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수학계의 노벨상, 한국계 최초의 필즈상 수상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수학계의 노벨상, 한국계 최초의 필즈상 수상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2.07.2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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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수학 영역의 해법 제시
제2, 제3의 ‘허준이 키즈’ 등장할 것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수학계의 노벨상, 한국계 최초의 필즈상 수상

 

7월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이자 한국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의 수상자로 발표됐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세계수학자대회에서 4년마다 수여하는 수학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서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이하 수학자를 대상으로 주어진다.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계 수학자로서는 최초의 수상이기에 의미가 깊다. 수학자로서 이미 2014년부터 필즈상 후보자로 지목되며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허준이 교수. 예상치 못한 구설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수학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허준이 교수를 이슈메이커가 알아보았다.

 

 

ⓒPrinceton University
ⓒPrinceton University

 

조합대수기하학의 새 지평 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서울대학교에서 학·석사를 마친 허준이(June Huh)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이자 한국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지난 7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필즈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 수학자들의 축제로 최근 4년 동안 독보적인 업적을 보인 40세 이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이 상은 전 세계 수학자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큰 화제가 된다. 이미 2014년부터 필즈상 후보로 거론됐었지만,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던 허 교수가 마침내 수상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국내·외에서 꾸준히 후보로 거론됐단 허 교수는 어떠한 인물일까?

 

이번 수상은 조합대수기하학(방정식들로 정의되는 기하학적 공간을 연구하는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분야)을 통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도록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코호몰로지(Cohomology/기하학적 공간으로부터 대수적인 불변량들을 추출하는 일반적인 수학적 방법론)의 관점에서 수학의 통일성을 찾고자 연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코호몰로지 이론의 주요 연구자들은 기하학자와 대수학자들이었으며, 20세기 대수기하학의 수많은 업적은 코호몰로지 이론 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이러한 코호몰로지 이론이 기하학과 대수학의 영역 너머에도 존재한다고 제안해왔다. 실제로 그의 연구는 조합론적 구조에 대한 일련의 논문을 통해 성공적으로 발표되었으며,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추측을 해결해왔다. 이러한 그의 방법론을 통해 수학자들은 대수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조합론적 대상을, 또 반대로 조합론적 방법을 사용하여 대수기하학적인 대상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개별적인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수학의 영역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이번 필즈상 수상 이전에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 굵직한 족적을 학계에 남기게 되었다.

 

 

허준이 교수는 조합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도록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2022 필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유튜브 캡처
허준이 교수는 조합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하고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장되도록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아 2022 필즈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유튜브 캡처

 

‘수포자’ 논란

이번 필즈상을 수상하며 더욱 화제가 된 그는 한때 ‘수포자’(수학 포기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달 7월 미디어오늘에서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허준이 교수의 수포자 논란은 ‘수상실적이 더 드라마틱하고 서사적으로 보이는 것을 노린 관행이 사실상 오보를 냈다’라는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말을 인용하며 사실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러하다. 올해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를 물어봐 얘기하던 중 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기 힘들어 부모님이 좌절했다고 답변을 했는데, 이를 인터뷰어가 ‘수포자’라고 기사를 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수포자가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드라마틱한 내용을 언론들은 퍼 나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허 교수는 수포자 출신의 수학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논란은 6개월간 지속됐고, 결국 7월 6일 진행된 다른 언론과의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수학 성적이 좋았을 때도 있고 좋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항상 중간 이상은 했기 때문에 수포자라고 말하기엔 좀 힘든 것 같고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땐 수학에 큰 흥미가 없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등학교부터는 수학을 굉장히 재밌어하기도 했고 열심히 해서 충분히 잘했기 때문에 수포자라 하기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허 교수가 직접 입장을 밝히며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미 수많은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통해 퍼진 ‘수포자 출신의 수학자’라는 오명은 그의 히스토리에 작은 오점을 남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신 사무처장은 “인물 보도의 경우 화제성을 높이기 위해 미담을 과장하거나 극적 요소를 추가하는 것쯤은 허용된다고 보는 언론계 관행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라고 꼬집으며 “뒤늦게 수학에 관심을 가진 사례를 다루려면 왜 일본인 스승과 미국 교육시스템에서 본인의 재능,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조명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허준이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이번 필즈상 수상 이전에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 굵직한 족적을 학계에 남겼다. ⓒ 호암재단 유튜브 캡처
허준이 교수는 그동안의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이번 필즈상 수상 이전에 사이먼스 연구자상, 삼성 호암상, 뉴호라이즌상, 블라바트닉 젊은과학자상 등 굵직한 족적을 학계에 남겼다. ⓒ 호암재단 유튜브 캡처

 

한국시스템 발판으로 성장

1983년생인 허준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아버지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와 석사 과정까지 한국에 머물렀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수학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수학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중간 이상의 성적을 유지했는데, 돌연 ‘시인’의 꿈을 품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느껴 시인의 꿈을 뒤로한 채 과학 기자라는 새로운 꿈을 품고 2001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하게 된다. 스스로가 목표한 바를 위해 학업에 매진했었기에 그의 실력은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결국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02학번으로 입학하게 된다.

 

입학 후 그는 수리과학부 복수전공을 선택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성적표에는 F가 가득했다고 한다. 졸업 때까지 순수수학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위상수학이라는 과목을 접하게 되며 순수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2009년 같은 학교 수리과학부 석사 학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2014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그의 처음 박사과정의 시작은 UIUC(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 샴페인) 수학과였다. 그곳에서 그는 엄청난 열의를 보이며 학업에 열중했고, 결국 박사과정 1학년 말에 리드 추측(Read's conjecture)을 증명했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이 푼 문제가 정작 유명한 난제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미국 수학계에는 ‘젊은 수학자가 리드 추측을 증명했다’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미시간 대학교 수학과로부터 오퍼를 받고 자리를 옮기게 됐다.

 

석사 과정 당시 허 교수의 지도 교수였던 김영훈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는 그에 대해 “석사 과정 때 해결한 문제에 썼던 도구를 발전시켜 로타 추측이라는 큰 문제까지 해결했다. 그 방법을 이용하면 조합론의 다른 문제도 풀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필즈상 수상자의 업적과 견주어 봐도 밀리지 않는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문제 푸는 집중력이 좋았고, 수학 실력 또한 여느 학생보다도 뛰어났다. 미시간대에서 박사를 마쳤으나 석사 학위 중 만나게 된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일본의 수학자)의 강의를 통해 본인의 연구주제를 설정했다. 서울대와 한국시스템을 발판으로 성장한 수학자”라고 덧붙였다.

 

 

2010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무려 11개의 수학적 난제를 증명하고 해결해온 허준이 교수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 두 분야 모두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유튜브 캡처
2010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무려 11개의 수학적 난제를 증명하고 해결해온 허준이 교수는 조합론과 대수기하학 두 분야 모두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 유튜브 캡처

 

어떻게 응용될까?

수학자로서 허준이 교수가 남긴 족적은 상당하다. 박사학위를 받고 3년 뒤인 2017년, Eric Katz, Karim Adiprasito와의 공동연구에서 로타 추측(Rota's conjecture)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가 Quanta Magazine에 실렸다. 이는 필즈상 수상이 가능할 정도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가 필즈상 수상자로 언급된 데에는 로타 추측 증명이라는 하나의 결과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그동안 그는 2010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무려 11개의 수학적 난제를 증명하고 해결해왔다. 무엇보다 그의 성과 이후로 많은 난제를 그가 증명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은 물론, 조합론을 포괄하는 대수기하학의 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대수기하학의 토대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조합론과 대수기하학 두 분야 모두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과연 허 교수가 이룬 업적과 증명하고 해결한 난제가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허 교수는 연결성과 독립성을 수학적으로 구조화한 ‘그래프(graph theorem)’와 ‘매트로이드(matroid)’의 성질에 관한 연구를 펼친다. 따로따로 떨어진 객체들의 연결을 구조화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하기에 다양한 기술에 응용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실제로 그가 연구하는 조합론의 대표적인 응용분야는 컴퓨터 연산, AI, 빅데이터 등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이다. 때문에 ‘연결’과 ‘구조’에 주목한 허준이 교수의 연구는 현대의 많은 기술이 통신과 네트워크, 복잡계 등과 연결되어 있기에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 광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의 정보통신뿐 아니라,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통계물리 등 여러 분야에 밀접한 관련이 있어 기대할 수 있는 파급효과가 매우 높고, 특히 AI(인공지능) 분야에서 크게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리드 추측 해결 등의 성과를 활용함으로써 AI 학습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훈 교수는 “허 교수의 업적은 앞으로 100년간 IT와 AI 분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19세기 나온 리만기하학이 50년 뒤 상대성이론으로 이어졌고, 100년 뒤 GPS(위성항법장치)의 등장으로 이어졌듯, 허 교수의 업적도 미래의 삶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지난달 20일 방영된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다룬 ‘누리호’ 사령탑 고정환 본부장 편에서 진행자 유재석은 누리호 발사를 지켜본 ‘누리호 키즈’가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한 과학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했고, 실제로 ‘나로호 키즈’로 불리는 오영재 연구원이 출연해 실제로 나로호 발사를 보고 꿈을 키워 성장해 지금은 누리호 발사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허 교수의 이번 필즈상 수상도 미래의 과학 꿈나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제2의, 제3의 허준이 키즈가 등장해 지금보다, 가까운 미래보다 더욱 진보한 연구 결과와 기술로 인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허 교수의 업적은 ‘한국계 최초’, ‘수학계 노벨상’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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