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의 정치학이 세계 정치판을 뒤흔들다
막말의 정치학이 세계 정치판을 뒤흔들다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6.07.01 0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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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막말의 정치학이 세계 정치판을 뒤흔들다

‘트럼프’, ‘두테르테’ 등 막말 내뱉는 정치인 인기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그는 막말 정치인의 선두주자다. ⓒflickr


세계 각국의 막말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전성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극단의 언어가 현실에 지친 유권자들을 파고들면서 권력의 중심부로 성큼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막말 정치인의 선두주자는 미국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와 필리핀의 대통령 당선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막말 정치인들은 분노와 증오를 통해 세계 경제 위기와 경제 양극화에 시달리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美 대선후보 트럼프, 막말 정치인들의 선두주자


미국 대선후보의 막말에 전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소송 비용은 내가 책임질 테니 반대 세력을 때려라”며 선거유세를 하고 다니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막말로 유명한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그들(멕시코 정부)은 문제가 많은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범이자, 미국에 마약을 가져오고 범죄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남쪽 국경에 거대한 방벽을 쌓겠다. 돈은 멕시코에 내도록 하겠다.”라며 ‘이민자’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극단주의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중동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중립을 취할 것이라고 선언해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중동에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란 말도 나오는 추세다. 

 
트럼프는 ‘여자’에 대한 성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경쟁자인 민주당의 힐러리에 대해 ‘남편도 만족 하게 하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미국은 만족하게 할 수 있겠냐’라는 글을 SNS에 올린 후 나중에 자진 삭제하는가 하면, 미국 군부대 내 성폭행에 대해서는 “2만6천 건의 보고되지 않은 성폭력이 발생했는데 고작 238명이 기소됐다니 이 천재들은 군대가 남자와 여자를 한곳에 둔다고 했을 때 무엇을 기대했을까. 장군들과 군 수뇌부가 그토록 반대했지만, 사안을 정치적으로 보는 아주 멍청한 정치인들 때문에 남녀를 한데 섞을 수밖에 없었다” 라며 남자는 강간을 범하고, 여자는 성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으므로 여군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민자, 난민, 여자 등 ‘약자’를 겨냥한 그의 막말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저급한 막말 정치를 뜻하는 '트럼피즘(Trumpism)'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외신은 지난 5월 11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함께 미국 유권자 1289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 조사(표본오차 ±3%포인트)에서 클린턴과 트럼프가 각각 41%와 40%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밝혔다. 불과 일주일 전 같은 조사에선 13%p 차이로 클린턴에게 뒤졌던 트럼프가 그 격차를 1%p로 줄이며 당심과 민심을 모두 잡은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갈수록 갈등과 위험이 커지는 세계에서 타인에 대한 혐오와 세상에 대한 반발감에 휩싸여 있다. 현재 미국은 경제난을 겪고 있고, 미국의 계속된 국제적 개입주의에 싫증 난 백인 유권자들은 열정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의 한 심리학자는 “트럼프의 언행이 매력의 보편 요소인 공감 능력, 솔직함, 자신감, 새로움에서 벗어나지 않고 단지 이것을 얻어낸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돌풍은 비(非)주류의 약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캡틴 아메리카’나 ‘세계 경찰’이란 용어를 원치 않는다. 유권자들은 이제 자국의 이익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이런 미국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선거 전략을 세웠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기반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단순한 구호였다. 역대정권에서 일종의 금기어였던 NATO나 주한, 주일 미군의 방위비 문제도 과감하게 언급했다. 무슬림이나 멕시코인 이민에 대한 반감을 여지없이 쏟아냈다. 처음에는 가십거리였던 트럼프 돌풍은 점차 태풍으로 바뀌고 있다.

 

▲트럼프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미국 유권자들을 자극하고 있다. ⓒflickr

 

 

‘필리핀의 트럼프’,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필리핀의 대통령 당선자인 두테르테도 빼놓을 수 없는 막말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범죄자에 대한 무관용 정책과 막말로 유명한 인물이다. 두테르테는 중도좌파인 PDP라반 소속으로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며 대통령 취임 6개월 내 범죄 소탕과 부패 척결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워 호응을 얻었다. “범죄자 10만명을 죽여 시체를 마닐라만에 버리겠다”는 등의 막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그는, 국민들의 성화에 힘입어 지난 5월 27일 선거에서 1660만 표를 얻어 2위 후보인 집권 자유당(LP)의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660만 표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필리핀 다바오시의 시장 출신인 두테르테는 다바오시 시장 시절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정책을 펼쳐, 대선 이전부터 ‘징벌자’, ‘필리핀의 더티 해리’(피의자들을 난폭하게 다루는 형사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리즈물 영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두테르테는 1999년 인구 1만 명당 1000건에 이르던 다바오시의 범죄 건수가 2000년 0.8건으로 줄었다고 주장했다.

 
두테르테가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은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물고기 밥이 되도록 하겠다"는 등 기성정치에서 보기 어려운 극단적인 것들이다. 그는 심지어 유세장에서 1989년 교도소 폭동사건 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호주 여성 선교사에 대해서도 막말한 뒤 이를 비판한 호주 대사를 향해 “입을 닥쳐라”고 할 정도로 거침 없는 언사를 보였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필리핀 방문 당시에는 길이 막혀 차에서 5시간 갇혀 있었다며 교황을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욕했다. 그런데도 필리핀 유권자들은 큰 표 차이로 두테르테를 선택했다. 두테르테는 지난 22년간 다바오 시장을 지내면서 범죄자들을 강력히 처벌해 다바오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바꾼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현실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두테르테가 주목받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필리핀은 연 6%대의 높은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약물, 각종 범죄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유권자들은 온갖 민주주의 구호보다 발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했다. 두테르테는 범죄자를 처형하고 6개월 내에 부패를 없애겠다는 급진적 발언을 통해 새로운 리더상을 보여줬다. 40%인 외국인의 필리핀 기업 소유한도를 50%로 올리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두테르테는 필리핀의 범죄와 부패 척결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개혁에 반대할 경우) 의회를 폐쇄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내놓았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강한 지지를 보내자 필리핀 국민들이 ‘독재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6년 민주화 운동으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물러났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민주정치의 한계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스트롱맨(독재자) 신드롬’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강한 지도자’ 스타일의 후보를 원하는 유권자들은 교황을 “개XX”라고 지칭한 무례한 언사는 자신감의 표출로, 자기 아들이라도 마약을 하면 죽이겠다는 과격함은 강인함으로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테르테가 기존 정치권에 속하지 않은 인사라는 점이 유권자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왔다. 그는 항상 “나는 특권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필리핀의 족벌정치와 빈부격차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현 대통령 재임 기간 필리핀은 6% 가까운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극소수 재벌들이 독점했다. 경제기획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시엘리토 하비토에 따르면 2011년 GDP 성장률의 76%를 40여개 재벌가문이 독차지했다. 정치의 독점도 심하다. 형식상의 민주화는 찾아왔으나 여전히 필리핀은 100여개 가문이 대통령직과 국회의원직을 나눠 가진다. 두테르테는 “집권 자유당과 마누엘 로하스 장관(대선후보) 같은 이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면서 엘리트와 재벌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표심으로 돌리는데 성공했다. 


세계 각국의 정치판을 휩쓰는 막말 정치인들


트럼프와 두테르테 이외에도 상식을 초월하고 때로는 인권도 서슴없이 무시하는 막말을 내세운 정치인들이 세계 각국의 정치판을 휩쓸고 있는 중이다. 브라질에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린 가운데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기독당 소속 자이르 보우소나르 하원의원도 여성과 이민자, 동성애자에 대한 막말로 유명하다. 그는 시리아나 다른 작은 나라들에서 오는 난민을 향해서는 “세계의 인간 쓰레기들이 브라질로 오고 있다”고 말했고, 아이티 여성들에 대해 “씻지도 않고 몸을 판다”며 아이티에서 오는 이민자들은 브라질에 병을 옮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녀 다섯 명을 둔 그는 “나는 게이 아들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런 아들은 사고로 죽는 게 낫다고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난민 유입을 거부하는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아 대선 결선에 진출했다. 호퍼 후보는 난민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인물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난민을 강력하게 통제하지 못한다면 정부를 해산하겠다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그는 비록 대선 마지막 문턱에서 좌절됐지만 막말은 그를 첫 극우 색깔의 서유럽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이들만큼 ‘주류’는 아니지만 프랑스 극우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 역시 극단적인 언행으로 세를 크게 불린 정치인이다. 막말로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정치인들은 막말 호소 대상 선정에도 유사하다. 다수보다는 확실한 효과가 있을 법한 특정 계층에게 어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막말정치 선두주자로 꼽히는 장 마리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전(前) 총재 등 극우세력 정치인은 자신 발언에 강력하게 호응해 줄 만한 극우세력을 겨냥했다. 그는 또한 난민들을 우려하며 “12명의 난민이 당신 아파트로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벽지를 뜯기 시작할 것이다. 몇몇은 당신 지갑을 훔치고 당신의 삶을 짓밟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극단적인 언행을 공공연하게 펼치는 정치인이 인기를 얻고 실제로 권력을 잡기까지 하는 데는 기존 정치에서의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불안한 치안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유입되는 난민들에 대한 거부감 등에 동조하고 이를 더욱 자극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점잖은 기성 정치인들이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데 분노한 유권자들이 솔직하고도 자극적인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나섰다고 볼 수 있다. 막말은 얼핏 들으면 생각없이 뱉은 말이라고 여겨지지만 고도로 기획된 정치행동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하는 직설적 언행으로 관심을 끈 다음 기성정치에 회의감을 느끼는 대중들이 기대하는 결단력, 문제 해결 능력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지지를 어필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수의 정치 전문가들은 ‘막말 지도자’들의 거침없는 언행이 과연 강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사람들이 여전히 의문을 제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막말 정치인’들이 우려를 뒤로 하고 기성 정치에 지친 사람들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도 주목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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