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복합 경제위기 속 총수 책임론 재부상
[이슈메이커] 복합 경제위기 속 총수 책임론 재부상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3.01.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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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체제 강화 흐름 한풀 꺾여
8년 만 회장 승진한 JY, 삼성전자 ‘책임경영’ 강조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복합 경제위기 속 총수 책임론 재부상

 

한국식 오너 경영체제의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 여러 평가가 나오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성장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들어 전문 경영인 체제가 강화되는 모습이 잠시 감지되기도 했으나 복합 경제위기 속 다시 오너의 리더십에 힘을 싣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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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속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귀

삼성전자 이사회가 최근 이재용 회장 추대를 의결하며 ‘책임경영 강화’를 1호 사유로 밝혔다. 총수 ‘JY’에게 더 큰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 경제위기를 돌파해 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이 회장이 ‘삼성 회장’ 직함을 단 지난해 10월 27일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글로벌 반도체 매출 1위를 최대 라이벌인 대만 TSMC에 내준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반도체 외에도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실적 전망도 불투명하다. 작년 11월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개최한 ‘2023년 경제·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의 5대 주력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분석했다. 여기서 꼽힌 것은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수출과 고용 모두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주력산업들이었다.

 

특히 삼성과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등 5대 그룹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전문가들은 조선산업을 제외하곤 무엇하나 마음 놓을 만한 분야가 없다고 진단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은 혼조세를, 석유화학은 약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됐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재용 회장 추대를 의결하며 ‘책임경영 강화’를 1호 사유로 밝혔다. ⓒ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 이사회는 이재용 회장 추대를 의결하며 ‘책임경영 강화’를 1호 사유로 밝혔다. ⓒ삼성전자 뉴스룸

 

더욱이 정부가 꺼낼 수 있는 정책 방안도 마땅찮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정부 지출을 늘리기엔 재정 건전성이 문제고, 금리를 낮출 여건 역시 안 된다”며 “불합리한 규제 혁파, 낙후된 노동시장 혁신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거론된 해법들의 경우 당장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고 기업 경영에서 하나의 변수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오너의 경영 능력에 따라 기업의 명운이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내 경영 여건상 각종 리스크를 감수하고 결단을 내릴 이는 오너 밖에 없어서다.

 

근래 대기업에 관한 사건·사고가 많이 터져 나오며 오너의 책임론이 부각 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 9월 말 8명의 사상자를 낸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화재와 관련해 대전고용노동청은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과 아울렛 방재·보안시설 하청업체 대표 등 3명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자 닷새 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대전운동본부가 “실질적인 경영 책임자인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입건 대상에서 제외된 건 재벌 총수 봐주기”라며 오너인 정 회장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전문경영인인 소진세 회장과 결별하고 창업자 권원강 전 회장이 3년 만에 복귀했다. ⓒ교촌에프앤비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전문경영인인 소진세 회장과 결별하고 창업자 권원강 전 회장이 3년 만에 복귀했다. ⓒ교촌에프앤비

 

SPC의 총수 허영인 회장은 계열사 공장 직원 사망 사고와 관련한 비난이 커지자 지난해 10월 21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허 회장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의 엄중한 질책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서 총 1,000억 원을 투자해 그룹 전반의 안전 경영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SK C&C 판교데이터 센터 화재로 인한 서비스 장애 사태로 전국적인 혼란을 초래한 카카오는 전문경영인인 남궁훈 각자대표를 사퇴시키며 사태 수습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하지만 성난 여론은 창업자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의 책임을 따져 물었다. 여기에 김 센터장이 경영 전면에 나살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 센터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카카오 경영에 복귀할 계획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아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SPC의 총수 허영인 회장은 계열사 공장 직원 사망 사고와 관련한 비난이 커지자 지난해 10월 21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SPC의 총수 허영인 회장은 계열사 공장 직원 사망 사고와 관련한 비난이 커지자 지난해 10월 21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오너 경영이 ‘책임경영’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이처럼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재계에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부상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현재 경영 환경이 얼마나 엄중한지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전망한 2023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1.8%다. 한국은행과 ADB(아시아개발은행)는 이보다 낮은 1.7%, 1.5%로 내다봤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2% 미만의 성장률을 거둔 것은 처음이다. 기업들의 불안 심리가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다.

 

2021년 12월 삼성전자 김기남 부회장과 미래에셋 최현만 수석부회장이 각각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을 필두로 한동안 전문경영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에 이르기까지 전문경영인이 오너의 리더십을 보완하는 역할이나 예우의 개념을 넘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게 된 경영 트렌드 변화로 풀이됐다.

 

그러나 대내외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은 적극적인 사업 추진 대신 안정적인 관리 업무에 머물러야 했다. 급기야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가다 오너 경영체제로 회귀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 1위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는 전문경영인인 소진세 회장과 결별하고 창업자 권원강 전 회장이 3년 만에 복귀했다. 2019년 당시 권 전 회장은 롯데 출신의 소 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하면서 교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좀 더 투명하고 전문화된 경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최초로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긴 사례로 화제를 모았지만, 4년도 채 되지 않아 이를 번복했다. 국내 위스키 업계 1위 골든블루도 지난달 23일 박용수 회장이 대표 자리에 올랐다. 박용수 회장이 골든블루를 인수한 후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콜마 창업주인 윤동한 회장과 형지그룹 최병오 회장도 2세 경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재등판했다.

 

 

‘위기 극복’을 중요 키워드로 삼으면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의문의 시각도 존재한다. ⓒPixabay
‘위기 극복’을 중요 키워드로 삼으면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의문의 시각도 존재한다. ⓒPixabay

 

대기업들은 오너 3·4세에 힘을 싣는 인사로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추세다. 농심 계열사인 메가마트는 지난해 7월 전문경영인 체제를 접고 오너 경영체제를 다시 가져왔다. 고(故) 신춘호 농심 창업자의 3남인 신동익 부회장이 23년 만에 대표이사직에 복귀하면서다. 오너가 있는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전문경영인 체제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조만간 정몽준 대주주의 장남 정기선 사장이 전문경영인인 권오갑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롯데의 경우 최근 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2020년 일본 롯데에 부장으로 입사해 올해 5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보로 임명된 후 7개월 만의 초고속 승진이다.

 

‘성장’보다 ‘위기 극복’을 중요 키워드로 삼으면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오너 경영이 ‘책임경영’을 담보하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시선도 나온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이 회장이 부회장 직함을 달고 이미 8년 넘게 경영 전반을 이끌어 온 것이 사실이다. 푸르밀 오너 일가는 일방적으로 사업 종료와 직원 해고를 통보하면서 파문의 중심에 서기도 했는데, 2018년 전문경영인이 물러나고 신준호 회장의 차남인 신동환 대표가 경영을 맡은 뒤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르밀 노조는 신 대표에 대해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성을 바탕으로 어떤 조언도 귀담아듣지 않고 무능력한 경영을 해 적자 구조로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오너 경영체제가 지금과 같은 산업 패러다임 대전환기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자상거래 등 기업·소비자 간 거래(B2C)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혁신이 일어나는 것과 달리 전통 재벌기업이 포진된 기업 간 거래(B2B) 분야는 잠잠하다. 중간재 사업, 즉 제조업에선 혁신할 기회도 유인도 전혀 없다시피 한 실정”이라면서 “재벌 소유·지배 구조 때문인데, 총수 일가는 급격한 사업 재편으로 자신들의 지배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이런 구조는 탄소중립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가운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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