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반도체 명가 재건 나선 구원투수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반도체 명가 재건 나선 구원투수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07.1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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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시기 이끌어갈 ‘30년 인텔맨’
미국 및 유럽에 공장 건설 대규모 투자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반도체 명가 재건 나선 구원투수
 
미국의 종합 반도체기업(IDM) 인텔이 반도체 제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팻 겔싱어 CEO 취임 이후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재진출과 함께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세계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전방위 공세를 통해 아성을 되찾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Intel Corporation
ⓒIntel Corporation

 

“2025년까지 업계 선두자리 되찾겠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 판매를 아우르는 인텔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다. 한때 대부분 PC에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담겼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홍보 문구는 회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매출 기준으로 여전히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지만 최근 위상은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경쟁사인 AMD와 엔비디아가 인텔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대형 고객사가 잇따라 ‘탈(脫) 인텔’을 선언하면서다. 클라우드 서비스 최강자인 아마존은 자체 CPU를 개발해 쓰고 있고, 애플은 자체 개발 칩을 자사 제품에 탑재하기로 하면서 결별 선언을 했다. 이와 함께 40여 년간 ‘윈텔(윈도우+인텔) 동맹’의 동반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까지 자체 칩 생산에 나서며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의 왕좌가 흔들린 것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전 CEO가 과거 부하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이 밝혀져 2018년 7월 사임하는 내홍도 벌어졌다. 뒤를 이은 로버트 스완 CEO 역시 계속되는 인텔의 부진에 문책성 경질을 당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2월 구원투수로 등장한 이가 팻 겔싱어 CEO다. 1962년생인 겔싱어는 펜실베이니아주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농장에서 보냈다. 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돼지와 소를 돌보기 위해 동트기 전에 일어났다”며 “동물들에게 발길질을 당하지 않는 게 아침의 주요 임무였다”고 회상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창 시절 수학과 과학 성적이 뛰어났던 겔싱어는 인텔 채용 담당자의 눈에 띄어 1979년 인텔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그는 인텔의 장학 프로그램과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1983년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겔싱어는 인텔 코어와 제온 프로세서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인텔의 486 프로세서 개발에 참여한 뒤 2001년 39세의 나이에 인텔의 CTO가 됐다. 이어 수석부사장 겸 디지털엔터프라이즈그룹 총괄 자리에까지 오르며 차기 CEO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회사를 떠나 클라우드컴퓨팅 기업 EMC와 VM웨어 등에 몸담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의 왕좌가 흔들리던 상황에서 팻 겔싱어 CEO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Intel Corporation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의 왕좌가 흔들리던 상황에서 팻 겔싱어 CEO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Intel Corporation

 

파운드리 재진출과 생산 거점 마련에 주력
겔싱어는 “디지털화가 빨라지는 중대한 시기에 CEO로 집에 돌아온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고 ‘친정’ 복귀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인텔에서 근무한 경력만 30여 년에 달하는 그가 인 인텔을 어디로 끌고 갈지 글로벌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일각에서는 그가 취임한 이후 인텔이 경영 전략을 대폭 수정할 것으로 점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은 적중했다. 겔싱어는 2018년 사업을 철수했던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미 도래한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5세대(5G) 이동통신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려는 의도였다. 올해 2월에는 차량용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지난해 제시한 ‘파운드리 재진출’ 구상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인텔은 향후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개방형 중앙컴퓨팅 기술을 도입하고,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는 자회사 모빌아이와도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인텔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10년 후 현재의 두 배인 1,1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는 만큼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내연기관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차랑 한 대에 200~300개 수준이지만 전기차는 500개, 자율주행차엔 2,000개가 넘는다.
 
 
‘인텔 12세대 코어’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대폭적인 성능 향상을 보이며 사용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Walden Kirsch/Intel Corporation
팻 겔싱어 CEO는 취임 이후 반도체 생산을 위한 거점 마련을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다. ⓒWalden Kirsch/Intel Corporation

 

또한 반도체 생산을 위한 거점 마련에도 돌입했다. 인텔은 지난해 3월 20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이 발표 후 6개월 만에 인텔은 해당 지역의 파운드리 공장 2곳의 착공을 완료하며 2024년 반도체 양산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섰다. 아울러 유럽 진출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겔싱어는 지난해 9월 유럽에 최대 95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시설 2곳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1월에도 미국 오하이오주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공격적인 투자는 겔싱어가 인텔을 다시 반도체 왕국으로 재건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겔싱어는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위한 로드맵을 공개하며 “2025년까지 업계 선두자리를 되찾겠다”고 의지를 나타냈다. 또 그는 “2022년 7나노미터(㎚) 반도체를 선보인 뒤 2025년에는 1.8㎚ 반도체를 생산한다”고 밝혀 파운드리 업계 1·2위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를 뛰어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인텔 반도체 부활의 또 다른 날개인 패키징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인텔은 지난해 5월 미국 뉴멕시코주에 반도체 후공정 설비에 구축을 위해 35억 달러 투자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신규 투자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접근 중이다. 겔싱어가 직접 해외 순방에 나서 각국 리더들과 반도체 제조 거점 논의와 투자 지원을 이끌고 있다.
 
 
‘인텔 12세대 코어’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대폭적인 성능 향상을 보이며 사용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Walden Kirsch/Intel Corporation
‘인텔 12세대 코어’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대폭적인 성능 향상을 보이며 사용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Walden Kirsch/Intel Corporation

 

IDM 2.0, 인텔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까?
인텔의 1분기 매출액은 184억 달러, 순이익은 81억 달러를 기록했다. 부문별로 PC용 반도체 부문 매출액이 93억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13% 감소했고, 데이터 센터·인공지능(AI)용 반도체 부문은 60억 달러로 22% 증가했다. 반도체 난 속에서도 선방한 셈이다.
 
하지만 반도체 부족 사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겔싱어 CEO 역시 현재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져 2024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2023년에는 끝날 것으로 내다본 기존 예상보다 1년 더 늦춘 것이다. 겔싱어는 “생산장비 부족으로 업계가 전반적으로 우리가 이전에 생각했던 속도만큼 공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주가는 주춤하는 상황이다. 인텔은 2분기 실적 전망치로 매출액 180억 달러, 주당순이익 70센트를 제시했다. 이는 시장의 예상치인 매출액 185억 달러, 주당순이익 82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 인텔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3.91% 하락했다.
 
이로 인해 겔싱어 CEO는 반도체 제조와 공급망 중요성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는 “수만 달러 새 차가 2달러짜리 칩이 없어서 완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반도체는 현재 자동차 부품의 4~5%를 차지하지만 2030년에는 전기차 부품 2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인텔에게는 기회라는 의미이다. 겔싱어가 반도체 아키텍처와 공정, 제조 로드맵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도체 제국으로서 왕좌를 되찾으려는 인텔의 행보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Intel Corporation
반도체 제국으로서 왕좌를 되찾으려는 인텔의 행보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Intel Corporation

 

이러한 가운데 인텔은 지난해 10월 ‘인텔 이노베이션’ 행사를 열었다. 개발자 중심 혁신 모델 발굴과 커뮤니티 지원을 논의하는 자리로 인텔이 개발자 포럼을 연 건 10년 만이다. 겔싱어 본인이 초기 인텔 개발자 포럼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이어서 개발자 중심주의가 부활한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개발자는 인텔 기술 혁신의 주역이다. 겔싱어는 개발자 지원을 통해 인텔 기술력을 한층 도약시킬 방침이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지난해 9월 인텔은 저전력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운용할 ‘에피션트’ 코어와 고성능 두뇌 역할을 맡은 ‘퍼포먼스’ 코어를 탑재한 첫 하이브리드 아키텍처 인텔 ‘앨더 레이크’를 공개했다. 에피션트와 퍼포먼스 코어가 원활하게 연동하기 위한 인텔 독자 기술인 스레드 디렉트도 처음 선보였다. 해당 기술은 같은 해 11월 출시된 ‘인텔 12세대 코어’의 호평으로 이어지며 강자의 귀환을 알렸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대폭적인 성능 향상을 보이며 사용자로부터 ‘인텔이 돌아왔다(Intel is Back)’라는 평가를 받았다.
 
걱정과 기대 속에 취임해 숨 가쁜 1년을 보낸 겔싱어의 성적표는 반도체 시장 특성상 2~3년 뒤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IDM 2.0’을 천명한 인텔의 행보가 결실로 이어지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파격적인 행보에 시장 파급력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제국으로서 왕좌를 되찾으려는 인텔의 행보가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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