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청정국’은 옛말, 이제는 ‘신흥국’ 오명
[이슈메이커] ‘청정국’은 옛말, 이제는 ‘신흥국’ 오명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11.1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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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마약도 끊임없이 유통
‘마약과의 전쟁’ 선포한 정부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청정국’은 옛말, 이제는 ‘신흥국’ 오명

 

2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마약은 남의 나라 또는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낮 시내 한복판에서 마약사범이 활개를 치고, TV에 자주 얼굴을 내민 유명 방송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전국 곳곳에서 마약 사건이 터지고 있다. 한 번에 적발되는 양도 ‘천 회 분’에 달하는 등 규모도 어마어마해지는 추세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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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사범의 저연령화 우려스러운 지점

대검찰청의 마약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10,575명에 달한다. 지난해 16,153명이었음을 보면 올해 전체 적발 인원은 지난해보다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국내 마약류 사범은 IMF 금융위기 당시인 1999∼2002년에 4년 연속 1만 명을 웃돌다가 2000년대 초반 강력한 단속으로 2014년까지 2009년을 제외하고는 1만 명 이하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매년 만 명 이상 적발되는 상황이다. 실제 남용자는 10만 명이 넘을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더는 마약 청정국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16년에 이미 유엔이 정한 마약 청정국 기준을 벗어났고 지금은 ‘마약 신흥국’이라는 오명까지 받고 있다. 마약 청정국은 인구 10만 명당 연간 마약사범 20명(5,000만 명 기준 1만 명) 이하인 국가인데, 우리나라는 연간 마약사범이 1만 명을 초과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명 방송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전국 곳곳에서 마약 사건이 터지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최근 들어 유명 방송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전국 곳곳에서 마약 사건이 터지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또한 지난해 국내에서 압수된 마약류는 1,295.7㎏으로 2017년보다 8배 증가했다. 국내 마약 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국제 마약 조직이 우리나라를 주요 시장으로 취급해 마약의 대규모 밀반입을 시도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국제 유통의 손쉬운 경유지로 악용하기도 한다. 9월에는 마약을 삼켜 몸속에 넣어 운반하는 ‘보디패커’까지 국내에선 처음으로 확인됐고, 여기에 마약 투약이 2차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투약 후 환각 상태에서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거나 경찰에게 상해를 가하는 식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지점은 마약사범의 저연령화다. 지난해 20대 마약사범은 5,077명으로 전체의 31.4%에 달한다. 2017년 2,112명(15%)과 비교하면 대폭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19살 이하 450명(2.8%)이나 되는데, 이 역시 2017년 119명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 젊은 층이 마약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늘었다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필로폰 1회 투약분이 약 3만 5천 원, 다시 말해 피자 한 판 값 수준이다 보니 더욱 마구 번지는 추세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급증하는 마약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마약류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급증하는 마약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마약류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자고 나면 신종마약 생겨나고 유통돼

여기에 대마 사범도 꾸준히 늘고 있다. 국내 최대 마약류는 ‘필로폰’인데, 그 비중은 매년 줄어들고 대신 그 빈자리를 대마 사범이 차지하고 있다. 대마사범은 2017년 1,727명에서 3,777명으로 늘어났고, 올해도 벌써 2,136명이 적발됐다. 일부 국가의 대마 합법화 추세에 따라 여행자나 유학생이 밀수 및 흡연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새로운 마약류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마약은 중독성이 발견돼 오남용하기 시작한 물질과 여러 남용 약물을 섞어 새로 조합한 물질을 의미한다. 사법당국은 ‘법률에 명시된’ 마약류만 단속, 처벌 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통해 ‘임시마약류’를 지정해 확산을 막고 있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모두 247종이 임시마약류로 지정됐는데, 이 가운데 150종이 ‘임시’를 떼고 마약류로 전환됐다. 2020년 14종, 지난해 8종이 지정됐고, 올해도 18건이 지정되는 등 임시마약류 지정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관건은 속도다. 신종마약의 개발 속도가 너무 빨라 현장에서 따라잡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필로폰이나 대마 등 기존의 마약류도 빠르게 유통되는 상황 속에 새로운 마약류도 분석, 대응해야 해 수사당국이 이중고에 처한 것이다.

 

또한 중독에 대한 재활과 치료방안도 미비한 상황이다. 많은 약물 사용자가 ‘단약’을 시도하지만, 실제 그중 1년 이상 단약에 성공하는 사람의 비율은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재활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활 치료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하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입해 마약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소관 부처가 분산되어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며 “마약 퇴치 사업의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불법 마약류 단속, 중독자 치료 재활, 대국민 교육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마약 컨트롤 타워 구축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

 

현장 인력·예산 부족에 이중고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난 10월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 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범죄가 어느새 우리 주변으로 깊이 침투해 마약사범이 연소화되고 초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라며 “유관 기관은 물론 국제사회와 적극 협력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며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라고 당부했다.

 

검찰은 일상으로 파고든 마약범죄에 대해 “대한민국이 다시 ‘마약 청정국’이 될 수 있도록 특단의 수사를 하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대검찰청은 서울중앙·인천·부산·광주지검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유관 기관들과 광역 단위의 합동 수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특별수사팀은 관세청, 국가정보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 방송통신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등의 전문 인력이 참여해 총 70∼80명 규모로 꾸려진다. 집중 수사 대상은 대규모 마약류 밀수입과 밀수출, 펜타닐 등 의료용 마약류 불법 유통, 다크웹 등을 통한 인터넷 마약류 유통 등이다. 또한 반입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관세청에 마약 전담국을 신설하고 전문 인력을 키우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이번 조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마약 및 민생 침해 범죄와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라”며 엄정 대응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한 장관은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 명 대비) 연간 마약사범이 1만 명을 초과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상실한 상태”라면서 “현시점은 대한민국이 마약 오염국으로 전락할지, 아니면 마약 청정국 지위를 회복할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당국은 일상생활에서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상품명 앞에 ‘마약’을 붙이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에 절차에 착수한다. ⓒPixabay
당국은 일상생활에서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상품명 앞에 ‘마약’을 붙이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에 절차에 착수한다. ⓒPixabay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마약을 뿌리뽑기 위해 ‘마약 김밥’, ‘마약 치킨’ 등 상품명 앞에 ‘마약’을 붙이는 행위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 절차에 착수한다. ‘마약’이란 표현이 잦아지면 환각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그만큼 약해질 거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장에선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경찰 수사 경비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본예산으로 편성된 572억 원의 수사 관련 경비는 올해 추가경정예산 편성 과정에서 약 29억 원 삭감된 543억 원으로 책정됐다. 1인당 월 수사비로 따져보면 13만 7,000원에서 13만 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욱이 330여 명에 불과한 마약 수사 전담 경찰관 확충도 쉽지 않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마약 수사 전담 인력 증원 요청 및 반영 현황’ 자료를 보면, 경찰청은 2022년, 2023년 각각 216명, 82명의 마약 수사 전담 인력 증원을 요청했으나 정부 심사 과정에서 0명으로 확정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마약 청정국’ 지위를 되찾자는 움직임이 자칫 공염불에 그치게 될 수도 있는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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