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장 단식 투쟁 끝낸 ‘인권운동가’
세계 최장 단식 투쟁 끝낸 ‘인권운동가’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6.10.02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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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세계 최장 단식 투쟁 끝낸 ‘인권운동가’

 


‘군 특별권한법’ 철폐 요구하며 투쟁 지속할 뜻 밝혀

 

▲이롬 샤르밀라는 단식 투쟁을 끝낸 뒤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예고했다. ⓒ이롬 샤르밀라 페이스북

 

 


인도의 사회운동가 이롬 샤르밀라가 군의 막강한 권한 축소를 요구하며 시작한 세계 최장 단식 투쟁을 16년만에 끝냈다. 그는 지난 2000년 11월 인도 동북부 마니푸르주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정부군이 주민 10명을 사살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동안의 투쟁이 인도 안팎에 알려지며 아시아인권위원회상, 광주인권상 등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창살 밖으로 나와 주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예고한 그의 움직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평범한 시인에서 인권운동가로

이롬 샤르밀라는 인도 북동지역의 평범한 기자이자 시인이었다. 하지만 28살이던 2000년 11월, 인도 마니푸르의 주도인 임팔의 말롬 버스 정류장에서 발생한 시민 살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화하게 된다. 당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 10명이 아삼 라이플이라는 준 군사조직의 무장 군인 8명에 의해 테러 혐의로 무참히 사살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는 인도 북동지역과 카시미르 주에서는 경고 없이 현장에서 바로 테러 혐의자를 살해할 수 있는 ‘군 특별권한법(AFPSA, Armed Forces Special Powers Act)’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1958년 제정된 군 특별권한법은 정부군이 카슈미르와 동북부 지역에서는 반군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거나 사살까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군은 테러와의 전쟁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인권단체는 국민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실제 희생자 중에는 60살이 넘은 노인도 있었고,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던 18세 소년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사 없이 즉석에서 살해가 자행된 것이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샤르밀라는 군 특별권한법 철폐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가게 되고, 인권 운동가로 변모하게 된다.
 

 자다푸르 대학의 정호영 사회학 박사는 “그동안 인도 주류 언론들은 매일매일 그녀의 일상을 보도하였다”며 “한국 사회에는 생소하지만, 샤르밀라는 인도 여성의 아이콘”이라고 말했다. 실제 샤르밀라는 2014년 국제여성의 날에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룬 인도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6년간 구금과 석방 반복

한편 샤르밀라는 단식투쟁에 돌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됐다. 혐의는 자살미수죄였다. 이후 정부는 그를 마니푸르의 주도인 임팔에 있는 국영 병원에 입원시킨 뒤 강제로 코에 튜브를 삽입해 하루 5차례씩 강제로 영양을 공급받도록 했다. 가족과의 면회도 일절 금지되었고, 여성 보안군에 의해 하루종일 감시당했다. 자살미수죄의 형량이 최고 1년이었기에 매년 하루씩 석방된 뒤, 다음날 다시 연행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2006년 샤르밀라는 동료 운동가들의 도움으로 투쟁본부를 뉴델리에 있는 라즈가트로 옮기게 된다. 하루의 자유를 받은 날 임팔 공항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마하트마 간디의 기념관 인근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당시 그녀는 “내 의지가 관철되지 못한 상태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마하트마의 축복이라도 받고 싶다”고 말하며 투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파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구금과 석방이 반복됐지만 인도 정계는 샤르밀라의 주장을 철저히 무시했다. 다수의 인도인들이 인지하는 부패 퇴치와 같은 문제가 아닌, 변방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식이 10년을 넘어서자 종교인들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은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마른 무명천으로 이를 닦는 샤르밀라의 진정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샤르밀라는 2014년에 열린 공판에서 “나는 삶을 사랑하고 남들처럼 살고 싶다”면서도 “악법이 폐지되기 전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자살 기도 혐의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지만, 다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단식 투쟁 중단 후 정치 입문 선언

2016년 8월9일, 샤르밀라는 단식 중단을 선언했다. 2000년 11월2일 이후 만 15년 9개월 7일(5,760일) 만에 끝낸 단식 투쟁은 세계 최장기간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단식으로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돼서 단식 중단 결정을 내렸다”며 새로운 투쟁을 전개할 뜻을 밝혔다. 손가락으로 꿀을 찍어 맛을 본 뒤 눈물을 흘린 샤르밀라는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생각에 16년간 단식을 했지만, 이것으로는 아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단식을 끝내고 정치에 들어가 정의를 위한 싸움을 하겠다”고 말하며 정치적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내년에 열리는 주의회 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이지만, 현재 여러 정당으로부터 입당 권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얼러트’에서 활동하는 바블루 로이통밤은 “샤르밀라는 세계 최장 단식을 하면서 군에 특권을 부여하는 법이 위법하다는 인식을 대중에게 확산했다”면서 “이제 정치의 영역에서 또다른 싸움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마니푸르 임팔 대학교 학생인 바비 시린은 “단식은 너무 오래 지속됐고 법률을 폐지하지 못했다”면서 “샤르밀라가 정치에 들어가 AFSPA 반대활동을 한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현지 언론을 통해 말했다.
 

  샤르밀라는 투쟁 기간동안 각종 인권상 수상을 통해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는 2013년 샤르밀라를 양심수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인도 정부도 군 특별권한법을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샤르밀라의 지루했던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저항에 지지를 보내고, 함께 투쟁에 합류할 인도인들이 점차 늘어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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