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국제정세Ⅰ] 국제 정세의 흐름
[급변하는 국제정세Ⅰ] 국제 정세의 흐름
  • 서재창 기자
  • 승인 2016.09.0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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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서재창 기자]



 

20세기의 판세를 좌우한 세계적 사건과 지표

냉전 시대의 대립부터 G2 체제의 구축까지 변화해온 국제 사회


 

 

 


미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했던 냉전시대가 종식되며 오늘날 현대 사회는 평화와 화합의 시대로 돌입했다. 지난 1969년, 군축협상으로 세계 각국은 재래식 무기를 감축하기 시작하며 세계 사회의 안정을 찾아가고자 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지난 1991년에 해체된 이후, 세계 패권은 경제를 개방하기 시작한 중국과 세계대전 이후 경제력을 무기로 세계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양강 구도로 재정립됐다. 21세기를 맞이한 국제 정세는 새로운 체제의 돌입을 예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의 돌입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분쟁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중립법을 제정한 뒤 고립주의를 취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파시스트 국가로 등장하면서, 1939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6년간 7,400만 명의 전사자를 낸 인류 최대의 잔혹한 전쟁이었다. 독일은 재무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와의 동맹과 오스트리아와의 합병을 통해 ‘제3제국’을 형성하면서 체코에 침공을 시작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독일이 앞세운 뮌헨 조약을 빌미로 체코 침공을 묵인해버렸다. 독일의 히틀러는 이 같은 서방세력의 태도를 간파해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후 폴란드로 침공의 범위를 넓혀갔다. 전쟁 초기, 미국은 참전 지지 세력과 반전 세력 간의 갈등으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했었다. 이후 미국은 루즈벨트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연합국에 대한 원조 및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게 됐으며,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세계대전에 개입했다. 미국은 연합국의 군수물자 공급을 담당했고, 민간 기업은 전쟁을 위한 군수 산업으로 전환돼 급속한 생산의 증가가 이뤄졌다. 미국의 경제는 대규모로 팽창해갔다. 

 
지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은 50개 연합국 대표들을 샌프란시스코에 초청해 국제연합헌장에 서명하도록 함으로써 UN 창설에 앞장섰다. 미국은 그때부터 국제 사회 및 경제에서 주축을 담당해 세계질서를 주도하게 됐다. 한편, 세계대전의 승리국 중 하나인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팽창이 위협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당시의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의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포위정책’을 펼쳤으며, 전 세계적으로 공산화의 위험을 안고 있는 나라들에게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본격적인 냉전시대의 서막을 알렸다. 세계는 미국을 대표하는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앞세운 공산주의 세력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은 중국의 공산화로 아시아로 확대되고 있었다. 

 

▲20세기 인류 역사의 비극이 된 제2차 세계 대전. ⓒFree large image

 

 

미국과 소련, 강대국의 첨예한 대립


지난 1945년, 루스벨트가 사망한 뒤 미국의 통치권을 거머쥔 인물은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맞선 연합국의 승리로 종식했으나 뒤이어 세계는 ‘철의 장막’이라 불리는 경계로 급속히 양분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를 선포한 미국과 공산주의의 필두에 선 러시아 양국 체제의 첨예한 대립으로 수많은 전쟁이 세계 곳곳에서 발발했다. 1989년까지 일컬어지는 냉전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과 양 진영에 속한 주요 동맹국간에 전쟁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작은 국가 간의 전쟁이나 작은 국가와 큰 국가의 충돌과 대립은 전쟁의 양상으로 드러났다. 이런 과정에 두 강대국은 빠짐없이 관여했고, 상황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도 개입하게 됐다. 작은 국가들 간 전쟁은 흔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펼쳐졌다. 

 
1948년 이후부터 냉전의 갈등은 절정을 향해갔다. 이 기간 소련은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군사적으로 미국과 맞설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발전을 거듭하는 소련의 위협에 맞서 1949년에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설립해 유럽 군사 동맹 체제를 구축했고,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 기구(WTO)’를 결성해 서방 국가와 군사적으로 대립했다. 한편, 냉전시대에는 주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갈등이 주도됐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전과 선동, 모략 등의 심리전이 각국 간에 벌어졌다. 그들은 파업, 폭동, 혁명 등을 통해 공산 정권과 위성국을 수립하는 데 열중했다. 1949년에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 진영 간의 긴장 상태는 1950년에 한반도에서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한국 전쟁뿐 아니라 베트남 전쟁의 개입으로 냉전 상황은 극에 달했다. 1953년, 한국전 휴전과 스탈린의 사망은 냉전의 긴장을 잠시나마 완화시켰다. 하지만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이 소련을 중심으로 바르샤바 군사 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같은 해 서독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냉전은 더욱 구조화되고 심화되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경제 군사적 원조와 동맹관계 구축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지난 1962년, 쿠바 사태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양상이 낳은 결과였다. 쿠바 사태는 핵전쟁의 위험을 당사자인 미국과 소련뿐 아니라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선제 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상대방이 먼저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지력을 갖추는 데 전략의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한편, 유럽과 일본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핵무기 확산으로 미소의 핵무기 독점 체제가 무너지면서 냉전 체제도 서서히 변모해갔다. 미소로 정확히 구분되던 양극 체제가 무너지고, 다극 체제가 도래한 것이다. 이는 국제 관계를 변화를 몰고 오면서 핵무기로 무장한 강대국들, 특히 프랑스와 중국 등이 미소의 권력 독점 체제에 맞서 독자 노선을 걸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미국과 소련은 더 이상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도 핵무기 확산 억지에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미소 간 전략무기 제한협정이나 핵 확산 금지협정은 이 같은 사태 발전의 결과였다. 이 때 달러 위기로 인한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면서 1970년 초, 닉슨 독트린으로 전략 전환과 베트남 전쟁의 종결 등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쌓아온 25년간의 냉전 구조가 완화되는 계기가 됐다. 1990년,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등의 제2차 세계 대전 전승국들이 ‘대 독일 화해 조약’을 조인해 독일의 통일을 인정함으로써 동 서 냉전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와 중국의 비상


1985년, 러시아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취임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로 대표되는 소련의 개혁 정책을 추진됐다. 고르바초프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비롯한 냉전의 확대와 연장이 아니라 종결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개혁의 실패는 소련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냉전 시대의 마지막을 알렸다. 1991년 이후, 국제 사회는 미국이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독주를 이어가게 됐다. 냉전 시대 이후의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과 규제 완화 그리고 재산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다. 시장의 순기능을 강조한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이 축소된 자유 시장 경제를 주장해왔으며 국영화된 사업까지도 모두 민영화해 시장 기능에 맡기는 특징을 보였다.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2000년대 중반까지 선진국의 경제적 부흥을 이끌며 공산주의 진영의 종식 선언과 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히 했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세계 경제위기는 약 30년 간 체제를 굳건히 해온 신자유주의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중국은 경제 발전을 등에 업고 괄목할 성장을 이뤄가고 있었다. 중국의 대외 개방 정책은 기존에 고수해온 경제적 원칙의 탈피를 의미했다. 중국의 대외 개방은 크게 기술 및 자본의 도입 및 대외 무역의 확대라는 두 분야로 발전해 왔으며,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국의 위용을 갖추게 했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패권 다툼의 시작


미국은 중국을 자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해 중국을 견제하며 봉쇄해왔다. 이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그에 상응하는 힘을 가진 국가로 중국을 인정한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점차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직감한 양국은 서로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 중국은 개방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10%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며 급속도로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갔다. 이 같은 발전을 지켜본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며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했다. 1996년, 미국은 일본과 안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또한, 이듬해에는 일본과의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힘썼다. 

 
미국은 2000년대에 들어서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해 보통국가가 되도록 촉구해왔다. 아베 정권의 헌법 재해석과 개정의 움직임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부추김과 압력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은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2011년, 미국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로 불리는 재균형 정책을 통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을 지속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패권국인 미국의 주도로 세계의 흐름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BRICs의 성장과 유럽 통합 등으로 다극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과 미래의 패권국가로 점쳐지는 중국과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새로운 신 냉전시대의 패권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양국과 이해관계가 얽힌 한국, 일본, 러시아, 필리핀 등의 나라들은 격동하는 새 시대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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