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끊이지 않는 기업 간 ‘베끼기’ 논란
[이슈메이커] 끊이지 않는 기업 간 ‘베끼기’ 논란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5.1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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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침해 여부 판단 어려워 처벌 쉽지 않아
원조 여부 놓고 소비자 혼란 겪는 일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끊이지 않는 기업 간 ‘베끼기’ 논란

 

인기 있는 브랜드나 경쟁사 제품을 모방해 출시한 ‘미투(Me Too) 제품’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유통가에서는 이로 인한 분쟁도 자주 발생하며 법정 공방으로 번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 간 아이디어 도용을 둘러싼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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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 ‘미투 제품’ 논란 반복

‘미투 제품’이란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또는 경쟁 브랜드를 모방해 출시한 제품을 의미한다. 이로 인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잊을 만하면 제조사들이 서로를 모방하다가 상표권 분쟁이 일어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사태가 반복된다.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제품의 명칭과 맛, 디자인 등을 베껴 유사한 제품을 내놓는 식이다. 모방 제품 출시로 위험 부담을 줄이고 연구·개발 비용을 아끼겠다는 의도다.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다가온다. 익숙하게 알려진 제품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어떤 회사가 원조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서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는 어떤 제품이 원조인지를 묻는 게시물들이 많다.

 

식품업계의 경우 1982년 출시한 농심의 ‘육개장 사발면’이 여러 경쟁사의 유사 제품을 낳은 바 있고, 롯데제과의 ‘뻥소리’는 1982년 출시된 서울식품공업의 ‘뻥이요’ 제품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1976년 오리온에서 처음 내놓은 ‘오징어 땅콩’과 롯데의 ‘카스타드’, 광동제약의 ‘힘찬하루 헛개차’ 등도 ‘미투 제품’으로 꼽힌다.

 

 

‘미투 제품’이란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또는 경쟁 브랜드를 모방해 출시한 제품을 의미한다. ⓒPixabay
‘미투 제품’이란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또는 경쟁 브랜드를 모방해 출시한 제품을 의미한다. ⓒPixabay

 

미투 제품으로 인한 분쟁은 수십 년간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오고 있다. 기업들은 법정 공방을 불사하기도 한다. 모방 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늘리며 원조 업체들이 피해를 입을 경우 해당 제조사를 상대로 강경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원조와 미투 제품을 명확하게 구별해 시비를 가리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 사례가 ‘초코파이’다. 1974년 오리온이 출시한 초코파이가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 후 롯데와 크라운의 초코파이가 등장했다. 오리온은 1997년 경쟁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초코파이가 상표로 식별력이 없다’며 롯데와 해태의 손을 들어줬다. CJ제일제당이 2017년 오뚜기와 동원F&B 등을 상대로 자사 제품 ‘컵반’을 모방했다며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일도 있었다. 기존 제품이 갖는 통상적인 형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미투 제품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적은 투자비용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브랜드 신뢰도 제고와 공정한 경쟁 차원에서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주요 식품업체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율은 1%를 밑돈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들어 대기업이 ‘협업’을 내세워 벤처·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논란도 잦아지고 있다. ⓒKBS 뉴스화면 갈무리
최근 들어 대기업이 ‘협업’을 내세워 벤처·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논란도 잦아지고 있다. ⓒKBS 뉴스화면 갈무리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논란도 잦아져

성분과 품질이 상향평준화 된 화장품업계에서도 같은 논란은 적잖게 발생한다. LG생활건강과 토니모리는 상품 디자인을 두고 갈등을 겪은 바 있다. LG생활건강은 토니모리가 자사 제품 ‘빌리프’의 상징과 같은 막대그래프 표장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2019년 LG생활건강은 토니모리의 ‘닥터오킴스’가 표장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사용중단과 함께 제품 폐기 등을 요구했고, 이어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도 제기했다.

 

실제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되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법정공방의 승자는 토니모리였다. 1심 재판부는 토니모리 측의 성과물 도용행위를 인정해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표장의 성분 표시 부분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영역에 해당된다’며 피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그리고 올해 2월 대법원은 항소심과 동일하게 ‘원고 청구를 기각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반대로 LG생활건강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준비하는 곳도 있다. 스타트업 프링커코리아다. 토니모리와의 공방에서 공격을 펼치던 LG생활건강이 이번에는 아이디어를 탈취했다는 의혹 속에 방어를 취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지난해 1월 LG생활건강은 뷰티테크 시장 공략을 위해 미니 타투 프린터 ‘임프린투’를 개발한다고 밝혔는데, 해당 제품을 통해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참가를 발표한 뒤 잡음이 시작됐다. 프링커코리아는 임프린투가 2018년 출시한 자사 ‘프링커’의 콘셉트와 기술 등을 베꼈다는 입장을 전했다. 2019년 LG생활건강의 협업 가능 여부와 공동개발 문의를 받아 2년간 유효한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한 뒤 소통이 중단됐고 LG생활건강이 이듬해 ‘타투 프린터’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특허를 등록했다는 것이다. 프링커코리아는 중소기업 기술보호울타리 피해구제 접수를 마치고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을 검토 중이다.

 

LG생활건강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제품이 아직 출시되지 않아 기술 사양이 공개되지 않은 단계에서 특허 침해나 기술 및 아이디어 탈취 등을 제기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근 공익 재단법인 경청은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최근 공익 재단법인 경청은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도용 입증 어렵고 처벌 수위도 낮아

이처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아이디어 도용’ 의혹과 이로 인한 갈등도 자주 발생한다. 과거 대기업이 ‘전속 거래’를 무기로 하청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일이 잦았다면 최근에는 대기업이 ‘협업’을 내세워 벤처·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논란으로 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이는 기술 침해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반면 ‘아이디어 침해’는 판단이 모호하고 처벌 수위도 낮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침해 행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는데, ‘사업제안, 입찰, 공모 등 거래교섭 또는 거래과정에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기술적 또는 영업상의 아이디어가 포함된 정보를 그 제공목적에 위반해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렇지만 제공받은 사람이 그 아이디어를 이미 알고 있거나 동종 업계에 널리 알려진 경우 아이디어 침해로 보지 않는다. 서비스가 유사하다고 해서 도용이나 탈취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이디어 침해 행위는 형사 처벌 조항에서도 제외돼 있다. 부정경쟁지법에서 상표나 성명, 원산지 표기 등을 침해할 시 형사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아이디어 침해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 대신 행정조사에 따른 ‘시정 권고’만 가능하도록 돼있다.

 

현재 프링커 코리아 외에도 목장 관리 스마트 프로그램인 ‘키우소’가 농협과 갈등을 빚고 있고, 신용카드 결제에 대한 핀테크 기술을 구상해 특허를 등록한 ‘팍스모네’는 신한카드와 분쟁 중이다. 알고케어는 IoT 기반 영양관리 솔루션을 놓고 롯데와, 닥터다이어리는 혈당 관리 프로그램 문제로 카카오와 분쟁을 겪고 있다. 도용 의혹을 제기한 스타트업들에게 지목된 대기업들은 “사실이 아니다”며 적극 반박에 나서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공익 재단법인 경청은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해당 스타트업 대표가 직접 나서 분쟁 상황을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호소했다. 이들 기업들은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은 아이디어 탈취 금지를 위해 특허청이 2018년 부정경쟁방지법을 개정했으나 실효성이 거의 없고 입증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호소했다. 이에 경청에서 활동 중인 박희경 변호사는 형사처벌 규정 신설을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자판기 같은 유료 설비를 부정 사용할 경우에도 3년 이하 징역, 500만 원 이하 규정이 있는데, 과연 아이디어 침해가 이보다 경미한지 의문”이라며 “현행 시정권고를 넘어 시정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감시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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