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영국의 가장 오랜 군주, 세상에 작별 고하다
[이슈메이커] 영국의 가장 오랜 군주, 세상에 작별 고하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09.27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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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번의 종소리와 100만 명 추모객, “굿바이, 퀸”
변화 맞이한 英 왕실 앞날 ‘가시밭길’ 전망도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영국의 가장 오랜 군주, 세상에 작별 고하다

 

70년 재위 기간 영국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월 8일(현지시간) 향년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여왕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고,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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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가 ‘세계 현대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지난 9월 6일 밸모럴성에서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의 사임을 보고받고,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행사를 치렀다. 스코틀랜드 동북부에 위치한 밸모럴성은 통상 여왕이 긴 여름휴가를 보내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팡이를 짚은 채 미소 짓는 얼굴이 대중에게 보인 마지막 모습이었다.

 

임명 행사 다음 날 주치의들의 권고를 듣고 여왕이 일정을 취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데 이어, 8일 아침 검진에서 “건강이 우려스럽다”는 판단이 흘러나왔다. 이상 징후를 느낀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등 왕실 가족들이 밸모럴성으로 달려갔다. 영국 국민은 지난 2월 코로나19 감염도 이겨낸 여왕의 쾌유를 빌었지만 끝내 서거 소식을 맞닥뜨려야 했다.

 

1926년 출생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다.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평민 출신과의 스캔들로 왕위를 포기하고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승계 서열 1위가 되었고, 지난 1952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의 여왕에 즉위했다. 즉위 이듬해인 195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여왕의 대관식은 전 세계에 생중계됐으며, 2,500만 명이 지켜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그는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하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다. 기존 최장 기록은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7개월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이 전 세계적인 애도 속에 엄수되었고 유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됐다. ⓒThe Royal Family 페이스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이 전 세계적인 애도 속에 엄수되었고 유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됐다. ⓒThe Royal Family 페이스북

 

엘리자베스 2세의 일생은 ‘현대사’ 자체라 할 수 있다. 공주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육군으로 참전했으며, 즉위 후에는 대영 제국의 위상이 추락하던 시기라 영국 식민지의 독립 역시 고스란히 지켜봤다. 그의 재임 기간 미·소 냉전 대립부터 공산권 붕괴와 독일 통일,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이 만난 미국 대통령만 14명이고, 윈스턴 처칠부터 지난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까지 총 15명의 총리를 거쳤다.

 

엘리자베스 2세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전통을 철저히 고수했다. 총리 임명권자이지만 의회의 결정을 존중했으며, 의회 시정 연설에서도 총리실에서 작성한 원고를 받아들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총리와의 면담 때도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러한 품격으로 인해 올해 6월 성대하게 치러진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이들조차도 축하를 보냈다.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

재임 기간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회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여왕이 된 이후에 100개 이상의 국가를 방문했으며, 즉위 25주년인 1977년에는 영국 연방 35개국 지도자들을 축하연에 초대하며 위상을 떨쳤다. 1965년 서독 방문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외교 행사로 남았고, 2011년 옛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공화국을 방문해 해묵은 갈등 봉합에도 힘썼다. 당시 여왕은 “우리가 모두 지난 역사 속에서 과도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슬프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여왕이 만난 한국 대통령만 6명(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이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빈으로 영국에 초청하기도 했다. 또한 1999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부군인 필립공(에든버러 공작)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이곳에서 73세 생일상을 받았다. 여왕은 김치, 고추장 담그기, 농부가 소를 끌고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 등을 지켜봤고, 특히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른 일화가 오랫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좀처럼 맨발을 노출하는 일이 없던 여왕의 소탈한 모습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여왕은 90세가 된 2016년 주영한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하회마을에서 한식으로 마련해준 생일상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를 승계하게 된 찰스 3세의 앞길엔 여러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를 승계하게 된 찰스 3세의 앞길엔 여러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영연방에서 두루 사랑을 받은 엘리자베스 2세는 가족과 관련해선 순탄하지 않았다. 장남인 찰스 3세가 부인 고(故) 다이애나비를 두고 불륜을 저질러 이혼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지지도가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민중의 왕세자빈’으로 불리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던 다이애나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불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엔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대중의 비난까지 받기도 했다.

 

자신은 어린 시절 한눈에 반한 그리스 왕자 필립공과 1947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해 평생을 해로했다. 전기 작가에 따르면 13세의 ‘릴리벳’ 공주는 18세의 필립을 만난 이후 다른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슬하에 찰스와 앤드류, 에드워드 세 왕자와 앤 공주를 뒀다. 필립공이 지난해 4월 99세를 일기로 별세한 뒤 여왕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특히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된 후에는 주요 일정은 찰스 왕세자에게 맡기곤 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버킹엄궁 대문에 걸어 알렸고 10일 동안의 추모 기간을 가졌다. 영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군주는 그렇게 역사가 되어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하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다. ⓒThe Royal Family 페이스북
엘리자베스 2세는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하며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다. ⓒThe Royal Family 페이스북

 

이제 찰스 3세의 시간

1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이 전 세계적인 애도 속에 엄수됐다. 이날 장례식에는 각국 정상과 지도자를 포함해 왕족 등 500여 명이 참석했고 유해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됐다. 이제 초점은 찰스 3세의 대관식으로 옮겨진다. 대관식은 행사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찰스 3세의 즉위 후 수개월이 지난 내년에 열린다.

 

왕세자 책봉 64년 만에 왕위를 승계하게 된 찰스 3세의 앞길엔 본인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 군주제 폐지 여론 등 여러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재위 기간 정치 중립 원칙을 엄수했으나 찰스 3세는 이 문제에서 모친과 다소 다른 노선을 밟아 왔다. 무엇보다 환경 및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의견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권과 마찰을 빚은 사례도 있는데,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했던 1980년대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 3세는 정부의 개발 계획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주민들과 총리의 대화 자리를 주선했으나 대처 총리 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당시 대처 총리는 왕실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될 시 야권 공격의 구실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이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찰스 3세는 이민 정책과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영국은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 현지에서 수속을 밟게 하는 정책을 도입한 바 있는데, 이를 두고 찰스 3세는 ‘끔찍하다’고 평가했다. 한 영국 정부 고위 인사는 현지 언론에 “찰스 왕세자는 공적으로 품위 있는 장식품이지만, 왕이 돼서도 이런 식이라면 매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심각한 헌법 관련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왕세자실은 “정치적 중립을 엄수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여왕의 서거로 구심점이 약해진 영연방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Wikimedia Commons
여왕의 서거로 구심점이 약해진 영연방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Wikimedia Commons

 

영연방 국가들과의 관계도 찰스 3세의 주요 과제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다. 영국 국왕이 국가원수인 나라는 영국을 포함해 15개국에 달한다. 과거 영연방 국가들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중심으로 영국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여왕이 서거한 이후 이 관계가 와해할 거라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삼는 카리브해 섬나라 앤티가 바부다는 이미 3년 내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할지를 묻는 국민 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뉴질랜드마저 공화국 전환을 언급하며 영연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공화국 전환과 관련한 질문에 “결국 (그것이) 뉴질랜드가 향해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아던 총리는 “긴급한 의제가 아닌 만큼 단기적 조치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 대표적인 영연방 국가인 호주에서도 공화국 전환 논쟁이 불붙고 있고,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 다른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군주제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영국 군주제의 앞날에 물음표가 던져진 가운데, 왕실의 장래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논의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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