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이세돌 9단
[Special Interview] 이세돌 9단
  • 임성희 기자
  • 승인 2012.01.27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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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바둑랭킹 1위, 32연승의 신화를 일궈낸 역전의 승부사

 

불세출의 바둑스타 이세돌은 바둑계에서 가장 비범하고도 당찬 인물로 꼽히는 바둑 아이콘이다. 그의 공격적인 바둑 스타일과 야생마 같은 행보는 언제나 바둑계에서 이슈가 되었다. 그의 튀는 행동이 간혹 기성세대와의 충돌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는 소신을 펼쳐가기 위한 이세돌만의 스타일이 오해를 산 결과이기도 하다. “이세돌 답지 않은 바둑은 두고 싶지 않다!”라며 그만의 바둑 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세돌의 행보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근 그의 자서전 『판을 엎어라』를 출간하며 다시 한 번 세간에 이세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드라마틱한 역전의 승부사 이세돌

불꽃의 승부사, 큰 판에 강한 진정한 승부사. 12세의 나이에 혜성같이 등장해 조훈현, 이창호, 서봉수 등 기라성 같은 당대 고수들을 이기고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이세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그에게 붙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역전의 승부사’다.

이세돌의 초반 포석은 매끄럽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일찌감치 패색이 짙은 경기도 많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세돌의 무시무시한 대반격은 시작된다. 상대의 혼을 뺄 듯 정신없이 흔들어 결국 거짓말 같은 역전승을 일궈내는 그의 바둑 스타일은 전 세계 바둑 팬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초반의 불리한 형세를 뒤집고 승리를 얻는 그의 바둑에는 분명 특별한 점이 있다. 그것은 강력한 ‘수읽기’와 ‘집중력과 승부근성’이다. 하지만 이런 역전승이 그의 전매특허가 된 것은 놀라운 수읽기, 무서운 집중력과 승부욕과 더불어 경기(판)를 엎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마지막까지 기회를 노리면 흐름이 반드시 넘어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향한 멈춤 없는 질주가 고요했던 바둑계를 뒤흔들고 있다. 그의 자유분방하고 강한 소신은 젊은 팬들에게는 용기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상징이자 롤 모델이 되었다. 이제는 기성세대도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의 소신에 뜻을 보태고 있다.

 

이세돌이 『판을 엎어라』를 통해 말하는 그의 바둑

 

“나에게 아직 명국은 오지 않았다!”

이세돌은 패한 판이라도 꼼꼼히 복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대국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역전승을 거둔 대국에서조차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경기’라고 말한다. 비록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대국 내용에 아쉬워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승리보다 더 높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기보’다. 그는 『판을 엎어라』에서 ‘이세돌 다운’ 기보를 남기고 싶으며. 아직 자신에게 만족스럽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명국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때 그는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나 바둑계를 잠시 떠난 적이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소신을 다시 펼치기 위해, 자신만의 명국을 만들기 위해 반상 앞에 다시 섰다. 바둑 인생의 쉼표였을 뿐, 마침표는 아니었던 것이다.

『판을 엎어라』라는 제목은 지금까지 좋지 않은 흐름을 수없이 뒤집고 바둑판을 지배한 이세돌식 바둑을 말하는 함축적인 문장이다. 앞으로 그가 얼마나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제목의 의미처럼 판을 지배하며 자신만의 바둑판을 만든다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명국에 한층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흔까지만 정상에 있을 수 있다면”

스포츠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면 아무래도 신체 조건이 천천히 하강곡선을 그리게 마련이다. 대부분 프로 스포츠에서는 30대 중반을 넘어서면 슬슬 전력이 떨어지고, 마흔이 넘어가면 현역에 머물러 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면 바둑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만 쓰는 것이니 다른 스포츠보다 나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안 될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바둑도 확실히 나이와 상관관계가 있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면 바둑이 쉽지 않다. 쉰이 넘은 나이에도 세계대회 우승까지 차지하며 정상급의 기력을 유지하고 있는 조훈현 9단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람이다. 그런 예는 바둑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그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사는 아마 지금으로서는 이창호 9단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의 기록도 뒤처지지만 지금과 같은 절정의 기력을 마흔, 쉰이 넘어서까지 유지할 사람은 아무래도 이창호 9단뿐일 듯하다.

예전부터 마흔을 넘기고서도 기력을 유지할 자신은 없었다. 하물며 쉰은 언감생심이다. 마흔까지 만이라도 정상급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할 만큼 한 거다. 그만하면 내 바둑 인생은 성공한 거라고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대충 둬도 괜찮은 바둑이란 없다”

바둑기사라면 상대가 약하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갓 프로가 된 신인이든, 정상의 자리에 오른 고수든 상대를 얕잡아보는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나쁜 습관이 생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가 약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데 굳이 힘을 쓸 필요가 없잖아? 강한 상대와 둘 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두면 되지. 그게 페이스 조절이잖아.”

얼핏 그럴 듯하다. 상대가 약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바둑 두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하면 자신의 바둑 전체가 오염된다. 약한 상대인지 강한 상대인지 따지는 것도 나의 주관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는 심리가 조금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가 아닌데도 얕잡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결국 ‘누구와 둬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바둑을 두게 된다. 그때의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한 해에 수십 판, 많게는 100판이 넘는 바둑을 둬야 하는 프로바둑기사가 모든 대국에 100퍼센트 집중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대국 일정이나 컨디션에 따라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과 상대가 약해 보인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신예 바둑기사들 중에서는 이런 심리적인 함정에 빠져서 자칫 나쁜 습관을 들이는 경우가 있다. 반드시 경계해야 할 마음속의 적이다. 호랑이는 사냥을 할 때 큼직한 사슴이든 작고 약한 토끼든 최선을 다해서 뒤쫓아 먹잇감을 구한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고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바둑을 두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가장 재미있는 바둑 파트너, 구리 9단”

만약 구리(중국 바둑기사)와 10번기가 성사된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10번기란 일본 에도시대에 시작된 바둑계의 ‘끝장대결’을 말한다. 10번의 바둑을 두면서 4판의 차이가 나면 치수(置數, 기력의 정도에 따라 누가 먼저 둘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가 고쳐진다. 상대보다 하수로 판명돼 치수를 고치게 되면 은퇴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불멸의 기성(棋聖)’으로 추앙받는 위칭위안 9단은 1930~1940년대 17년 동안 일본의 쟁쟁한 고수들인 기타니 미노루, 후지사와 구라노스케, 사카타 에이오 등과 대결해 모조리 치수를 고친 것으로 유명하다.

10번기는 위험부담도 크다. 예전에는 10번기에서 지는 걸 두고 ‘명예살인’이라고도 했다. 지금은 ‘이벤트’ 정도로 여기니 크게 낙담하거나 슬럼프가 오지는 않을 거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모든 대국은 전적으로 평생 남는다. 또한 10번기는 3번기나 5번기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야말로 진검 승부다. 바둑에 3번기, 5번기, 7번기는 있지만 9번기는 없고 정점에 있는 게 10번기다. 요즘 결승은 3번기가 대세인데 그건 단기전이고, 10번기는 최장기전이다. 짝수 대국이니까 5 대 5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비기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진짜 승부라는 느낌이 든다. 10번기를 지면 설령 그다음에 다른 기전에서 이겼다고 해도, 둘 사이의 승자는 10번기를 이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만약 내가 10번기를 이긴다면 다른 기전의 결승에서 세 번이나 맞붙어 진다고 해도 둘을 평가할 때 사람들 입에서 결국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그래도 이세돌이 10번기를 이겼잖아”가 될 것이다. 반대로 진다면 100년이 흘러도 나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나올 것이다.

“이세돌? 좋은 기사였지. 하지만 10번기에서 구리한테 졌잖아”

6 대 4로 지면 슬럼프나 낙담까지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7 대 3으로 진다면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완패인 셈이니 아무래도 타격이 있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있지만 반대로 승자가 되면 얻는 것도 크다.

10번기가 성사된다면 설레는 대국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부담이 있긴 하지만 부담감 없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을까? 기분 좋은 대국이 될 것 같다. 대국을 할 때는 부담감이나 중압감이 무척 싫다. 하지만 지나고 나면 지든 이기든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어진다. 그래서 계속 바둑을 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바둑기사에게는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저 상대는 이기고 싶다’는 강렬한 승부욕도 있어야 한다. 10번기를 도전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이나 묘하고 설레는 기분이다. 생각하고 있으면 입에 침도 마른다. 이건 돈 주고 살 수 있는 기분이 아니다. 그런데 돈을 받고 그런 기분을 느끼다니……. 그게 프로바둑기사의 좋은 점이 아닐까?

출처 이세돌 『판을 엎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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