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미국 대선 주요 쟁점 떠오른 ‘워크(Woke)’
[이슈메이커] 미국 대선 주요 쟁점 떠오른 ‘워크(Woke)’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6.02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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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잠룡들 ‘PC주의’ 저격
중도까지 확장하는 안티 워크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미국 대선 주요 쟁점 떠오른 ‘워크(Woke)’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성 소수자 권리와 정치적 올바름(PC) 등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념 문제에서 시작된 양측 갈등이 내년 미국 대선의 중대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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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주요 잠룡과 디즈니의 갈등

디즈니는 5월 18일(현지 시각) 사내 공지를 통해 약 10억 달러를 들여 월트디즈니 월드 리조트가 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진행하려던 오피스 단지 건설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디즈니는 오는 2026년까지 오피스 단지를 완공해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이곳으로 테마파크 놀이기구 개발 부서 등의 일자리 약 2,000개를 옮겨올 예정이었는데 이를 전면 백지화한 것이다.

 

이러한 디즈니의 발표는 디샌티스 주지사의 대선 출마가 임박한 상황에서 나왔다. 대선 출마 공식 선언을 일주일여 앞두고 디샌티스 측에 악재일 수 있는 소식이 나온 셈이다. 디즈니는 밥 아이거 현 최고경영자가 한때 민주당 소속 대선 후보로 거론됐을 만큼 민주당 분위기가 강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 미국 인권단체들이 유색 인종과 성 소수자에 적대적이란 이유로 플로리다주에 여행주의보를 발령하며 디샌티스 주지사를 향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보수 유권자 결집을 위해 디샌티스 주지사가 불붙인 ‘문화전쟁’이 플로리다 경제를 떠받치는 관광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앞서 디즈니와 디샌티스는 디즈니월드가 있는 리디 크리크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두고 충돌했다. 해당 지역에서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 디즈니에 대해 주의회에서 56여 년간 부여해온 규제 면제와 면세 등 광범위한 자치 권한을 디샌티스가 박탈하려 하자 디즈니는 이를 무력화하기 위한 법·행정 조치로 맞섰다. 여기에 지난해 3월 디샌티스가 일선 학교에서의 성적 지향·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한 이른바 ‘게이라고 말하지 말라(Don’t Say Gay)법’을 통과시키자 디즈니 직원들이 이를 비난하는 항의 파업을 벌이며 공개적으로 반발한 이래 양측의 갈등은 격화하는 양상이다.

 

지역사회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선샤인 스테이트’란 별칭에 걸맞게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지난해 플로리다를 찾은 관광객만 1억 4,000만 명에 달했고, 2019년 관광으로 벌어들인 돈만 988억 달러에 이른다. 이에 플로리다 도시의 민주당 소속 시장들이 “(우리 도시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환영한다”며 디샌티스 주지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것도 플로리다에서 관광이 갖는 중요성과 무관치 않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월트디즈니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좌)Florida Department of State, (우)Pixabay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월트디즈니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좌)Florida Department of State, (우)Pixabay

 

도널드 트럼프 당선 때도 반 PC 정책 한몫

디샌티스가 디즈니가 ‘워크(woke)’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공화당 주요 대선 주자들에게 ‘안티 워크(anti-woke)’는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한 매력적인 구호다. 1930년대 미국 인권 운동에서 처음 언급된 워크는 우리말로 ‘깨어있음’을 뜻하지만, 미국 보수층에선 이를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에 빠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실제 워크를 입에 올리는 보수 정치인은 디샌티스만이 아니다. 아예 워크에 대해 책을 쓴 공화당 대선 주자도 있다. 바이오기업 로이반트 사이언스를 창업해 백만장자가 된 비벡 라마스와미는 2021년 ‘워크 주식회사(Woke Inc)’를 펴내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책은 워크에 빠진 기업들이 인종, 성별, 성적 지향에 지나치게 집착해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라마스와미는 2월 공화당 경선 도전을 선언했다.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미국은 워크에 빠진 나라가 아니라 강하고 자랑스러운 곳”이라고 적었다.

 

이처럼 미국 보수 정치계에서 워크는 가장 유행하는 정치적 수사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를 이용해 보수 표심을 자극한 바 있다. 그는 1930년대 흑인 인권 운동 노래인 ‘스코츠보로 보이즈’에서 유래된 워크를 2015년 대선 무대에 끌어들였다. 그는 공화당 경선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며 “미국 엘리트들의 PC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PC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근 중도층까지 이런 움직임에 일정 부분 수긍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 보수 정치가 안티 워크를 적극적으로 외치는 주요 요인이다. 지난달 USA투데이와 입소스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깨어있다고 말한다면 어떤 기분을 느끼겠는가”라는 질문에 보수계층은 무려 60%가 모욕적이라고 답했다. 중도층에서도 모욕적이라 답한 대답이 40%로 “칭찬이라고 느낀다”고 대답한 32%를 앞섰다. 이에 대해 미국 디애틀랜틱은 미네소타주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촉발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과 함께 미국 사회 내 인종주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진 게 결정적인 이유라고 분석했다. 당시 운동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보수 지지층에선 “백인도 역차별을 받고 있다”라는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동안 진보 진영이 주도해온 의제들에 대해 누적돼 온 피로감과 거부감이 터져 나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안티 워크’를 외치며 보수 표심을 자극한 바 있다. ⓒTrump White House Archived/Flickr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안티 워크’를 외치며 보수 표심을 자극한 바 있다. ⓒTrump White House Archived/Flickr

 

문화 콘텐츠에 인종적 다양성 담으며 논란도

문화예술계의 PC 열풍에 대한 반감도 크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는 작품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고 성 소수자 배역을 늘리며 다양성을 꾀하는 중이다. 최근 흑인 인어공주를 내세운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개봉을 앞둔 데 이어 역사적 인물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흑인 배우에게 맡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도 공개됐다. 과거 주요 배역을 백인으로만 채우던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과지만, 이를 두고 과도한 PC주의라 인식하며 워크에 대한 조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퀸 클레오파트라의 경우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고증을 둘러싼 논란은 더 크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클레오파트라 7세의 피부색이 밝고 그리스계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조각품과 동상이 최고의 증거”라면서 “클레오파트라 7세를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집트의 한 변호사는 이집트 내 넷플릭스 접근 차단을 요청하는 고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작진과 출연진이 감정적으로 맞받아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흑인 배우에게 맡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논란도 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클레오파트라 7세 역을 흑인 배우에게 맡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퀸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논란도 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워크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로 변했다”며 “교육, 저널리즘, 할리우드, 스포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워크는 통일된 견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실제 WP가 미국 폭스뉴스에서 워크가 언급된 횟수를 분석해본 결과 2021년 직전 연도 대비 4배 가까이 사용량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서는 직접적인 방어에 소극적이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조 바이든 대통령은 깨어 있는가”라고 묻자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공화당에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처럼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 결과로 50개 주 중 최소 39개 주의 주지사와 상하원 의회가 모두 같은 정당 소속인데, 이는 70년 만에 최고치다. ‘워크 논란’이 1년 반 남은 미국 대선 정국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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