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극’
가정폭력,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극’
  • 김도윤 기자
  • 승인 2016.05.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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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도윤 기자]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극’


오랫동안 단절되지 못한 가정폭력

 


 

최근 연이어 보도된 아동학대부터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가정폭력.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부모,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등 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주는 행위를 뜻한다. 보통 가정폭력 하면 신체폭력이나 언어폭력을 연상하지만, 가족구성에게 무관심하거나 방치하는 행위 혹은 가족구성원의 재산을 함부로 하는 것 역시 엄연히 가정폭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정’


가정폭력은 개인적인 정신질환과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거나 혹은 관습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여성이었던 이유도 가부장적 잔재가 아직 사회 깊숙이 남아있어서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에 의하면 2015년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되거나 미수에 그쳐 목숨을 건진 여성은 최소 18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틀에 한 명꼴로 살해되거나 살해 위험에 처한다는 걸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으로 인해 많은 여성이 피해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생 원인이 분명한 다른 폭력과 달리 가정폭력은 매우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특히, 사회학습으로 인한 가정폭력의 전이는 가정폭력 단절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지난해 인천에서 발생한 ‘11살 학대 소녀 탈출사건’을 보면 친딸을 3년 4개월 동안 감금하고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한 아버지도 유년시절에 계부한테 학대를 당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어려서 가정폭력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아이들은 폭력만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이라는 사고를 갖는다. 이러한 아이들은 이후 성장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거나 혹은 자녀에게 폭력을 대물림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보고가 있다.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을 집필한 런던정경대학(LSE) 사회학과 스탠리 코언 명예교수는 ‘부인’을 설명할 때 가정폭력을 예시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가정폭력의 형태는 일탈현상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여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정상화(nomalization)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가해자와 해당 가정의 주변인들은 이 과정에서 대중의 시선을 차단·봉쇄하여 가정폭력을 행사한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은폐한다. 이에 피해자는 과거에 여성을 재산으로 간주하던 가부장적인 풍습의 잔재,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념 등으로 침묵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피해자, 페미니스트, 전문가들의 활동을 통해 사건이 폭로되면서 폭력 사실을 가해자가 인정하는 인정단계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때, 가해자는 가정폭력 초기 피해자들이 폭력을 근절한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를 든다. 이는 가정폭력이 장기화를 거치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그런 일은 없었어요.’(피해자, 친지, 이웃사람), ‘술만 안 마시면 멀쩡한 사람이에요.’(피해자), 그걸 진짜 폭력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가해자), ‘맞는 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어요.’(가해자, 관찰자)라는 관념을 갖고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당하는 이유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달라지는 가족폭력의 형태


일반적으로 가정폭력은 남편이 아내에게 가하는 폭력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매 맞는 남편’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가정폭력 피해 남성이 급증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폭력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법원으로부터 상담 위탁을 받은 가정폭력행위자 93명을 분석해 발표한 ‘가정폭력행위자 상담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행위자는 남성 82.4%(77명), 여성 17.2%(16명)로 남성 92.6%, 여성 7.4%였던 2004년에 비해 여성 비율이 9.8% 증가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피해 여성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주먹을 휘두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가정폭력의 가해 여성이 가해 남성과 비교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알코올 의존과 폭력허용도는 매우 낮지만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는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정희숙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은 통제, 억압, 징벌 등이 폭력의 동기지만, 여성은 방어, 보복, 분노 때문에 폭력을 가한다”며 “생존·방어적 폭력은 일방적 폭력과 구분돼야 하며, 처분의 부과기준도 달라져야 한다”고 전했다.


  가정폭력에 있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듯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 역시 무색해지고 있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 자료를 보면 아동학대의 가해자 5명 중 4명은 바로 부모로,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전체의 79.8%(9,34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75.5%(8,841명)는 친부모, 4.0%(474명) 계부모, 0.3%(32명)는 양부모로 조사됐다. 즉, 아동과 가장 유대감이 깊고 물보다 진한 혈육인 친부모가 그 ‘혈육’이라는 이유로 아동을 학대하는 것이다.


  아동학대는 피해 아동에게 씻을 수 없는 심리적·육체적 상처를 남긴다. 2014년 보건복지부 조사결과 피해 아동의 82.2%가 신체장애나 정서적 문제 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15.9%가 불안장애·주의산만·반항 및 공격적인 성향 등을 보였으며, 심하면 지적장애·지체부자유(肢體不自由)·뇌병변장애(腦病變障碍) 등을 앓기도 했다. 최근 경기도에서 11살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원인 역시 아동학대 때문이었다. 미성년자인 그는 아버지의 학대를 참지 못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가정폭력에 있어 영원한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만의 고민이 아닌 지구촌 전체의 고민거리


가정폭력은 개인 소득이 낮은 국가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연합(EU), 오세아니아 등과 같은 국가에서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비율이 평균 2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프랑스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사망은 19% 줄었지만, 고의적인 가정폭력에 의한 사망률은 40%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국립범죄처벌관측소(ONDRP)가 밝힌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1년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은 122명으로 평균 3일에 한 번 사망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사망자의 수는 2010년보다 2011년에 두 배 이상 증가해 좀처럼 가정폭력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줬다.


  특히, ‘여성이 살기 가장 위험한 3번째 국가’로 뽑힌 적 있는 파키스탄은 사태가 심각하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여성응답자 중 53%가 ‘가정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여 충격을 안겨줬으며, 설문조사에 참여한 현지 15~19세 소녀 가운데 30% 이상이 이미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지난해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전년보다 28% 증가해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최근, 부모의 계속되는 학대로 자살기도 사례가 증가하자, 이에 일본 정부는 아동을 학대한 부모가 반대하더라도 피해 아동을 아동상담소 시설에서 잠시 보호할 수 있도록 상담소의 운영지침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재 일본 현행법상 아동보호소가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중국도 올해 3월 1일부터 첫 가정폭력에 관한 법률인 ‘반가정폭력법’을 실행했다. 매년 증가하는 가정폭력 중 유독 ‘매 맞는 남편’이 대폭 증가했다고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이 같은 사실은 어린이 돌봄 포털 ‘베이비트리닷컴’이 중국 전 지역 2천500명의 기혼 남녀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결과에서도 나타난다. 이 포털사이트에 의하면 구이저우(貴州)성에서 여성 응답자의 70%가 남편을 상대로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행사했고, 남성은 52%만이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이에 중국 혼인가정공작연합회의 수신 회장은 “2012년까지는 여성이 가정폭력 가해자로 신고한 사례가 거의 없었는데 그 이후 가해 여성 수가 늘고 있다”며 “사회 현상의 변화로 여성의 경제력이 커져 점차 독립적인 위치를 확보하여 가정 내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가정 폭력의 가해 여성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


‘4대악’으로 규정하여 단절되어야 할 사회악으로 떠오른 가정폭력. 매년 증가하는 가정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가정폭력피해자 지원기관과 경찰의 협업 발전 방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2015 해외 전문가 초청 가정폭력방지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때 존 베이어 가정폭력개입 프로그램(DAIP) 이사장과 제니퍼 로즈 피해자 지원 컨설턴트가 ‘덜루스 모델(Duluth model)’을 설명했다.


  덜루스 모델은 가정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서, 1981년 미국의 한 여성 운동가가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여성들 대부분이 가정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가정폭력에 대응하고자 경찰과 시민단체, 법률·의료 사회서비스 등 여러 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해 해당정보를 주고받거나 관리하고 있다. 경찰이 작성한 초기 보고서는 관련 시민단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공유하여 증거와 증인, 수사 상황, 가해자의 과거 이력 등이 담겨 있다. 현재, 덜루스 모델이 적용된 지역의 가정폭력 가해자 68%가 8년 이상 가정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가정폭력 대응책으로 떠올랐다.


  최근, 증가한 아동학대·살해사건에 관해서도 새로운 해결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모교육을 체계화하자는 목소리가 가장 지배적이다. 특히, 이혼을 앞둔 부부를 상대로 법원에서 시행하는 부모교육은 아동학대 방지교육의 목적으로 포함할 예정이다. 이 같은 취지는 미성년인 자녀가 부모의 이혼 후에도 이전과 비슷한 환경 제공을 위해서 시작되었다. 즉, 가정폭력에 정부개입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에 관한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우리들의 인식이 먼저 개선돼야 할 것이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들이 자신의 소유물이라고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특히, 이러한 인식은 아동학대 가해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김형모 한국아동복지학회장은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인식변화를 촉구했다. 김 회장은 “이전부터 우리는 은연중에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한다. 이 같은 사고는 아이의 권리가 배제된 채 ‘내 소유물을 내가 훈육하는 것’이라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무의식중에 자식을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보기에 아동 훈육방법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의 한두 번의 실수 또는 잘못을 훈육이라는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이번 부천 토막살인 사건을 담당한 경찰 범죄심리분석관 역시 “아버지는 체벌로 숨진 아들을 제재하는 것만이 최선의 훈육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왜곡된 교육관을 지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끔찍한 참극을 불러왔는지 알 수 있다. 


  영국에 과학소설가인 H.G.Wells에 의하면 가정은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이어 보도되는 가정폭력의 사례들을 보면 Wells가 말한 ‘가정’이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갖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 집단인 가정. 가정폭력에 대응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관심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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