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Story]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컨버스
[Fashion Story]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컨버스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6.06.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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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은, 컨버스


트렌드에 구애 받지 않고 고유의 색을 지켜온 브랜드



  

▲ⓒ by Aidan Carney on Pexels

 

 


아메리칸 오리지널 캐쥬얼 스포츠 기업인 컨버스(Converse)는 10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해온 전통 있는 브랜드다. 실제로 컨버스는 신발을 처음 제작한 1908년부터 현재까지,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고 브랜드만의 색깔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패션이라는 한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패션에 스포츠, 뮤직,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며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컨버스, 역사를 되짚어 보다
 

컨버스의 역사는 창설자인 마르키스 컨버스(MARQUIS M.CONVERSE)로부터 시작됐다. 1908년, 30대 후반이었던 마르키스 컨버스가 매사추세츠 몰든(Malden, Massachusetts)에서 계단 추락 사고를 겪은 후 미끄럼 방지를 위해 평편한 신발 바닥에 고무를 덧대 착용한 것이 컨버스의 시초였다. 고무와 천 소재를 사용해 컨버스를 본격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한 마르키스 컨버스는 매사추세츠에 컨버스 회사의 모태가 되는 컨버스 방한용 고무창 신발회사(Converse Rubber Shoe Company)를 설립했다. 설립 이후, 1910년부터 5년 동안 매일 4천 켤레의 신발을 생산해 낸 컨버스는 1915년에 컨버스 풋웨어 라인 생산을 시작했다. 또한, 테니스용 신발을 출시해 1918년까지 매출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루었다. 1917년, 컨버스는 All Star(올 스타) 신발을 출시하며 또 한 번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에서 농구가 인기 스포츠로 떠오르던 시기에 선보인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는 농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컨버스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올 스타 농구화가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1918년, 컨버스는 농구팀 Akron Firestones, Original Celtics, Buffalo Germans 소속 농구 선수인 Charles Hollis Taylor(Chuck Taylor, 척 테일러)에게 올 스타 신발을 후원했다. 척 테일러는 후원받은 올 스타 신발을 착용하고 미국 전역에 농구화와 농구를 알렸다.

1921년, 척 테일러는 공식적으로 컨버스 회사에 합류했다. 컨버스 회사에 일원이 된 척 테일러는 올 스타 신발이 더욱 완벽한 농구화로 자리 잡기 위해 개선돼야 할 발목 지지대 등의 요소들을 컨버스 측에 제안했다. 당시에 선보여진 올 스타 신발은 현재까지도 컨버스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척 테일러는 컨버스의 올 스타 신발 홍보 대사 겸 세일즈맨으로 활약했고 이를 바탕으로 1922년에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노스캐롤라이나 주립 대학교)에서 최초의 농구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의 활동이 기반이 돼 유명세를 얻은 컨버스는 1923년, 모든 올 스타 모델 발목에 척 테일러 서명이 들어간 고무 패치를 부착해 컨버스화 심벌을 제작했다.

최초의 흑인 농구팀인 뉴욕 렌즈(The Rens)의 모든 선수는 컨버스 신발을 신고 1949년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농구경기에 참여했다. 뉴욕 렌즈는 2,588승, 381패라는 기록을 세우며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을 획득했고 컨버스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1935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드민턴 챔피언 선수 JACK PURCELL(잭 퍼셀)과 내구성 강한 신발을 디자인해 출시하기도 했다. 잭 퍼셀이 디자인한 신발은 할리우드와 어리고 부유한 학생들의 잇 아이템으로 꼽혔으며, 1939년에는 제1회로 개최된 NCAA 챔피언십 경기에 참여한 모든 선수가 잭 퍼셀이 디자인한 스니커즈를 착용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선수가 척 테일러 올 스타 신발을 착용했었던 1949년, 미국 농구 협회와 내셔널 베스킷볼 리크가 합병하여 NBA를 형성하기도 했다. 1966년, 컨버스는 올스타 스니커즈의 얇은 버전 ‘옥스퍼드’를 소개했다. 당시 필라델피아 소속이었던 윌트 체임벌린(Wilt Chamberlain) 선수는 척 테일러 올 스타 신발을 신고 펼쳤던 경기에서 NBA 단일 경기 역사상 최고의 기록인 100점을 수립했다. 이후에도 컨버스는 1966년에 OXFRD라 불리는 올 스타 단화 모델과 농구 프로팀 유니폼과 어울리는 7가지 색상의 척 테일러 올 스타 라인, 1974년에는 서핑과 스케이트를 즐기는 이들에게 사랑받은 기능성 단화 라인을 선보였고 1981년에 신발 산업 최초로 바이오 메트릭 실험 등을 진행하며 지속해서 발전해왔다.




한국 시장에 자리 잡은 컨버스 

 

75주년이던 1992년, 컨버스는 전 세계적으로 5억 켤레의 신발을 판매하며 식지 않은 인기를 입증했다. 1970년 이후 ‘척 테일러 올 스타’ 패치를 부착한 가죽 농구화가 출시되자마자 100만 켤레 이상이 순식간에 팔리는 일도 있었다. 2002년까지 123개의 국가에 7억5천만 켤레 이상의 척 테일러 올 스타 신발을 판매한 컨버스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멀티숍 개념이 없던 1996년, 한국에서는 금강제화 계열사인 스프리스의 전개로 처음 소개됐다. 당시 컨버스는 한 매장에 한 브랜드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등장했으며, 합리적인 가격과 편안한 착용감, 패션성으로 젊은 층에 어필했다. 실제로 컨버스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며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배경이 바탕이 돼, 스프리스는 연 매출 1,500억 원 달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컨버스 미국 본사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계약을 했던 금강제화의 스프리스는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해 2004년 말부터 컨버스 제품을 수입 및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컨버스의 독점권을 가지고 스프리스를 포함한 4∼5개의 대기업이 각축전을 벌인 끝에, 반고인터내셔널이 2005년부터 5년간 컨버스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컨버스 국내 독점권을 획득해 권리를 행사했다. 반고인터내셔널은 2005년 8월 24일, 대전에 국내 1호점을 오픈한 뒤 국내에 만연해 있던 싸고 만만한 신발이라는 컨버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이루기 위해 일명 ‘짝퉁’이라고 불리는 제품을 단속하고 처리하고자 했다. 또한, 미국 본사와 협조해 뮤직과 패션, 아트 등을 접목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했다. 반고인터내셔널의 노력 끝에 컨버스는 스트리트 캐주얼로 자리 잡았고 대중적이며 라이프스타일과 근접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됐다.
 

일부 컨버스 착용자들은 일부러 꺾어 신거나 빨지 않고 신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은 편안함이 컨버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더러워지고 닳아도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꼽히는 컨버스는 편안함과 컨버스 브랜드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매력으로 앞으로도 계속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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