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눔 문화, 재능기부의 명과 암
새로운 나눔 문화, 재능기부의 명과 암
  • 이민성 기자
  • 승인 2016.06.30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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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이민성 기자]


새로운 나눔 문화, 재능기부의 명과 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재능기부 요청은 없어져야 할 터


 


최근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사회 전반에 행해지고 있는 나눔의 문화에 제동을 거는 이들이 있다. 얼마 전 공공기관의 비자발적 재능기부에 반강제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힌 한 관계자는 지난 4월 이슈화된 대한체육회 감사업무에 대한 재능기부 요청처럼 전문성을 지닌 분야에 대한 일부 기관 및 시민의 지나친 재능기부 강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기부자들을 착취하는 일부 기관과 시민들로 인해 국내 기부 문화가 병들고 있다.



선의의 활동, 돈이 아니라 능력을 나누는 재능기부


그동안 기부문화는 개인이 가진 재화를 기부하던 형태였다. 하지만 최근 금전적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시민들이 늘며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재능기부’라고 불리는 이러한 나눔 활동은 개인이 지닌 재능을 금전적 이익 추구만이 아니라 사회단체 또는 공공기관 등을 통해 어려운 시민을 돕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가 발전하며 다양해진 나눔의 형태 속에서 이러한 재능기부는 노동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사회기여라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재능기부는 봉사활동과 비슷하지만, 개인의 특성을 존중한다는 부분에서 뚜렷한 차이를 지녔다. 특히 각자가 지닌 서로 다른 재능을 사회에 환원하기 때문에 기부를 받을 대상과 기부할 재능도 다양하다. 또한, 돈을 내는 금전적 기부는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러한 재능기부는 개인의 전문성과 지식을 배경으로 지속해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재능기부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집단을 통해서도 이루어지며 집단이 지닌 특성과 능력을 사회에 재분배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재능기부는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재능기부 문화가 20세기 말부터 정착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변호사협회의 경우 1993년 소속 변호사들이 연간 50시간 이상의 사회공헌 활동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협회의 방침에 변호사들은 무료 변론이나 법률상담 서비스를 해주는 등의 사회적 공헌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변호사들의 활동과 같은 지식이나 기술을 통한 사회 기여는 ‘프로 보노(Pro bono)’라는 단어로 정의됐으며 공익이라는 말을 추가해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이러한 프로 보노 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고영 대표의 ‘SCG(Social Consulting Group)’가 대표적인 전문가 재능 기부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이 단체를 설립한 고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부는 돈이 만드는 가치보다 더욱 많은 가치, ‘함께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갖게 하여 준다. 이를 통해 자신이 변하고 미래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재능기부자의 능력을 필요한 이들에게 연결해주는 ‘재능기부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하는 등 재능기부는 단순한 기여가 아닌 하나의 사회적 트렌드로서 성장하고 있다.  


 

재능기부, 나눔과 착취를 오가다


지난 4월, 대한체육회 공식 트위터에 게재된 ‘감사업무 재능기부자 모집’ 게시물은 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하며 시민들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들이 내건 조건은 ‘공인회계사 또는 세무사 분야에서 3년 이상 근무 혹은 감사업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재능기부를 요청하는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우며 전문성을 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대한체육회의 행동에 ‘전문분야에 대한 재능기부를 요청하며 조건을 다는 것은 국내 체육계의 대표 단체로서 옳지 않다’, ‘공공기관이 재정 상태를 들여다보는 감사를 무상으로 해줄 사람을 찾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실제 온라인 구인사이트의 3년 차 회계 감사 평균 연봉은 2,500만 원 이상’이라고 말하며 이를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재능기부를 당연시하는 문화가 늘어나면서 해당 업계 종사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한다. 특히 예술계 종사자의 경우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실제 ‘갑’의 위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재능기부는 무형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예술가들은 재능기부가 보편화하며 지위나 관계를 무기로 이를 강요하는 주변인들이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서울에서 인디밴드를 운영하는 한 기획사의 대표는 ‘재능기부’가 노동 착취를 부르는 기만적인 단어라고 이야기하며 “공무원들의 반강제에 가까운 협박에 10건의 공공기관 행사를 한다면 그중 2건 이상의 비자발적 재능기부를 해야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 착취는 대체로 예술계에 만연했으며 예술인들이 지닌 재능기부에 대한 반감은 생존의 위협이 될 만큼 절박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부가 필요한 영역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으며 국경없는의사회 같은 NGO의 활동은 재능기부의 적절한 예로 볼 수 있다. 오랜 시간과 금전을 투자해 얻은 전문성과 기득권을 기부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장려해야 하는 문화다. 하지만 공익의 원칙을 말하는 ‘프로 보노’가 없는 강요로 인한 재능 기부는 기부가 아닌 착취라고 예술인들은 말한다. 현재도 온라인 커뮤니티들에는 심심치 않게 재능기부를 강요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다. 영화감독 임기웅은 자신의 SNS에서 재능기부나 봉사를 제안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올린 바 있다. 임 감독의 SNS의 내용은 ‘모르는 사람에게 재능기부를 요구하지 말라. 요청 대상의 직업에 관련된 일은 요구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고 공고나 광고를 통해 솔직하게 도움을 청해라, 차비와 식사는 기본적인 예의며 책임이 필요한 일에는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재능기부라는 나눔의 문화가 국내 사회에 건전하게 정착될 수 있도록 재능 기부에 대한 시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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