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사)대한가수협회 김흥국 회장
[단독 인터뷰] (사)대한가수협회 김흥국 회장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6.06.22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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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가수들의 든든한 버팀목, 김흥국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수들의 복지를 돕고,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하겠습니다”


  

 

 

 


음악과 함께하는 삶
 

음악이란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으로 그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음악은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 즉, 인간 가까이에 존재하는 예술인 셈이다. 실제로 다수의 사람은 길거리를 오가며 상점에서 틀어놓은 노랫소리를 접하고, 사람들이 빼곡한 대중교통 속에서 이어폰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도 한다. 심지어 적막함이 돌 것 같은 병원에서도 음악을 트는 곳들이 늘고 있다. 병원 방문객들에게 부작용 없는 약물인 음악을 처방해 그들의 불안정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지친 심신과 스트레스를 보듬어 주기 위해서다.
 

연령과 성별, 국적, 학벌, 경제력 등 음악을 즐기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없다. 그래서일까? K-POP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각광 받고 있다. 쉬운 멜로디와 따라 하기 쉬운 댄스로 구성된 K-POP을 듣고자 한국 TV를 시청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났으며, K-POP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자 가수들의 콘서트장을 직접 방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또한, 장르와 관계없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은 관람객의 감정 몰입과 이해도를 높여주는 데 도움을 준다. 음악 소재 영화 ‘원스’가 대표적이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글렌 핸사드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 속에 숨겨진 사랑의 아픔을 한눈에 알아본 마르게타 이글로바의 스토리를 다룬 원스는 외국영화임에도 이국적인 영상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으로 국내 관람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음악을 논하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가수’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팔자 좋은 직업이란 인식이 강해지면서,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상위권에 가수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수 또한 호흡기를 통해 소리를 끌어내고 소리 안에 감정과 리듬 등을 모두 담아야 하기에 데뷔하기까지 호된 연습 기간을 거쳐야 한다. 또한, 데뷔하더라도 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지 못하면 오랜 무명기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람은 가수의 꿈을 포기한다. 하지만, 정말 음악이 좋아 꼭 노래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이들은 포기하지 못하고 작은 무대에서라도 자신만의 음악을 선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대한가수협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 하나만을 바라보며 가수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협회 등록 가수는 천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연회비 18만 원을 내지 못하는 가수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사)대한가수협회 김흥국 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수들의 복지와 권익보호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김흥국 회장 또한, 오랜 무명기간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그는 1985년에 ‘창백한 꽃잎’으로 데뷔한 이후, 5년간 무명생활을 거쳤다. 당시, 김 회장은 MBC 사옥에 살다시피 하며 ‘재떨이 닦기’와 ‘구두 닦기’ 등으로 PD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1989년에 배따라기의 이혜민 씨가 작사·작곡한 ‘호랑나비’를 만나며 인기 대열에 올라섰다. 호랑나비의 경쾌하고 흥겨운 리듬에 김흥국 회장만의 독특한 추임새, 현재까지도 유명한 쓰러질 듯 말 듯 한 호랑나비 춤은 대중들에게 어필됐고, 국민히트곡으로 자리 잡았다. 김흥국 회장 또한 가수 인생 중, 가장 희망적이고 인상적인 순간으로 대중들에게 호랑나비를 선보였을 때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오랜 무명기간을 거치는 동안, 저희 어머니가 저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셨고 집안 환경도 어려웠죠. 그래도 해병대 정신으로 잘 참아오다 보니 호랑나비라는 곡을 만나게 됐지요. 호랑나비를 통해 저희 가족이 지니고 있던 무거운 짐들이 모두 해결됐어요. 정말 저나 저희 집에나 대단한 희망을 가져다 준 노래인 거죠”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 2010년부터 2011년까지 MBC 라디오 ‘김흥국, 김경식의 두시만세’를 진행하던 김흥국 회장은 2011년 6월, 당시 총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MBC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많은 선·후배들이 보내온 격려 문자와 전화로 힘을 얻었다는 그는 그 중에도 가수 남진에게 가장 큰 격려를 받았었다고 털어놨다. 최근, 김 회장은 아쉽게 하차했던 라디오 시장 재진입에 성공했다. 현재 SBS 라디오 ‘김흥국 봉만대의 털어야 산다’에서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김흥국, 그의 인생을 돌아보다


Q. 가수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11살까지는 축구 인생을 걸었죠.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제 삶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저희 어머니가 홀로 6남매를 키우시게 되셨는데, 그 상황에서 더 이상 축구를 이어나갈 수 없게 된 거죠. 당시 서라벌 중학교라는 예술 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 인생을 걷게 됐습니다. 창백한 꽃잎으로 데뷔하기 전, 밴드 활동도 했어요. 서라벌 고등학교 시절에는 밴드부에서 드럼을 쳤었고, 해병대 전역 후에는 록밴드 ‘오대장성’을 결성해 리드보컬과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Q. ‘호랑나비’만큼이나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이렇게 나이 먹은 뒤 말하기 부끄럽지만, 호랑나비가 제 대표곡이라면 59년 왕십리는 제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59년도는 제가 태어난 연도에요. 어려운 상황에서 성장하고 힘든 생활을 이어오다 이 노래를 받았는데, 멜로디와 가사에서 제가 겪었던 옛 추억이 떠올랐어요. 다른 분들이 들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시대에 살아온 분들에게 오랫동안 불리기 좋고 기억에 남는 노래가 아닐는지요.



Q. 무보수로 (사)가수협회 협회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 협회가 10여 년이 됐는데, 회비 또는 연회비 18만 원으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실제로는 협회 인기 임원 가수분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죠. 정부에서 지출해주면 좋지만, 그러기 위해선 저희 협회가 더 열심히 일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연말에 가수협회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리고 올해 5월 2일, 가수협회가 45년 만에 사단법인으로 재창립해서 10주년이 됐죠. 당일, ‘가수의 날’을 공식 선언하고 협회 회원들과 체육대회를 진행했어요. 또, 앞으로 원로가수를 포함한 협회 가수들과 무료공연, 낭만 콘서트 등 전국투어를 진행할 거에요. 올 한해에는 역대 회장님들이 못했던 부분도 소화해 협회의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 나갈 예정입니다.



Q.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연기활동도 하셨습니다

1989년에 영화 ‘앗싸!호랑나비’에 주연으로 출연했죠. 그리고 이후, 심형래 씨의 우뢰매가 아동 영화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 한 영화 제작자로부터 영화 ‘반달가면’으로 아동 영화 시장을 장악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죠. 이후 1990년에 ‘전설의 용사 반달가면’을 시작으로 ‘신비의 용사’, ‘우주의 용사’ 등 총 6편의 반달가면이 제작됐어요. 그중 다섯 편에서 제가 주인공인 ‘반달가면’ 역을 맡았지요. 당시는 출연료를 제대로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영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만큼 그 제작자분이 영화사를 계속 운영하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게 연락 한 번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하



Q. 예능에서 활약하시며 ‘예능 치트키’라는 애칭을 얻으셨는데요

기자분들이 만들어 주신 거죠. 호랑나비 이후로 정말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등등. 난 과거에도 무슨 일을 하든 현재처럼 활동해 왔어요. 지금에야 몇몇 후배들이 내가 하는 말을 살려주니깐 지금처럼 주목받는 거지. PD나 작가들은 출연자가 자기들 형식에 맞춰주길 원하는데 난 그 틀을 무너뜨리니깐 불안하기도 하고 나를 특이하게도 볼 거예요. 하지만, 난 방송하는 사람이 대본대로만 하는 건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또한, 제 신조대로 하고 싶은 말과 표현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송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그 틀을 제가 깬 거죠. 선배님들은 이런 모습에 놀라시기도 할 거예요. 10대 가수 출신이 코미디언도 아닌데 예능에 나와 전성기를 가고 있다는 건 정말 전무후무 캐릭터이지 않습니까? 하하



Q. ‘김흥국’ 하면 축구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인데요?

축구 정말 좋아하죠. 아직도 조기 축구회에서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은퇴한 스티븐 제라드를 좋아하는데, 나도 조기 축구회에서 제라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축구에서 어시스트를 해주는 수비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그게 잘 안되면 성적이 잘 안 나오거든. 이게 내가 제라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 해병대 출신 대표 가수로서, 해병대 입소 연예인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두려워하지 말고 입소하라! 양아들 이정한테도 제가 해병대를 추천해줬죠. 그 이전에는 스타들이 병역을 기피하거나 꺼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말 안타까웠어요. 아무리 바쁘고 인기가 많아도 제때 군 복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해병대 출신 후배들이 많아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후배 한류 스타들이 해병대에 계속 가줬으면 좋겠어요.



Q. 김흥국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몰래 시작한 만큼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저도 이렇게 오래 운영될지는 몰랐죠. 순전히 내 씀씀이를 줄여 많은 이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시작한 것이 벌써 16년 정도 됐네요. 근데 또 일 년에 한 번 통장정리를 해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계시더라고요. 참 아무튼 자기 이름을 걸고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Q. 대표적인 기러기 아빠로 꼽히시는데요

아들, 딸 나이 차 때문에 한 명이 교육을 마치면 한 명이 시작하고 이래서 한 10여 년 정도 하고 있죠. 근데 애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부부가 떨어져 사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가 들면 건강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함께 뭉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기러기 생활을하고 있지만 바쁜 와중에도 항상 가족 생각을 해요. 가족들, 많이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가수라는 게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안 좋은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틈나는 대로 봉사활동에도 앞장서고 정말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계속 기억되고 싶습니다.



최근 ‘예능 치트키’라는 애칭이 생길 만큼 다양한 방송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김흥국 회장. 김 회장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며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담/임성지 기자  사진, 글/ 오혜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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