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학제적 접근을 통한 중독행동 조절기전 규명
다학제적 접근을 통한 중독행동 조절기전 규명
  • 임성희 기자
  • 승인 2022.12.29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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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학제적 접근을 통한 중독행동 조절기전 규명      

김정훈 연세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 / 중독신경과학연구실 (사진=임성희 기자)
김정훈 연세대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 / 중독신경과학연구실 (사진=임성희 기자)

 

중독 동물모델에 있어 국내 최고의 know-how 축적    
‘세계 마약퇴치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사진출처=프리픽)
(사진출처=프리픽)

 


‘중독(中毒)’, 나와는 먼 단어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알코올중독, 약물중독, 도박중독 등의 단어가 우선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독을 어느 분야에만 특징지어지는 현상으로 볼 수만은 없다. 현대인은 다양한 중독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다. 이에 우리나라 ‘중독’ 연구의 대가인 김정훈 교수는 우리나라도 ‘중독’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과학의 눈으로 ‘중독’을 바라보다
김정훈 교수는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던 중독에 대하여 선구적으로 기초과학적 연구를 시작한 과학자다. 이제까지 남들이 잘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한 그의 동기가 궁금했는데, 그는 ‘학문적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생물학과에 입학하여 분자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생명 현상을 단지 세포 내의 화학적, 물리적 결과로 표현해내는 환원적 접근에 그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불편함을 느낀 그는 생물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며, 인간이라는 큰 개체를 다루는 연구를 시작했다. “뇌와 마음, 행동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면서 학습과 기억, 그리고 동기에 관심을 가졌고, 동기(動機)의 가장 좋은 모델 중 하나로 중독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중독이라는 건 결국, 동기의 문제라고 본 거죠.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물 흐르듯이 오다 보니 오랫동안 중독연구를 해오게 됐습니다” 그가 생물심리학 연구를 위하여 미국에 유학하러 갔을 때, 당시 중독연구는 심리학을 바탕으로 개발된 동물모델에 다양한 생물학적 기법을 이용한 뇌의 기전 연구를 병행하고 있어, 한국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동기에 관심을 두고 있던 김정훈 교수에게는 최적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 김정훈 교수는 주로 향정신성 약물로 분류하는 코카인과 암페타민이 우리 몸에 투여됐을 때, 뇌의 기전을 연구하는 기초연구를 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찾아냈지만, 가장 최근에는 대뇌 보상회로의 중심부위인 중격측좌핵 내 가지돌기의 질적 변화를 유도함으로 중독행동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동물모델을 통해 약물이 투여됐을 때 중독이 일어나는 뇌의 기전을 연구하고, 화학약품 투여, 유전자 조작, 빛 자극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중독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정훈 교수는 오랜 기간 수행한 다양한 약물중독 연구에 대한 공로로 지난 2022년 6월 24일 ‘세계 마약퇴치의 날’ 기념행사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대부분은 마약사범 검거나 중독환자 치료 등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받는 상을 기초과학자인 김정훈 교수가 받았다는 것에 의의가 크다. 그는 “제가 연구한 것들이 당장 신약 개발로 나타났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중독에 관한 저의 기초연구가 쌓이면서 중독의 기전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중독에 의해 뇌가 바뀌면 얼마나 쉽게 돌이킬 수 없는지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알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통령 표창 수상 소감을 밝히며 “이제 우리나라도 마약 청정국이 아닙니다.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2020년 마약류에 단속된 사람의 수가 1만 8천 명을 넘습니다. 보통 적발된 마약류 사범의 20~30배를 상습투여인원으로 보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마약 투약 인구수는 무려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마약 문제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치료 약까지 염두에 두며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도 마약 치료제가 개발된 경우는 아직 없다. 그만큼 인류의 숙제이면서, 아직은 해결되지 않은 난제인 것이다.

보상회로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격측좌핵에 무선으로 빛자극을 줬을 때, 향정신성 약물에 민감화를 억제한다는 것을 동물모델 실험으로 밝혀냈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보상회로 작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격측좌핵에 무선으로 빛자극을 줬을 때, 향정신성 약물에 민감화를 억제한다는 것을 동물모델 실험으로 밝혀냈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2017년 터치스크린 방식을 이용한 도박성 게임 동물모델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주목받은 김정훈 교수는 2021년 특허등록까지 이어가며, 우리나라 행위중독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다.(보상으로 주어지는 설탕먹이와 처벌로 주어지는 게임중지 시간의 양과 그 확률이 각각 다르게 설정된 4개의 선택지를 제공해 주고, 그것을 선택하는 패턴을 통해 위험회피 성향인지 위험추구 성향인지를 파악해 중독될 가능성이 큰 동물을 찾아내는 것이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2017년 터치스크린 방식을 이용한 도박성 게임 동물모델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주목받은 김정훈 교수는 2021년 특허등록까지 이어가며, 우리나라 행위중독 연구에 있어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인다.(보상으로 주어지는 설탕먹이와 처벌로 주어지는 게임중지 시간의 양과 그 확률이 각각 다르게 설정된 4개의 선택지를 제공해 주고, 그것을 선택하는 패턴을 통해 위험회피 성향인지 위험추구 성향인지를 파악해 중독될 가능성이 큰 동물을 찾아내는 것이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행위중독’ 동물모델 개발 및 다학제적 접근
중독은 마약 같은 약물중독뿐만 아니라, 행위중독의 영역도 있다. 도박중독, 쇼핑중독, 게임중독 등이 그 예이다. 김정훈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이 동물모델로 행위중독 연구를 하는 특화된 연구실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에서 먼저 도박성 게임 동물모델 형태로 행위중독 모델이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는 저희가 제일 먼저 그 원리를 도입하여, 처음으로 터치스크린 방식이 결합된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몇 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2017년 첫 논문을 내었고, 2021년 특허를 받았습니다. 위험회피와 위험추구의 성향을 파악해 중독과 연관 지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쥐가 도박성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한데, 김 교수는 2달 정도 훈련하면 모든 쥐가 자신만의 의사결정 패턴을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설탕먹이와 처벌로 주어지는 게임중지 시간의 양과 그 확률이 각각 다르게 설정된 4개의 선택지를 제공해 주고, 그것을 선택하는 패턴을 통해 위험회피 성향인지 위험추구 성향인지를 파악해 중독될 가능성이 큰 동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모델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하기도 했고 또, 현재까지 유일하게 연구하는 그룹이기도 해서 김 교수의 행위중독 연구는 굉장히 독보적이다. 이런 연구성과를 인정받으며 지난 2018년에 이어 2022년도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실지원사업에 연이어 선정돼 행위중독을 다학제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행위중독 모델에 무선광학기술과 바이오 센서 기술을 융합하는 연구입니다. 저희 연구실의 강점인 생물심리학 연구에 전자 및 의학공학적인 부분을 융합해,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게 빛 자극 또는 약물을 주고, 신경세포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선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첨단의 기술이 융합되는 새로운 연구가 될 것이고, 앞으로 신경과학이 추구하려는 연구방향에도 부합하는 매우 흥미로운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김 교수는 가장 최근에 대뇌 보상회로의 중심부위인 중격측좌핵 내 가지돌기의 질적 변화를 유도함(유전자 조작)으로써 중독행동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김 교수는 가장 최근에 대뇌 보상회로의 중심부위인 중격측좌핵 내 가지돌기의 질적 변화를 유도함(유전자 조작)으로써 중독행동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그림=김정훈 교수 제공)

배고픈 쥐가 중독에 더 취약하다?
김정훈 교수의 과학적 호기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독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끄집어내 연구와 연결하는 일을 재미있어한다. “최근에는 식욕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식욕과 보상회로의 상관관계가 보고되고 있는데요, 보상회로는 행동을 반복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즐거운 감정을 느꼈을 때 보상회로가 잘 작동합니다. 저희는 동물모델을 통해 배고픈 쥐가 약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밝혔고, 음식에 대한 갈망이 약물중독으로 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식욕과 중독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면, 중독 치료에 식욕 조절 물질이 이용된다든지, 혹은 거꾸로 식욕과 관련된 비만, 거식증 같은 문제들을 중독 치료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정훈 교수 중독연구의 핵심단어는 ‘갈망’이다. 무언가에 결핍이 있거나, 그것에 대한 의존성이 생기면 갈망이 생기는데, 이것이 중독 치료를 어렵게 한다고 한다. 김 교수는 약물중독이나 행위중독에서 나타나는 갈망을 조절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갖고 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년 넘게 ‘중독’이라는 한 우물을 팠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연구가 너무 재미있었고, 계속되는 과학적 궁금증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연구와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진=임성희 기자)
20년 넘게 ‘중독’이라는 한 우물을 팠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연구가 너무 재미있었고, 계속되는 과학적 궁금증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연구와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진=임성희 기자)

 

“대중에게 ‘중독’ 알릴 수 있는 ‘책’ 펴내고 싶어”
김정훈 교수는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중독’이 암처럼 죽을병이 아니라서 아직 대중의 관심이 미흡한 것 같다며 (웃음) “하지만 누구나 중독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중독은 사람의 동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보상회로가 잘못 기능하여 생기는 일종의 뇌질환입니다. 동기란 어떤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힘이며,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독연구를 통해 사람의 동기가 작동되는 뇌과학적 기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그만큼의 취약성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중독에 대하여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거나, 범죄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중독은 우리에게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의지의 문제를 넘어서 뇌의 문제가 같이 작용하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제가 하는 연구들을 언젠가는 쉽게 정리해서 사람들이 ‘중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내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20년 넘게 ‘중독’이라는 한 우물을 팠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연구가 너무 재미있었고, 계속되는 과학적 궁금증과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그의 연구와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과학적 탐구를 위해 보상회로가 적절히 사용되고, 그 결과들을 통해 지속적인 연구 행동이 가능한 긍정적 중독(?)을 낳은 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재밌게, 정직하게, 꾸준히가 제 연구철학입니다. 재미있어서 하면 결과도 잘 나오겠지만, 설령 결과가 안 나와도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결과에 집착하여 연구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방법과 절차에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얻은 결과라면 예상 밖의 결과에 대한 해석은 충분히 다르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연구하다 보면 대부분은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을 자주 보아 왔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김정훈 교수 연구 이야기를 들으며 중독을 뇌신경과학적으로 연구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을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인문학적으로 중독을 연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그의 사람에 관한 관심이 ‘중독’ 연구로 꽃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직 많은 꽃봉오리를 품고 있다. 그 봉오리들을 하나하나 꽃피우며 우리나라 중독 연구의 발전을 이뤄내길 기대해본다.
 

 

[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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