 텍스트로 읽으면서 예수님의 몸(corpus)을 언어학에서 말하는 코퍼스(자료체)로 분석해봤던 것입니다. 그것도 누구나 읽어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학문 용어나 그 시스템을 빌리지 않고 그냥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말입니다. 레벨로 체재로 쉽게 말입니다. 몸을 뜻하는 신체(身體)란 말이 어떤 공동체(共同體)나 조직체(組織體)의 체(體)로 변하고 그것이 더 큰 사회나 국가의 체재(體裁)의 뜻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맹자에서 그 과정을 보아왔던 그대로입니다. 몸이 집이 되고 그것이 나라로 변해 우주 전체의 천하가 되었던 거죠. 그리고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빵을 통해서(격물) 추상적인 예수님의 성체(聖體)로 이르고, 그것이 다시 지상에서 하늘로 향한 영체(靈體)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logos)’과 접속되는 과정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성경 시학(bible poetics)이라고 한 것이지요.

-‘책 뒤에 붙이는 남은 말’ 중에서

 

성경에는 밥이란 말이 단 한 곳에서도 나오지 않는군요. 하기야 2천 년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슨 쌀밥, 보리밥을 먹었겠습니까? 당연히 밀가루로 만든 빵이었겠지요. 그런데 위의 성경 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빵이 떡이라고 되어 있군요. 그래서 밥을 주식으로 먹고 사는 한국 사람들이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세상에 떡만 먹고 사는 사람도 있나. 별 이상한 소리 다 듣겠네.” 그러고는 “사람이 어떻게 떡으로만 사나, 밥을 먹어야지”라고 할 겁니다. 알다시피 떡은 주식이 아닙니다. 어쩌다 특별한 날에나 먹는 별식이지요. 그래서 떡을 보면 “웬 떡이냐”라고 합니다. 밥을 보고 “웬 밥이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구절이 떡을 밥으로 바꿔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했다면 누구든 쉽게 그 뒷말을 이어갈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목표를 그 뒤에 써넣을 수 있으니까요.

서양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밥 대신 빵이라고 하겠지요. 그렇다고 떡을 빵이나 밥으로 바꾼다고 문제가 끝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바벨탑 이야기처럼 지상의 언어들은 제각기 달라 소통이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살아가는 풍토가 다르고 먹는 것이 다르면 그 사이에는 어떤 언어로도 메울 수 없는 깊은 수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특히 방금 읽은 마태복음 4장 4절은 한국말로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아파트 층수에서도 기피하는 4(死) 자가 두 개나 겹쳐 있는 장절이라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른 말은 문맥에 맞춰 대체 가능한 다른 말로 어느 정도 번역할 수 있지만 음식 문화의 체계와 그 실체는 다른 것으로 옮겨 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1장 「꽃이 밥 먹여주느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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