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상처만 남긴 ‘학제 개편’
[이슈메이커] 상처만 남긴 ‘학제 개편’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09.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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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반발 속 박순애 장관 사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도 불러와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상처만 남긴 ‘학제 개편’
 
‘만 5세 입학’ 논란으로 거센 홍역을 치른 교육부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의 신뢰를 잃으면서 향후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현장 수용성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져서다. 교육계에서는 정치적·정무적 능력이 있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새 장관으로 선임돼야 현 정부 교육개혁 동력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교육부
ⓒ교육부

 

과정 없는 정책에 여론 폭발
지난 7월 29일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새 정부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취학연령을 현재 만 6세에서 만 5세로 1년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이 조속히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해 정부가 취학연령을 하향한다고 알려진 후 졸속 추진이란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다. 교육·시민단체들은 합세해 ‘만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를 만들어 해당 정책에 대해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 76.8%가 해당 정책에 반대의견을 냈고,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학생·학부모·교원 13만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설문에서는 97.9%가 이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윤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온 8월 8일, 박순애 전 부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은 제 불찰”이라며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직을 사퇴하고자 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첫 교육부총리 지명자였던 김인철 후보자의 낙마에 이어 인사청문회도 없이 부총리로 임명 강행한 지 34일 만에 다시 교육부의 수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취학연령 개편안도 사실상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8월 9일 국회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은 드리지 못한다”면서도 “계속 고집을 하거나 추진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7월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제20대 대통령실
지난 7월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취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제20대 대통령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책 추진 과정부터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실제 이번 정책은 교육부 내부 논의와 연구용역, 시·도 교육청의 의견 수렴과 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등의 과정 상당수가 생략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국회 토론회에서 “저를 비롯한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언론보도를 보고야 취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알게 됐다”며 “무거운 과정이 너무 가볍게 이뤄졌다”고 했다. 교원단체나 영유아 교육기관, 학부모 등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박 전 장관의 사퇴는 윤 대통령에게도 큰 타격을 줬다. 박 전 장관은 인사 검증 단계에서 만취 음주운전, 갑질 논란, 논문 중복게재 등 논란에 휩싸였지만 윤 대통령이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 번 비교해보라.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며 적극 비호한 바 있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때 20% 중반대로 하락하기도 했다.
 
 
정부가 취학연령을 하향한다고 알려진 후 졸속 추진이란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고, 결국 박순애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정부가 취학연령을 하향한다고 알려진 후 졸속 추진이란 비판이 각계각층에서 쏟아졌고, 결국 박순애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유보통합과 초등 전일제’로 전이된 논란
정책 추진 과정 못지않게 정책의 허점이 컸다는 말도 나온다. 학제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검토했던 역대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취학연령 하향만 따로 떼서 검토했다. 그럼에도 학제가 1950년대 확정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입학연령 하향으로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 영유아 시기부터 나타나는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든 추진 근거가 정교하지 못하고 과거의 찬성론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지적이다.
 
학부모들은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크게 반발했다. 진짜 사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만 5세로 취학연령을 하향할 경우 교육격차만 1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해관계자 사이에서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유보통합과 전일제학교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을 신속히 추진할 것임을 전했다. ⓒ교육부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유보통합과 전일제학교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을 신속히 추진할 것임을 전했다. ⓒ교육부

 

다만 학제 개편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는 취학연령 하향과 맞물려 학제 개편 논의가 이대로 공론장에서 퇴출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학제 개편과 9월 학기제 개편은 지난 30년간 정부가 추진한 교육혁신의 단골 메뉴였기 때문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등 정책을 추진해야 할 나름의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사태는 만 5세 아동 교육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 이에 대해 교육계 다수가 제시하는 대안은 만 5세에 대한 ‘국가 책임 교육’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사실상 만 5세 취학 폐기 방침을 밝힌 자리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과 전일제학교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교육부가 관리하는 유치원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어린이집의 통합 논의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졌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전일제학교 추진방안 역시 시설과 인력 문제가 존재한다. 대안 역시 앞으로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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