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대국 시대 막 내린다
日 수출대국 시대 막 내린다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2.02.03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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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대지진에 對日 무역적자 개선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World Economy ]흔들리는 일본
▲엔고와 대지진의 여파로 2011년 일본은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최근 경제 전문가들이 가장 자주 하는 얘기로,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경제도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2011년 일본은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공급망 마비와 엔화 가치 상승 등으로 수출전선에 차질이 빚어진 데다 원전 사고로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용 에너지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일본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이미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2.2%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日, 31년 만에 무역적자 기록
일본 재무성이 지난 1월 25일 발표한 ‘무역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무역수지(수출-수입)는 2조 4,927억 엔 적자를 기록했다. 일본이 연간 기준으로 무역적자를 낸 것은 제2차 석유위기가 터졌던 1980년(2조 6,000억 엔 적자) 이후 31년 만이다. 일본은 리먼브러더스 쇼크로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었던 2008년과 2009년에도 2조 엔 이상의 흑자를 냈고, 2010년에는 무역수지 흑자가 7조 엔에 육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무역수지 흑자를 통해 거액의 외화를 축적하는 일본의 전통적인 성장전략이 전환점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지난해 수출액은 65조 5,547억 엔으로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 일본 경제의 성장동력인 자동차 전기전자 제조업이 수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데다 동일본대지진의 막대한 복구비와 고령화에 따른 연금구조 불안, 사회보장비 증가 등이 일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입액은 68조 474억 엔으로 12.0% 증가했다. 화력발전용 연료 수입액이 눈에 띄게 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가동이 중단된 원자로가 늘면서 화력발전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의 LNG 수입액은 4조 7,730억 엔으로 전년 대비 37.5% 급증했다.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운 데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 화석연료 수입 증가세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다치 마사미치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무역수지에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 경상이전수지 등을 합한 경상수지도 조만간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제조업 구조적으로 경쟁력 상실 원인
전문가들은 일본 무역적자에 대해 1000년 만에 찾아온 대지진과 원전사고 등과 같은 일시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본 제조업이 구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이 지난 수십 년 간 자동차, 가전제품,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무역정책’을 펼침으로써 경제 대국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에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일본 정부는 재정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채와 차입금을 합한 일본의 국가부채는 2011년 회계연도 말인 올 3월 말 1,024조 1,047억 엔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나랏빚 1000조엔 시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더구나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올해도 44조 2,440억 엔의 신규 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어 2012 회계연도 말에는 국가부채가 1,085조 5,072억 엔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수치는 신생아까지 포함해 전 국민 1인당 850만 엔(약 1억 2,000만 원)의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4일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국가 채무를 안정적으로 줄여가기 위해는 일본 정부가 목표로 하는 2015년까지의 소비세(부가가치세) 10% 인상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IMF의 거슨 재정국차장은 “일본은 소비세를 15%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면서 “이는 국제적으로 볼 때 절대 높은 수준의 세율이 아니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이런 국내외의 우려와 달리 일본 정치권은 무사태평이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가 소비세 인상법안에 대한 ‘대국적 협력’을 호소하고 있지만 야권은 내각 사퇴와 총선을 요구하며 법안 심의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 경제계는 이대로는 무역적자가 재정수입을 줄여 정부의 재정적자 악화를 촉진시키고 다시 재정적자 악화가 무역적자를 더욱 확대시키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수출증가 = 對日역조 확대’ 공식 깨졌다
일본 무역적자로 인해 한국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LG전자는 2011년 6월 일본에 3D TV를 내놨다. 일본 TV시장은 일본 제품이 독점하고 있어 외국 브랜드가 시장을 뚫기란 쉽지 않은 곳이다. LG전자도 이미 2000년대 초반 한 번 진출했다가 실패했던 아픔이 있었다. LG전자는 아픔을 딛고 지난해 일본 3D TV 시장에서 점유율을 2%까지 끌어올렸다. LG전자 관계자는 “고급 브랜드 제품으로 공략한 게 성공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만도도 작년 닛산과 410억 원 규모의 서스펜션(현가장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처음으로 일본 시장을 뚫었다. GM·BMW·푸조시트로앵 등 이미 세계 유수의 기업에 부품을 납품 중인 만도였지만 일본 실무진들의 검열을 뚫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10월 일본 가나가와현 닛산 연구개발센터에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조형장치 등 전문 부품들을 들고 찾아간 뒤 9개월에 걸쳐 제품 테스트와 시제품 생산 끝에 지난해 6월 최종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이 일본 시장 진출에 속속 성공하면서 우리나라 무역의 고질적 '아킬레스건'이었던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지난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필요한 부품·소재 등을 주로 일본에서 수입해 썼기 때문에 수출이 잘 될수록 대일 무역적자는 확대되는 구조이다. 대일 무역수지가 크게 감소한 경우는 IMF 외환위기가 불거진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정도다. 이때는 ‘수출부진→국내투자 위축→대일 수입 감소→대일 적자 감소’로 이어지는 달갑지 않은 구조였다.
하지만 작년 상황은 이와 달랐다. 작년 우리나라는 사상 최대인 5,565억 달러를 수출했다. 일본으로 수출한 금액도 사상 최대인 397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0년보다 40.9% 급증해 1988년 이후 2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금액은 683억 달러로 6.2% 증가에 그쳤다. 이에 따라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2010년 361억 달러에서 지난해 286억 달러로 75억 달러가 감소했다.

 

한국기업 수출경쟁력 강화
대일 무역적자가 크게 줄어든 것은 일본 대지진과 엔고의 영향도 작용했다. 작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으로 정유시설이 타격을 받으며 대일 석유제품 수출이 130% 급증했다.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체 대일 수출액의 5분 1을 차지했다. 물론 지진으로 인한 어부지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들의 대일 수출경쟁력이 강화된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다. 2010년 무역 적자이던 기계류 부문이 지난해 흑자로 돌아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 특히 공기조절냉난방기기와 음향기기·조명기기는 10년 만에 흑자를 기록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에 국제무역연구원 박기임 수석연구원은 “올해에는 대일 원자재 수출이 다소 둔화되는 반면, 절전관련 및 발전설비, 자동차 부품 등 자본재 분야와 식품, 패션, 이미용제품 등 소비재 분야에서 수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박 수석연구원은 “우리 정부는 지난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일 수입 감소’보다는 ‘대일 수출 확대’를 위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지진이 일본 기업과 소비자에게 한국 제품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된 측면도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에는 수입선 다변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박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산 스마트폰·LCD 등이 일본 기업이 주춤하는 사이 까다로운 일본 시장을 파고들었고,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산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이어진 ‘엔고(엔화 강세)’도 일본 기업들이 한국 제품에 눈을 돌리거나 아예 한국에 공장을 세우도록 만들어 대일 무역적자 감소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여전히 부품소재 對日 의존도 낮추지 못해
일본 부품·소재 산업은 제조업 전체가 위축된 '잃어버린 10년'에도 유일하게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많이 뒤지는 제조업이 부품·소재 산업으로, 수출이 아무리 잘 돼도 주요 부품·소재는 일본서 들여다 썼다. 수출이 늘어난 만큼 수입도 늘어나는 것이다. 세계 아홉 번째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나라의 '아킬레스 건'이다.
하지만 대일 무역적자 개선에도 우리나라 부품소재 분야는 취약한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말까지 부품소재의 대일 적자는 207억 달러로 전체 적자액의 78.5%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13억 달러 적자가 줄었지만 다른 업종의 개선 폭에는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대일 수입 중에서 부품소재 비중은 여전히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제무역연구원 박기임 수석연구원은 “일본 지진에 의한 공급 불안과 엔고에 따른 수입가격 상승에도 부품소재 분야만큼은 일본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품·소재는 한두 해 자금을 쏟아 붓는다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오래 투자하고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분야인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부품·소재 무역 규모는 4,248억 달러로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수출도 2,562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업계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부품·소재 산업 경쟁력이 있어야 세트를 비롯한 제조업 전반이 힘을 얻기 때문이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라는 대일 무역역조 악순환의 고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는 10년, 20년 넘는 장기 육성 계획을 끈기 있게 추진할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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