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하는 결혼 물가로 결혼 기피 현상까지
상승하는 결혼 물가로 결혼 기피 현상까지
  • 한태윤 기자
  • 승인 2011.12.23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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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돈 모아서 ‘평범한 가정’ 꾸릴 수 있을까요?”
[이슈메이커=한태윤 기자]

[Wedding Report]
결혼자금

 

회사원 송 모씨(30·여)는 6년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 나이는 꽉 찬 서른두 살. 2년 전부터 결혼 이야기가 오갔지만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돈이 문제였다. “사랑만 있으면 된다? 환상이죠.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결혼하고 안정적으로 기반을 잡으려면 여자 쪽에서 못해도 4000만∼5000만 원은 준비해야 해요. 그 돈이 어디서 나오겠어요? 일찍 결혼하는 친구 대부분은 집안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요. 저희 집은 아니거든요.”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대다수의 20, 30대 미혼 여성에게 결혼은 해야 할 이유보다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다.

 

사랑≠결혼, 결혼=돈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직장인 이 모씨(29·여)는 4월 결혼한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훌쩍 오른 ‘결혼 물가’를 체감했다. 같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친구는 ‘스드메(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비용으로 230만 원을 지불했지만 이 모씨는 310만 원을 부담했기 때문이다. 5개월 만에 무려 80만 원의 비용이 더 든 셈이다. 예비부부들의 ‘필수 코스’인 스드메 가격은 드레스나 미용실 선택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것이 웨딩업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국내 혼례문화의 병폐 중 가장 큰 문제는 ‘과비용’이다. 하지만 일생 단 한번뿐인 이 날을 최고의 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서민층이 살 집을 마련하고 가구와 전자제품을 채워 번듯한 신혼살림을 차리려면 결혼비용을 비롯해 주택담보대출 등 평생 대출이자를 갚고 살아야 하는 현실이다. 거품이 낀 예식비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김인옥 성신여자대학교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전체예식장 시장규모의 정확한 파악이 어려우며 혼례산업 성장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연구가 매우 미비하다”며 “예비 신혼커플들의 40~50%가 웨딩컨설팅 업체에 의존하고 있지만, 혼례 관련 산업에 대한 제도 및 장치가 미흡해 소비자 분쟁사례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500가구의 가족원 4754명을 대상으로 남녀 평균 결혼비용을 조사한 결과 평균적으로 남자는 약 8000만 원, 여자는 약 3000만 원의 결혼비용이 든다. 국내 전체 혼례산업은 주택마련 비용 40조 원을 포함해 약 55조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광렬 그린웨딩 포럼 대표는 “왜 항상 예식의 과비용 구조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예식 비용의 표준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과비용에 대한 답이 없으니 예식비용 품목에 대한 표준을 세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과시문화 역시 과다비용 혼례에 주범이다. 결혼비용을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는 자녀들이 많아 당사자 중심이 아닌 부모 중심의 혼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렬 대표는 “부모 중심의 혼례준비는 축의금 회수라든지 부의 과시, 체면 등을 중시하는 물질주의 혼례준비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수직 상승하는 ‘결혼 물가’
스드메 패키지 비용부터 예물, 신혼집, 살림살이 등 각종 비용은 점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다. 특히 결혼 준비에 필요한 서비스 항목은 실제 원가 상승과 아무런 상관없이 폭등하고 있다. 예물 가격도 많이 올랐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1돈(3.75g)당 21만4170원이던 금 소매가격은 올 9월 현재 28만3140원으로 32.2%나 급등했다. 다이아몬드의 가격도 30∼40% 상승했다. 서울 종로귀금속의 한 예물업체 관계자는 “예전에는 500만 원 정도면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으로 구성된 예물 세트 3개 정도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요새는 금값이 많이 올라 그 돈으로는 1, 2개 세트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신혼물가 상승세는 통계청의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의 경우 신혼살림에 꼭 필요한 35개 품목 중 22개의 물가지수가 올해 8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보다 올랐다. 올해 8월 주방용품 물가지수는 7.8%, 가구는 5.4%, 침구 및 직물은 6.1%, 가정용 기구는 1% 상승했다.

전세난에 무방비 노출된 신혼부부
예비부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신혼집 구하기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주택 전세가격지수는 8월 현재 전년 동월 대비 12.7%나 올랐다. 특히 아파트는 전세금이 16.7%, 매매가는 9.2% 상승했다. 가격뿐만 아니라 물량 자체가 적은 것도 문제다. 최근 가까스로 신혼 전셋집을 얻었다는 한 남성은 “서울에서 전세를 얻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집주인들이 보증부 월세(반전세)를 선호하다 보니 신혼부부에게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비에나래(대표 손동규)가 필링유와 공동으로 1일∼6일 전국의 결혼희망 미혼남녀 538명(남녀 각 269명)을 대상으로 전자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 보유해야할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질문에 대해 남성 응답자의 36.8%와 여성의 64.7%가 ‘전세비’라고 답해 각각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뒤로는 남녀 간에 다소 차이를 보였는데, 남성은 ‘취업’(31.2%), ‘집 구입’(27.5%), ‘월세’(4.5%) 등의 순으로 답했으나, 여성은 ‘집 구입’(21.5%)이 ‘전세비’ 다음으로 많았고, ‘월세’(10.8%), ‘취업’(3.0%) 등이 뒤를 이었다.
비에나래 손동규 대표는 “여성의 경우 86.2%가 남성은 전세나 자가 보유 등 최소한 전세자금 이상 확보한 후 결혼에 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그러나 집 구입에 대한 부담이 있는 남성은 본인 여건에 따라 의견이 천차만별인데, 64.3%만이 전세비 이상 모은 후 결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답했으나, 나머지 35.7%는 월세나 취업만 하면 결혼하여 살면서 경제력을 확충해도 된다는 입장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실 저축은행 때문에 자금이 묶이거나 결혼준비자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최근 글로벌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손해를 본 예비부부들도 많다. 내년 1월 결혼하는 김 모 씨(32)는 예금보호한도인 5000만 원 이하로 12월 만기 예금에 돈을 넣었다가 최근 저축은행 영업정지로 자금이 묶였다. 12월 결혼을 앞둔 이모 씨(31)는 “결혼준비자금을 놀리기 아까워 7월 중순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가 20%가량을 손해봤다”며 “전셋집도 못 구한 상황에서 결혼준비자금까지 잃고 나니 앞날이 캄캄하다”고 털어놨다.
국내 중견 기업에 다니는 송 씨의 월급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지만 직장생활은 고작 1년 남짓이다. 결혼자금을 모으려면 한참 멀었다. 입는 것 먹는 것을 아끼고, 펀드며 주식이며 다 해봤지만, 물가 높고 경제가 불안하니 백약이 무효다. 송 씨 주변에는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미루는 커플도 많다. 출혈 대출이나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서울 시내에 전셋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면서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헤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취업난도 결혼을 더욱 어렵게 한다. 대학 졸업을 미루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면 결혼자금을 모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송 씨의 한숨도 깊어간다. “정말 결혼하고 싶어요. 앞으로 1, 2년 내에 결혼 이야기를 마무리 짓지 못하면 남자친구와도 어떻게 될지 불안합니다. 과연 그때까지 돈을 모아서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까요?”

결혼기피에도 영향 미쳐
지난달 LG경제연구원이 16∼59세 1400명을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25%만이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인식이 ‘꼭 해야 하는 것’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으로 바뀌었음을 입증하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11월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성인 여성 500명, 남성 478명을 대상으로 ‘미혼남녀의 결혼인식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의향이 있다고 답한 여성이 전체 응답자의 51.2%에 달했다. 절반 이상이 ‘결혼을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9.4%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더 ‘과격한’ 답을 내놓았다. 혼례 과다비용 문제는 젊은 층의 결혼기피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식비용 부담으로 인해 사실혼 관계이나 예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가 전국기준 4.5%(1만 5천여 명)이고, 서울시의 경우 혼인신고만 하고 살고 있는 가정이 1개 구(區)당 130여 가구가 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올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자체 생활체감정책단 천 명을 대상으로 관혼상제 중 가장 개선이 필요한 영역에 대해 묻자 전체 응답자 56.1%가 혼례라고 답했다. 세부적인 응답 내용 중 ‘혼수 부담이 결혼기피에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약 80%가 ‘그렇다’고 대답해 젊은 층의 결혼기피 영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 사회의 혼인 예식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96%나 차지했다. 어떤 식으로 변화가 필요하냐는 구체적 질문에는 ‘여자 예단준비, 남자 집 장만’이라는 혼수 공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7.7%로 가장 높았고 ‘예식장 중심의 결혼 문화’가 27.4%로 그 뒤를 이었다.
작년 3월 18일부터 혼례 관련 정부부처가 보건복지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관된 후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생활 공감 관혼상제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여성가족부는 저렴한 혼례문화 확산운동을 추진하기위해 지자체와 공기업 등 시설활용을 통해 공공시설 예식장을 보급하는 한편 메이크업 꽃길, 웨딩 카, 주례 기부 등 예식 구성을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
윤호식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장은 “올 초부터 전문가와의 간담회 등 실태조사와 관련 기준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며 “특별히 매체나 파급력이 높은 드라마를 통해 혼인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인식개선이 있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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