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가수 조장혁
[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가수 조장혁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2.03.3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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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손보승 기자]

최고의 전성기부터 처절한 슬럼프까지, ‘이것이 음악이다’
 
 
사진=손보승 기자헤어 메이크업 제공 '순수' 수경 원장
사진=손보승 기자헤어 메이크업 제공 '순수' 수경 원장

 

꾸밈없는 솔직한 음악으로 제2의 ‘중독된 사랑’을 꿈꾸다
중저음의 허스키한 음색 속에 가슴 시린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 노래해 온 감성 보컬 조장혁. 그의 대표곡인 '중독된 사랑', 'Love' 등은 발매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남성의 18번으로 각광받고 있는 명곡이다. 흔히 ‘노래 좀 부른다’라고 우쭐대는 남성 중 그의 노래를 안 불러본 사람도 찾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대중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가수 조장혁과 그의 명곡. 가요계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조장혁을 2022년 4월 이슈메이커가 함께한 이유이기도 하다. 데뷔 당시의 비화부터 처절했던 슬럼프 당시 생계를 위해 굴비사업을 해야 했던 이야기, '나는 가수다 2'로 재기에 성공한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음악 이야기를 함께 하고자 한다.
 
최근 탄타라 프로젝트의 활동이 화제다
“코로나 이슈 등으로 예전보다 가수들이 설 자라기 많지 않다. 저 역시도 최근까지 경연프로그램에서 남의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고 심지어 이러한 방송 활동도 뜸해진 상황에서 올해는 조금 더 음악적 활동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이 ‘탄타라 프로젝트’이다. 플라워의 고유진, 몽니의 김신의와 김용진, 오아랜 등 지금껏 방송과 음악활동뿐 아니라 사적 모임 등으로 친해진 동료 가수들과 함께하는 음악 활동이다. 더욱이 다들 노래는 기본이며 악기 연주가 가능하기에 재미 삼아 시작한 프로젝트임에도 공연 섭외까지 받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새로운 음악 활동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데뷔곡 ‘체인지’는 원래 본인의 노래가 아니었다던데
“사실이다. (웃음) 저는 작곡만 했고 노래를 부를 가수는 따로 있었다. 동명의 영화 OST로 삽입될 노래였기에 영화 제작자들도 모두 OK를 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기 싫다고 했다. 작곡가로서 CHANGE를 만들며 직접 가이드 작업도 했었기에 작사가 선배와 영화감독이 이 노래를 제가 부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당시 제 나이가 29살이었고 물론 어려서는 연예인의 환상이 있었지만 그 고충을 알기에 꿈을 접었던 상황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가수가 되고자 노력했을 때는 기회가 오지 않더니 다 포기하고 작곡가 혹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만 하고자 다짐했는데 결국 우연한 기회로 가수 데뷔를 이뤘고 이른바 대박이 났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가수 조장혁의 충격적 데뷔 무대를 아직도 많은 팬이 기억한다
“저도 여전히 유튜브 등에서 데뷔 무대가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뷔곡 체인지가 영화의 히트와 함께 큰 사랑을 받았고 당시 영화 체인지의 주인공인 배우 김소연 씨와 첫 무대를 함께했다. 그러나 해당무대가 있기 얼마 전 김소연 씨가 당시 어떤 아이돌 그룹 멤버와 연인 관계 설정의 예능 영상을 촬영한 적이 있다. 팬들은 둘 사이를 오해했고 김소연 씨가 무대에 오르자 거침없는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고 이는 실제 방송에서 들릴 정도로 컸다. 사실 전 무대에서는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김소연 씨가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펑펑 울며 저에게 미안함을 표현했다. 당시 김소연 씨 나이가 18살이었기에 본인도 이러한 상황이 충격이었을 텐데 저에게 미안한 감정을 먼저 표현해주어 고맙고 그런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도 당시에는 첫 무대를 망쳤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있었으나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이 됐다.”
 
지금도 배우 김소연 씨와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
“본인에게도 당시 무대가 악몽이었을 텐데 아직도 들리는 바에 의하면 사석에서 체인지를 열심히 부른다고 한다. (웃음) 김소연 씨와 연락이 끊어진 지 꽤 오래됐는데 제가 복면가왕 패널로 활동할 당시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영락없는 김소연 씨였다. 탑 여배우가 복면가왕에 출연할 리가 없었고 제작진도 히든카드로 준비한 출연진이었다. 그러나 영화 촬영 당시 제가 직접 보컬 트레이닝도 해줬기에 누구보다 김소연 씨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고 첫 소절을 듣자마자 김소연 씨인 것을 맞춰 흥미가 반감된 적이 있다. 아마도 소연 씨도 기대가 컸던 출연이었을 텐데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저에게 원망을 했을 것 같다. (웃음) 어쩌면 서로의 무대를 한 번씩 망쳤다는 점에서 무승부라고 할 수 있고 큰 친분이 있진 않지만 좋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동료다.”
 
최고의 전성기 당시 갑작스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는가
“가장 큰 이유는 함께 일하던 매니저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제가 했던 계약들이 큰 문제가 됐다. 체인지의 대박으로 이른바 스타가 됐고 이후 발표하는 노래들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음악을 CD가 아닌 음원으로 듣는 시대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발표한 음반들이 문제였다. 당시 뮤직비디오 등의 음반 제작 활동에 무수히 많은 비용이 소요됐고 저 역시도 아무 생각 없이 제작사와 연대보증을 섰다. 매니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시 앨범이 발표되면 1~2시간 만에 불법 음원이 깔리는 현실에서 앨범 판매는 당연히 저조한 결과를 맞이했다. 당시 매니저는 문제가 생기자 자취를 감추고 상황은 더 악화되어 집까지 압류당하게 됐다. 당연히 예전처럼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돌아보니 저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매일같이 오가던 여의도에서 목동 SBS를 가는 길도 모를 정도로 모든 것을 매니저에 맡겼고 꿈에서 깨어나니 남는 것은 빚뿐이었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굴비 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나
“사실 굴비 사업뿐 아니고 무수히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모 방송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굴비 판매라는 단어가 재미있었는데 이 부분이 이슈가 됐다. 당시 막대한 빚을 떠안았으나 음악 활동은 포기했었기에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가족을 책임질 가장으로서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연예계 동료들은 굴비 사업이 부끄럽지 않았냐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직접 굴비를 들고 다니며 판 것도 아니고 (웃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행복한 순간이었고 아들과 아내에게도 떳떳하고 자랑스러웠다.”
 
다시 돌아온 무대는 어땠을까
“불후의 명곡에서 당시 잘 나가던 신인 가수와 레전드 가수와 함께하는 무대를 기획한다며 섭외 요청이 왔다. 마침 다시 무대로 돌아갈 수 있겠냐는 두려움과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공존할 때였다. 신용재 씨와 함께 중독된 사랑을 한 무대에서 불렀고 대중도 오랜만에 제 노래를 들으며 ‘이런 가수가 있었지’라며 다시금 저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가수다에서도 출연 요청이 있었는데 정식 멤버는 아니고 소위 말하는 오디션 형태의 무대였다.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는데 예전에 저를 도와줬던 후배 매니저가 아들과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출연하라며 추천했다. 결국은 옳은 결정이었다. 오디션 무대에 서며 눈물이 날 정도의 감격이 복받쳤다. 무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원했음을 느꼈다. 조명이 켜지고 객석의 관객이 보이며 이들이 환호하는 순간 ‘내가 가수였구나, 가수가 되길 참 잘했다’라는 생각에 감동이 몰려왔다.”
 
가수 조장혁에게 좋은 노래란
“우리는 저마다 가면을 쓰고 있다. 물론 이 가면이 모두 거짓이고 나쁜 가면이라는 것은 아니며 이성적 가면도 존재한다. 인간은 사회화된 동물로 배우고 학습하며 때론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타인과 공존하기 때문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노래에도 가면의 존재한다. 쉽게 말하면 조금 더 멋있어 보이려고 예뻐 보이려고 인위적으로 꾸미는 노래가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노래보다 내가 가진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솔직함이 좋은 노래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는 기교도 중요하지 않다. 전인권 선배님의 무대만 봐도 어떨 땐 흔히 말하는 삑사리가 날 정도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와 노래에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사진=손보승 기자
사진=손보승 기자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본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쉐프가 되지 않았을까? (웃음) 평상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만든 요리를 누가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더라. 노래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 못지않은 감동이었고 요리하는 동안 스스로도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자주 받았기에 요리를 하는 것은 항상 즐겁다.”
 
조장혁이 꼽는 본인의 명곡 BEST 3는
“우선 첫 번째는 누가 뭐래 해도 ‘중독된 사랑’이다. 이 노래가 없었으면 가수 조장혁도 더 빨리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내가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나 아찔하기도 하다. (웃음) 그다음 역시 대중의 선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노래가 있긴 하나 그래도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가수 조장혁의 노래는 ‘러브’, ‘그대 떠나가도’ 등을 꼽을 수 있다.”
 
여전히 힘든 코로나 팬데믹 속 팬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그게 희망이 될까? 너나 할 것 없이 너무도 힘든 지난 2년이었다. 함께하는 동료 연예인들도 그렇고 공연계도 그렇고 자영업자도 그렇고 다들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내고 있다. 이제 조금씩 끝이 보이는 것 같으니 조금씩 힘을 냈으면 한다.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반드시 보상은 찾아오리라 믿는다. 저 역시도 음악을 포기할 정도로 힘든 시간이 있었으나 이를 이겨내니 더욱 음악을 사랑하고 팬들에게 감사하게 됐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말고 모두가 희망을 품자는 말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인터뷰를 마치며 가수 조장혁은 대중에게 어떤 가수로 기억되고 싶을지 궁금해졌다. 그는 “어디 가나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특별한 가수, 대단한 가수보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옆집 형, 옆집 오빠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요. 물론 저도 대중의 사랑은 한 몸에 받는 스타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러한 존재로 기억되기보다 좋은 노래를 불렀던 좋은 가수 친근한 가수로 기억되었으면 성공한 가수이지 않을까요?”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며 희로애락 가득했던 진솔한 음악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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