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없어서 못 사던 ‘에루샤’도 이제는 식상?
[이슈메이커] 없어서 못 사던 ‘에루샤’도 이제는 식상?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3.15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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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중심 신선한 브랜드 찾는 분위기 감지
해외 브랜드 의존에 K패션 우려 시선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없어서 못 사던 ‘에루샤’도 이제는 식상?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 구매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소비한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한국인들이 지난해 명품 구매에 쓴 비용이 2021년 대비 24% 급증한 168억 달러로 추산했다. 1인당 325달러를 썼다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명품 소비 주체로 부상한 2030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명품을 넘어 ‘신명품’이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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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루샤’ 매출액 3조 원 넘어

전문가들은 한국인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로 소비가 곧 투자가 되는 품목이라는 점과 함께 높은 수준의 집단 문화를 꼽는다. 한국은 준거집단의 태도와 행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크게 끼치는 사회 중 하나인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유명인들의 명품 소비가 생활에 속속 스며들면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최근 명품 구매를 촉진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소비이자 곧 투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 교수는 “명품 브랜드에 대한 갈망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고 제한된 공급량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수요가 대기하고 있다”며 “구매 즉시 리셀(resell) 사이트에 올리면 구매 시 가격에 웃돈을 얹어 팔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한국에서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다. 2021년 기준 세 브랜드의 매출액은 3조 2,000억 원대로 전년 대비 1조 원 이상 증가했다. 영업이익 증가율 역시 에르메스코리아 1,705억 원, 루이비통코리아 3,019억 원, 샤넬코리아 2,489억 원으로 전년 대비 신장률이 에르메스 27.8%, 루이비통 98.7%, 샤넬 66.9% 등에 달한다.

 

다만 최근 들어 명품 시장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명품의 주요 소비지인 백화점 성장 둔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소비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명품 가격은 계속 상승하는 점도 성장세 둔화 의견에 힘을 싣는다. 샤넬은 지난해만 가격을 네 번이나 올렸고, 루이비통 역시 두 차례 가격 인상 소식을 알렸다. 에르메스는 올해 초 5~10%가량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명품 시장은 가격을 높이면 수요가 더 커지는 ‘베블런 효과’가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보복 소비가 명품에 지나치게 몰려 희소성이 떨어지면서 가격 인상이 수요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 실제 명품이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매장 입장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들어선 후에도 혼잡스러운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큰 금액을 들여 가방을 사도 ‘3초백·5초백(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범용 핸드백)’이라는 은근한 조롱도 견뎌야 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달가울 리 없다.

 

 

가장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한국에서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다. ⓒPixabay
가장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히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한국에서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고 있다. ⓒPixabay

 

기성세대 명품 대신 해외 고가 패션에 주목

이로 인해 MZ세대를 중심으로 ‘에루샤’가 아닌 신선한 브랜드를 찾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발맞춰 국내 패션 기업 역시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신(新)명품’ 선호 현상인데, 취향과 개성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품은 기성세대 명품이 아닌 해외 고가 패션을 의미한다.

 

수입 브랜드의 경우 유통 계약에 따라 라이선스 제품만 들여오거나 협업을 해서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주요 수입 브랜드의 공식 수입처인 삼성물산과 신세계인터내셔날 등은 신명품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 패션은 신명품 인기를 주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편집숍 ‘10꼬르소꼬모’는 신흥 브랜드를 알리는 역할을 했고, 2012년부터 아미와 메종키츠네, 톰브라운, 르메르 등 수입 패션들이 연이어 고성장을 이뤘다.

 

 

전문가들은 한국인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로 소비가 곧 투자가 되는 품목이라는 점과 함께 높은 수준의 집단 문화를 꼽는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전문가들은 한국인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로 소비가 곧 투자가 되는 품목이라는 점과 함께 높은 수준의 집단 문화를 꼽는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이러한 흐름 속에 판매채널도 분주한 모습이다. 더현대서울과 대전신세계, 동탄 롯데백화점 등은 일명 ‘에루샤’ 없이 신명품 브랜드에 집중해 성공을 거뒀다. 더현대서울은 오픈 첫해인 2021년 8,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메종마르지엘라와 톰브라운 여성, 오프화이트 등을 들여놓으며 신명품 브랜드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대전신세계는 르메르, 아미, 톰포드 매장 등을 선보였다. 동탄 롯데백화점도 골든구스, 메종 마르지엘라 등 신명품을 앞세웠다.

 

신명품의 인기 배경으로는 브랜드마다 추구하는 철학이 제품 디자인에 반영되었다는 점이 크다. 르메르는 절제된 멋, 아미는 심플하고 편안한 감성 등의 가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더해 친환경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가치 소비를 중요시하는 MZ세대에게 선호도가 높다는 업계의 설명이다. 또 하나의 요소는 로고다. 누구나 한눈에 알아보는 기존의 명품 대신 특색 있는 패턴과 로고가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우 얼굴 로고가 새겨진 메종키츠네나 하트 모양 로고로 유명한 아미에 젊은 층이 열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패션 기업들은 최근 들어 MZ세대 수요에 맞춰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백화점그룹
국내 패션 기업들은 최근 들어 MZ세대 수요에 맞춰 해외 디자이너 브랜드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백화점그룹

 

경쟁력 갖춘 자체 브랜드 구축 필요성 지적도

명품 판매가 급증하면서 의류 수입액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류 수입액은 130억 달러에 달한다. 2018년 1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한 뒤 코로나19 여파에 2020년 96억 달러로 감소했다가 2021년 110억 달러로 다시 반등했다. 2012년만 하더라도 63억 달러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10년간 급속히 늘어난 셈이다.

 

신명품을 수입하는 패션 기업의 실적도 개선되어 삼성물산 패션은 신명품 ‘4대장’으로 불리는 메종키츠네, 아미, 르메르, 톰브라운을 바탕으로 수년간 두 자릿수 이상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이에 더해 차세대 브랜드 론칭을 속속 준비하고 있고 업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브랜드를 보유한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라인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국내 패션 업체들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제기된다. 국내 기업이 수입한 브랜드가 시장에서 자리를 잡으면 계약 종료 후 글로벌 본사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2011년부터 삼성물산 패션 부문이 국내 독점 판매 계약을 맺어온 톰브라운은 오는 7월 톰브라운 코리아를 설립하고 국내에 직 진출할 예정이다. 또한 2012년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과 국내 수입·유통을 맡아왔던 프랑스의 셀린느도 계약이 종료되자 올해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지방시와 몽클레르, 돌체앤가바나 역시 같은 사례다.

 

국내 패션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브랜드 육성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경우 지난해 수입 패션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 9% 증가했으나 자체 패션 부문 매출액은 -9%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패션업계에서는 당장 눈앞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수입 브랜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자체 브랜드를 키워야 한다고 전한다. K패션의 성장에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성공할 시 수익성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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