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김병지 이사장
[단독 인터뷰]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 김병지 이사장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6.09.18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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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내 뒤에 공은 없다

국가대표 레전드 GK, 그가 써내려온 24년간의 이야기

 

 

 

 

우리가 기억하는 김병지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또한 프로가 되기 위한 과정까지는 그 무엇보다 치열하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 직장인보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간이 짧을 뿐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을지라도 실력이 떨어지면 밀려나고 잊히는 것이 프로 스포츠 선수의 숙명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간 수많은 엘리트 체육 전공자들은 화려한 이상과 냉혹한 현실 사이에서 프로라는 이름을 얻고 선배 스포츠 스타들의 발자취를 따르며 꿈을 날개를 펼치고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골리이자 레전드로 기억되는 김병지 이사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축구팬이 알고 있듯 그의 프로 데뷔까지도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다.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철저한 무명선수였던 그는 지금까지 팬들이 뇌리에 기억되는 꽁지머리와 강렬한 머리색,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의 유니폼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강렬한 카리스마와 골 넣는 골키퍼라는 닉네임을 통해 대한민국 축구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김병지 이사장의 모습은 톡톡 튀는 외형도 그의 별명도 아니다. 24년간 그라운드에서 한 순간도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늘 푸른 소나무처럼 잠시도 벗어낫지 않고 한결같이 골문은 지켜온 그의 뛰어난 실력과 철저한 자기관리, 그리고 프로 정신이 무장된 대한민국 레전드 GK로 기억로 기억할 뿐이다.

 

김병지가 말하는 김병지 이야기


추석 연휴 기간의 마지막 날인 2016년 9월 18일 일요일 또 한 명의 전설이 그라운드를 떠난다. 꽁지머리에 튀는 유니폼을 입고 강렬한 존재감으로 골문을 지켜왔으며, 때론 골키퍼 입에도 골문을 비우고 득점을 노렸던 김병지 이사장이 24년간의 정든 프로 유니폼을 벗는 날이다. 특히 이날 은퇴 경기는 그의 프로 데뷔팀인 울산측의 제안으로 이뤄지게 됐으며 상대팀 역시 울산과 동해안 라이벌 더비를 펼치고 있는 팀이자 김병지 이사장의 두 번째 소속팀이었던 포항이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은퇴 직전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이자 슈퍼스타로 활약했던 김병지 이사장. 은퇴 선언 이후 재단 설립과 축구 해설, 그리고 다양한 강연 및 행사 활동으로 현역 시절보다 더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김병지 이사장이 이슈메이커를 찾았다. 파란만장한 현역 무대를 마무리한 2016년 9월, 그에게 축구는 어떤 의미였으며 그가 써내려간 진정어린 24년간의 축구 이야기를 이슈메이커가 함께 해보았다. 

 

Q. 지난 7월 본인의 SNS를 통해 팬들에게 직접 은퇴 소식을 알려 많은 축구의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협회나 구단을 통해서가 아닌 SNS를 통해 은퇴를 알리셨던 이유와 은퇴 선언 이후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요?


-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저와 함께 해준 팬들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고 그들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은퇴를 갑작스레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8년 전 허리 수술 이후 조금씩 은퇴에 대한 계획을 세워뒀습니다. 은퇴를 결정하고 난 후 아쉬운 점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후회 없는 선수 생활을 했으며 현역 시절 행복했던 순간이 99%고 아쉬움이 1%이었기에 아쉬움 1%때문에 후회나 미련을 남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라운드에서 더 이상 이사장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점은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하지만 은퇴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최근의 근황은 어떻게 되시나요?


- 이전부터 준비해온 일들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는 배움에 있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후배들이 기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또한 얼마 전 설립한 재단 활동과 축구 해설, 밀양시 홍보대사, 강의, 특강, 행사 등 현역 시절보다 오히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스포티비를 통해 축구 해설가로 데뷔하셨습니다. 은퇴 후 첫 공식적인 행보를 코치나 감독이 아닌 해설로 선택하신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 어떻게 보면 코치나 감독으로 향후 행보를 결정하는 것이 제가 이제까지 해온 일이기에 가장 편한 길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긴 안목으로 해설위원직을 수락했습니다. 축구에 대해 더 배우고자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외 축구의 역사나 감독들의 철학, 전술 등을 공부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며 스스로도 한 단계 성장하고 시청자들에게도 골키퍼 출신으로서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깊이 있는 정보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Q. 지난 8월 사단법인 본인의 이름을 건 스포츠문화진흥원을 창립하셨는데 창립목표와 향후 이곳을 통해 어떤 활동들을 하실 계획인가요?


- 스포츠 스타들이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단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대다수가 자신의 전문분야에서의 활동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스포츠와 문화를 접목시켜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자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렇기에 미술 전공자는 아내의 도움도 필요한 부분이며 재단과 축구라는 이름을 빼고 ‘김병지스포츠문화진흥원’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더욱이 최근 여가 생활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만을 하기에 이러한 부분이 아쉬워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와 문화를 접목시킨 활동들을 추진 중입니다. 

 

Q. 이사장님의 현역시절 트레이드마크인 꽁지머리를 시작하셨던 이유와 이후에도 다양한 염색을 통해 본인만의 스타일을 이어가셨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 프로 데뷔까지 험난한 시간을 보냈고 데뷔 이후에도 무명 선수였기에 저를 알리고자하는 마케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저만의 헤어스타일과 컬러로 개성을 표현하자는 것이었지만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서는 염색을 좋지 않게 봤습니다. 따라서 실력도 ‘좋은 않은 선수가 튀려고만 한다’라는 말을 듣지 않으며 제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지고자 더욱 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Q. 이사장님 이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던 슈퍼스타이자 시대의 아이콘이 아닐까 합니다.


- 현역 시절 당시 골키퍼 포지션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또한 당시 어린 친구들이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기피하는 현실이었지만, 제가 주목받게 되면서 엘리트 스포츠는 물론 교내 체육 시간에도 골키퍼는 인기 포지션이 됐다고 합니다. 저를 따라하는 아이들이 늘어난 부분도 보람이었고 골키퍼에 대한 긍정적 인신 전환이 생겨났다는 점도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Q. 이사장님은 예나 지금이나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선수이자 팬 서비스가 뛰어난 선수로 기억됩니다. 위원님께 팬은 어떤 의미입니까?


- 예전에도 저에게 팬분들은 항상 소중했지만 지금 생각해보자면 팬들은 제 인생의 동반자가 아닐까합니다. 제가 주목 받기 시작했던 20대 중반 당시 저를 좋아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30대 전후의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이들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각자의 위치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저를 아껴주고 있습니다. 저의 팬분들은 축구라는 인연으로 맺어져 지금 이 순간도 같은 시간을 걸어가고 있는 동반자라는 생각에 감사합니다.

 

Q. 1992년 울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후 24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든든히 골대를 지켰습니다. 데뷔 당시 이처럼 오랜 시간 그라운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 데뷔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현역으로 활약할 수 있을꺼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가 긴 시간동안 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자기관리를 꼽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지금도 많은 프로 선수가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도 경기력 유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경기 당일 컨디션과 경기력 유지를 위해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철저한 스케쥴에 맞춰 운동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24년 동안 프로 생활을 통해 우승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기록들을 세웠습니다. 이 중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기록은 무엇일까요? 


- 의미 있는 기록 보다는 ‘골 넣는 골키퍼’, ‘내 뒤에 공은 없다’, ‘날미존(날아다니는 미친 존재감)’ 등 저의 닉네임이 생각에 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긴 시간동안 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차곡차곡 쌓인 이미지이기에 더욱 의미 있습니다. 기록 중에는 153경기 연속 출전 및 무교체 출전이 기억에 남습니다. 700 경기 출전도 의미 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 연속으로 경기에 출전하고 교체도 당하지 않았던 선수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현역 시절 제가 이뤄놓은 목표를 달성할 때 마다 흐트러지기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목표는 두되 한계는 없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Q. 본인에게 가장 특별했던 팀은 무엇이며, 24년의 선수 생활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수 있는 장면이나 경기는 무엇입니까?


- 울산, 포항, 서울, 경남, 전남을 거쳤지만 제가 데뷔한 팀이기도 하며 가장 오랜 시간 활약했던 울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울산은 축구의 고향 같은 팀이며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소중한 팀입니다. 더불어 제 축구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 최고점은 1998년 울산 소속으로 포항과의 경기에서 헤딩골은 넣었던 순간이 아닐까합니다. 덧붙여 저 스스로 평가하는 구술이나 독백이 가능한 제 축구 인생의 마지막도 클라이막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지금까지의 활동 이외에도 앞으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실 것 같습니다. 향후 계획과 이슈 메이커 독자들에게 전해줄 이야기가 있을까요?


- 지금 이 글을 보면 이슈메이커 독자들은 눈으로 읽고 계시지만, 앞으로도 가슴에 남고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만남을 이슈메이커와 함께 이어갔으면 합니다. 또한 가족 이외에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것이 축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신념과도 같은 것 역시 축구였습니다. 이와 같은 제 모든 시간은 축구를 이제는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려고 합니다. 저 역시도 더 많은 공부를 통해 앞으로도 더욱 새로운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니 지금처럼 묵묵히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누구보다 축구를 아끼고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축구계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는 김병지 이사장. 그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남긴 이야기는 최근 스포츠 선수들의 도덕적 헤이에 관련된 이야기다. 물론 그 역시도 승부조작이나 약물 등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엄격한 처벌이 뒤따라야겠지만 아직 젊은 선수들이고 사생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가혹할 만큼 엄중한 도덕적 잣대를 내세우는 것보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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