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살아있는 전설, 시인 고은을 만나다
한국문학의 살아있는 전설, 시인 고은을 만나다
  • 심가현 기자
  • 승인 2012.03.06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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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생 시를 지어야 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
[이슈메이커=심가현 기자]

 

한국문학의 살아있는 전설, 시인 고은을 만나다

“나는 천생 시를 지어야 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

 

 

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기운이 조금씩 스며들 시기, 이맘때쯤이면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감정의 촉촉해지며 시를 읽기 시작한다. 이처럼 시는 점점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감수성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단비를 내려주는 대표적인 시인, 한국 문학의 살아있는 전설, 고은시인을 만나 지나온 인생행로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시인 고은의 작품은 세 번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초기 시들은 허무주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생에 대한 절망을 노래하며 시적 자아의 형상은 삶에 대한 의지나 집착보다는 심미적 탐닉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폐결핵>, <피안감성> 등이 있는데 이 시기의 시적언어는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감상성을 벗어나지 못한 불안정한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시적자아는 자기혐오나 허무감을 떨치고 역사와 현실 앞에 자신을 내세운다. 이 시기의 시들은 동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민중 중심의 역사관에 바탕을 둔 현재에 대한 격렬한 투쟁의지를 노래한다. 그 때의 대표적인 작품이 <문의마을에 가서>, <부활> 등이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시 세계는 또 한 번 변모하는데 연작시 <만인보>와 장시 <백두산>이 대표작이다. 〈만인보〉는 그 규모의 방대함과 시적 상상력의 포괄성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민족의 삶의 모습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다채롭게 엮어가고 있는 이 시의 독특함은 반복과 중첩의 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장시〈백두산〉이 역사에 대한 신념을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이라면, 〈만인보〉는 민족의 삶과 그 진실을 서정의 언어로 통합시켜 놓은 훨씬 폭 넓고 깊은 역사의식을 포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글은 조상들이 남겨준 위대한 유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이사장으로 연임되셨는데요. 현재 사업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행복하게 진행이 됐더라면 많이 진행됐을 테지요. 그런데 이 사업이 남과 북의 사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지금은 사정에 의해서 제대로 예상할 수는 없지요. 10을 기준으로 두자면 6에서 7사이의 작업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십니까?

“이번 편찬사업은 꼭 남과 북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국어는 조상들이 남겨준 유산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말을 우리가 가지고 살고 있다는 점에서 모국어라는 문제는 국어나 언어학의 문제가 아니고 삶의 문제로 비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근대 이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살 곳을 찾아서 중앙아시아나 카자흐스탄에 건너가서 살면서 우리말을 지켜왔고, 그런 장소와 시간이 다르지만 한 가지 언어인 한글이 한마당에 모여 만들어진 것이 국어사전이라는 장치로 만들어진 것이죠. 이 자체가 통일이 된 이후라든지 이후의 자손들이 우리언어인 한글을 원천으로 삼는다면 얼마나 좋겠나하는 생각을 하고 합니다.”

 

 

지금 당장 북한과의 관계를 보면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 편찬사업은 남과 북의 민간사업이기도 하고 가장 비정치적인 작업이라서 방해를 덜 받는 편입니다. 그래서 기대도 큰 거죠.”

 

 

그밖에 다른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어려운 일은 많습니다. 사전을 완성하기위해서는 북측과 만나 토론을 하며 진행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로 장애가 생기다 보니 접촉을 못하고 있어요.”

 

 


시는 ‘문학의 꿈의 생산물’이기도 한 반면 ‘우주의 쓰레기’이기도 한 것

 

 

시와 선생님의 인생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십니까?

“시와 인생을 개인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이 언어를 통해서 시 생활을 20여년 했는데 사람이 부모에서 태어났듯이 저는 언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말의 은혜를 입어 이를 누리고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언어에게서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갚자는 생각으로 시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유독 굴곡이 많았는데요.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죠. 나만 특별한 것도 없어요. 다른 이들과 비슷할 뿐입니다.”

 

 

1960년대에 선생님의 작품은 주로 허무주의를 노래하는 시가 주를 이뤘습니다.

“한국 전쟁 후 내가 사는 세상은 정말 절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박한 삶속에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들어와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실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곳에서 살고 느끼다보니 염세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염세주의적이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조금 그런 면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주 삶을 놓으려는 생각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상황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허무주의 경향의 작품을 쓰시다 1970년대 이후 작품이 변모하기 시작했는데요.

“전쟁 후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나라를 재건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난 항상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약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늘 내 어깨에는 이미 죽음 같은 존재가 얹혀 있는 것 같은 생활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남루한 술집에서 신문을 보니 전태일군의 자살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과 이유를 알아보다보니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깨닫게 됐고 술에 찌들었던 일상을 깨고 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투옥 중에서도 시를 쓰셨다고 하시던데?

“그 당시에는 그곳에서 살아남아 나갈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전두환시절) 당시 특별감방에 구치됐었는데 불도 잘 들어오지 않는 매우 열악한 장소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곳에서 내가 자유로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뿐이었어요. 주로 과거의 기억들을 회상했었는데 뉘우칠 일이 많았죠. 그래서 과거를 반성하고 뉘우칠 방법이 바로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히려 시를 짓다보니 그런 시간들이 나는 버티게 해주고 극복하게 해 주었어요. 이곳에서 단순한 자기반성이 아닌 무언가 우리 민족을 엮게 해주는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구상하다 보니 <백두산>이라는 서사시를 쓰게 되었죠.”

 

▲고은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매력적인 것이죠. 시의 역사가 문자를 기록으로만 남긴 것만 해도 몇 천 년이에요. 다른 어떤 문학보다도 가장 오래된 것이 시입니다. 사실 몇 천 년 동안 시가 무엇이냐는 의미의 정의는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그 중에 하나를 꼽아서 대답하면 편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과는 관계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시를 쓸 때는 몇 십 년 동안 역사는 사라지게 되고 가장 기본으로나 가장 기초로 돌아가 시를 써요. 오만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에 누가 있었건 간에 시를 쓸 때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죠.”

 

 

“다시 태어나도 시인으로 살 겁니다.”

 

 

요즘도 술 많이 드십니까?

“술을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이죠.(웃음) 술을 마시면 말이 현란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잘 모르죠. 언젠가 술을 먹은 지인이 내가 한말을 메모해서 보여줬는데 말이 참 괜찮았어요. 나는 맑고 독한 술을 좋아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와인 맛을 좀 봤는데 입맛에 좀 맞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와인을 자주 찾습니다. 그래서 행사를 할 때마다 와인 좋아하는 줄 알고 내 자리에는 항상 물 대신에 와인과 잔이 놓여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으로 살겠습니까?

“내가 다른 것을 잘 못해요. 예를 들어 못질이거나 구두끈을 매는 것은 많은 훈련이 필요한데 제대로 훈련된 것이라고는 시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시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내가 봤을 때 나는 천생 시를 지어야 할 운명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에이~ 누가 이 늙은이의 작품을 기다리겠습니까. 작품은 여름이나 가을쯤이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시를 짓는다는 것이 신명나는 것 같네요.”

 

 

작품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책을 참 많이 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참 좋은 편인데 물론 감옥에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지만 10년 전에 쓴 안경도수가 아직 그대로에요. 그래서 그런지 책을 아무리 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아요. 책도 날 좋아하고 나도 책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연애관계죠. 책을 보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되는 느낌이 들고, 오히려 이렇게 사람이랑 있는 것이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시를 쓰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의 일을 걸어가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모두 무효입니다. 나는 교훈을 받은 적도 없고 교훈을 줄 생각도 없어요. 내가 그들의 선생이 된다면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해라라고 한마디 남길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이미 나와 똑같이 물이 차있습니다. 밀물이죠. 그래야 썰물 때까지 발을 차야 빠지지 않고 떠 있을 수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나 자신도 손쉬운 삶이 아니었어요. 나 자신이 과거에 격려와 위로를 받았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을 우리 어른들이 위로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의무죠. 얼핏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될 수도 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 대학을 나와도 갈 곳도 없고 비정규직이 상당히 많은데 실질적으로 그들을 취업을 시켜줘야 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지 말로 몇 마디 보상을 해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멘토를 해달라는 청을 많이 듣는데 나는 사실 멘토란 말을 싫어해요. 내가 가서 몇 마디 한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바뀌는 것도 아니죠. 실질적인 도움이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지면을 빌어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있어서 신은 세종대왕입니다. 내 자신이 쓸 수 있는 말을 만들어준 사람이기 때문이죠. 나는 우리나라 언어를 가장 사랑하고 우리 언어를 떠나선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언어가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나날이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나는 우리나라 언어인 한글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애착이 갑니다. 지구가 사라지기전까지 우리의 언어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담/이종철 국장, 정리/심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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