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등장한 금서, 일주일 만에 품절되다
70년 만에 등장한 금서, 일주일 만에 품절되다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6.03.0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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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70년 만에 등장한 금서, 일주일 만에 품절되다


‘독재자에 대한 동경’과 ‘과거를 통해 배우는 교훈’ 사이에 선 책



희대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저작 ‘나의 투쟁(Mein Kampf)’이 70년 만에 모습을 보였다. 이 책은 히틀러의 자서전으로 논란이 많았지만, 독일 서점가에선 초판 4,000권이 완판 됐으며 선주문이 1만 5,000부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사고 있다. 책을 발행해도 되는지에 대한 여부를 따지던 지식인들은 왜 현 사회에서 대중이 이 책에 열광하는지를 분석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발행된 금서

70년 만에 풀린 금서(禁書)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초판은 발행되자마자 완판 됐고, 독일에선 비문학 분야 20위에 오르기도 했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독일 사이트에서는 권당 59유로(약 7만 8200원)짜리 ‘나의 투쟁’의 재판매 가격이 무려 9999.99유로(약 1320만원)로 치솟기까지 했다. 국내에서도 2014년 발간돼 월 평균 500권 가량 팔리던 ‘나의 투쟁’은 주문이 쇄도하면서 지난 11월 초 1만 부를 찍었고, 올 1월 1만 부를 추가로 인쇄했다. 이는 두 달 사이에 2만 부를 기록한 결과로써, 출판 1년이 넘은 책의 판매가 20배 가까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례적인 사례다. 책의 출판을 맡은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대표는 “기업에서 300~500권씩 사겠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독서동호회에서도 100~200권씩 구매하고 있다”며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 1만 부를 더 찍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뮌헨 반란’으로 투옥됐을 때 저술해 1925년 출간한 책으로, 나치 패망 후 지난해까지 바이에른 주정부가 판권을 보유해왔다. 히틀러가 2권에 걸쳐 쓴 이 책은 당시 ‘새 시대의 복음(파울 요제프 괴벨스)’이라고 선전됐다. ‘나의 투쟁’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약 1,245만부가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악마의 책’ ‘독극물 같은 책’이 됐다. 저자인 히틀러가 사망한지 지난해로 70년이 되면서 이 책의 저작권은 소멸됐다. 따라서 2016년 1월 1일부터는 누구나 재출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 재출간본은 뮌헨현대사 연구소가 펴낸 것으로, 상세한 주석을 첨부한 약 2,000쪽의 방대한 규모이다. 상하권으로 출간된 이 책을 펴내기 위해 연구소 측은 문장 하나하나를 모두 해체하고 해석하는데 무려 3년간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엄밀히 이 책은 독일에서 금서가 아니었다. 히틀러 사후 저작권이 바이에른주(州)에 귀속됐고, 바이에른주 정부가 독일 내 어떤 출판사에도 출판을 허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나치의 잔재를 씻어내고 통일된 나라를 정비하는데 집중했던 독일에서 전범(戰犯) 히틀러의 책은 암묵적인 금서였다. 학계에선 이 책을 연구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지만,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반발 때문에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가 사후 70년이라는 저작권이 지난해 12월 31일로 종료되면서 히틀러 사상의 문제점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논증해야 오독(誤讀)을 막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책에 대한 무기한 출판금지조치를 내리면 자유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나 언론 자유와 국가 검열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테고 아니면 저작권이 풀린 틈을 타 신나치주의자들이 공짜로 책을 공급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연구소(IfZ)는 지난 2012년 바이에른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독일어판 재출간 작업을 시작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당연히 유대인 사회는 반발했다. 재출간됨으로써 히틀러의 책이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로널드 라우더 세계유대인회의(WJC) 회장은 “‘나의 투쟁’은 증오에 차 있고 인종차별적이며 반유대주의적인 책”이라며 “재출간 작업을 연구 활동으로 보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정치적인 압력도 가해졌다. 미 국무부의 더글러스 데이비드슨 홀로코스트 문제 특사, 댄 샤함 이스라엘 독일 주재 총영사, 독일의 진보정당인 녹색당 등이 집필 작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미래연구소를 방문했다. 결국 미래연구소와 공동 출간할 예정이던 바이에른주 정부는 손을 뗐고 미래연구소 단독으로 출간을 단행했다.

 

책 인기 비결은 독재자에 대한 동경일까?

우역곡절 끝에 재 발간된 ‘나의 투쟁’의 인기는 예상을 초월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히틀러에 대한 향수나 독재자에 대한 동경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된 유럽의 경제 위기에 반(反)이민 정서까지 불거지면서, 독일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국가 중 난민에 대한 가장 포용적인 독일에서도 반이민 관련 범죄가 급증할 정도로 반난민 정서가 퍼지면서 정치 우경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2015년 10월 25일, 폴란드 총선에선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법과정의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8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고 그에 앞서 스위스 총선에서도 중도우파 연정이 승리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나의 투쟁’ 책이 급속하게 판매되는 이유 역시 독재자에 대한 동경이라는 의견이 있다. 한국은 과거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독재정권이 뿌리내렸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1980년 7월 29일 국보위가 입안한 ‘불량배 소탕계획(삼청계획 5호)’에 의거해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강제로 삼청교육대에 입소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경제 침체기에 벗어나지 못하면서 경제 계급화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토막살인 사건부터 성폭행 등 잔인한 범죄가 증가하는 가운데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낮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대중이 과거 독재자의 정책에 대한 향수를 느끼며 ‘나의 투쟁’이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성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나의 투쟁’이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로 사회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며 “독재자에 대한 향수도 그 중 한 역할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히틀러는 전쟁과 학살이라는 대재앙을 초래했지만 강력한 독일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강했던 인물”이라며 “사회가 분열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등 답답한 현실에서 강력한 국가를 갈망하는 욕구가 표출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책에 대한 판단은 결국 독자의 몫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나의 투쟁’ 인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도 강하다. 이 책은 히틀러의 오기나 왜곡된 주장, 사실과 다른 점을 하나하나 논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히틀러는 자신을 ‘당원이 6명뿐이던 나치당’을 최대 정당으로 키운 정치 전략가로 소개하지만, 그의 당원증 번호는 555번이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배상금 문제에 대해 독일의 어떤 정치인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서야 했다고 썼지만, 이 역시 거짓이라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책을 펼치면 한 면에는 원서 내용, 다른 한 면에는 연구진들의 주석이 실렸다. 각주만 3,500개에 육박한다. 기존 자료 외에도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펴낸 ‘나의 투쟁’ 38권을 비교 분석했다. 책 분량이 2,000쪽에 달하는 이유다. 독일 진보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미래연구소의 출판본에 대해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분명하게 설명해주려는 대담한 시도”라고 평했다.
 

한국어판 책에도 히틀러의 사상과 세계관을 비평적으로 연구한 글이 첫 머리에 실렸다. 독일 시사지 슈테른(Stern)의 정치 칼럼니스트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쓴 ‘히틀러 그는 누구인가’와 히틀러 연구의 권위자인 저널리스트 앙투안느 비트키느의 글 ‘나의 투쟁이란 무엇인가’다. 한국어판 ‘나의 투쟁’을 펴낸 동서문화사의 고정일 발행인은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이 지나치게 많은 배상금 때문에 분노에 차 있을 때 그 좌절감을 선동하고 이용한 인물”이라며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그의 사상을 비판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을 우려해, 히틀러의 책에는 정치와 역사 전문가의 평설을 함께 싣는다”고 말했다. 
 

교보문고가 ‘나의 투쟁’ 구매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이 80.6%로 압도적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 (27.5%)가 가장 많았고 30대(22.7%) 20대(22.1%) 50대(17.2%) 순이었다. 해외에서 화제가 되면서 공부하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고정일 발행인은 “방향은 잘못됐지만 히틀러가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게 한 능력이 탁월했던 만큼, 임직원이 일체감을 이뤄 성과를 내고 싶은 기업들이 연구 차원에서 읽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히틀러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독일 재출간을 두고 논란이 거세지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2015년 가을, 독일인 51%는 이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부 사서들도 대주잉 읽기에는 위험한 책이라는 평이 강했다. 유대인 커뮤니티 지도자들도 의견이 달랐다. 샬롯테 크노블로흐 전직 대통령이 AFP에 자신은 출간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 판도라의 상자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생각들을 퍼뜨리는 건 우익 군벌과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독일 내 유대인 중앙 위원회 요세프 슈스터 회장은 주석 달린 판본 출간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냈다. 또한, 그는 “역사 수업에서 히틀러의 책에서 일부를 인용해 가르치면 젊은이들이 극단주의에 대한 ‘면역’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희망했다. 과거 책 출판에 대해 반신반의 했던 의견과 달리 책은 출판되자마자 전 세계에서 무수히 팔리고 있다. 결국 책을 판단하는 역할은 독자의 몫이 됐다. 독재자의 책을 읽고 독재체계를 향수하거나 혹은 책과 함께 설명되어 있는 주석을 보고 비판하는 역할은 독자의 책임이다.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그림 솜씨만큼이나 글재주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자신의 감정을 글로 옮기며 당시 대중을 현혹하거나 이끌었던 것은 대단한 재능이다. 이러한 그의 재능이 현 사회에서 다시 펼쳐지게 됐다. 물론 역사의 평가와 연구소 측의 주석도 그 재능에 더해졌다. 앞으로 이 책에 담긴 히틀러의 글과 평가가 사회에 어떤 변화를 미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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