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의 주인공, 최전방 전선에서 마이크 쥔 사나이
총성 없는 전쟁의 주인공, 최전방 전선에서 마이크 쥔 사나이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6.03.0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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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최전방 전선에서 마이크 쥔 사나이

 

 심리전으로 북한 쥐락펴락하는 용사, 대면병

 

 

1950년 6·25전쟁 발발 후 3년이 지난 1953년, 미국과 북한은 남한의 의견은 무시한 채 휴전협정을 맺었다. 이후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포격도발 등 종종 전쟁 위기는 있었지만 남과 북은 휴전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총과 칼이 아니더라도 남과 북은 전방에서 심리전으로 잦은 충돌을 보이고 있다. 북한 초소와 1Km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는 이들을 군에서는 대면병(對面兵)이라 부른다.


 

소리 없는 전쟁, 심리전

지난 1월 6일, 새해가 밝자마자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로써 남북 병사들이 대치하는 휴전선에는 다시 한 번 긴장이 감돌았다. 국군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대응책으로 최전선 11곳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방송을 1월 8일 정오부터 일제히 재개했다. 북한 역시 대남 전단지(삐라)를 뿌리고 무인기를 띄우면서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휴전선 경계에서 근무하는 GOP병사들과 DMZ내에서 근무하는 GP병사들은 북한 초소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기 위해 관측 장비를 총동원 시키며 경계태세에 만전을 기했다.
 

심리전의 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군의 1차 대응 수단이다. 무력은 수반되지 않지만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우상화에 세뇌돼있는 북한군과 주민의 심리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북한에서 가장 경계하는 전술 중 하나다. 이에 북한에서는 지난해 남측 확성기에 총격 도발을 가하고, 확성기를 박살내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담당하는 병사는 군에서는 ‘방송병’이라 부른다. 방송병은 DMZ 철책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를 통해 정부가 FM라디오로 송출하는 ‘자유의 소리(VOF : Voice of Freedom)'방송을 내보내는 역할을 맡는다. 방송에는 주로 뉴스프로그램과 더불어 빅뱅의 ’뱅뱅뱅‘, 아이유의 ’마음‘ 등 음악이 내보내진다. 이러한 방송병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철책에서 육성을 통해 대북 심리전을 펼치는 병사가 있다. 북한 최전방 초소와 쌍방향 대화를 유도해 긴장감을 완화하며 남한의 실생활을 알리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하는 대면병이다. 대면병은 방송병과 달리 고지대에 설치돼있는 고가초소에서 근무한다. 방송이 잘 전파되기 위해 대면병은 북한 초소와는 불과 1Km내외에 있는 GP 및 GOP에서 임무를 시행한다. 날씨가 좋으면 북한 초소 병사의 움직임까지 육안으로 관찰되는 가까운 거리다. 대면병이 시행하는 방송은 보통 10km까지 전달되지만 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 멀리 있는 북측 마을에도 전파되기도 한다.
 

대면병은 북한 병사들과 직접 소통을 하는 임무를 하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경계대상 1호다. 벙커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임무를 수행하는 방송병과 달리 대면병은 북한병에게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서 근무한다. 대면병은 특히 군복을 입지 않고 화려한 색깔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근무해 북한군의 눈에 띈다. 때문에 방송을 하기 전 북한병사 총에 겨누어 지는 것은 기본이다. 이에 첫 임무를 하는 대면병은 지레 겁을 먹기 십상이다. 하지만 1년 이상 근무한 대면병에게 북한병사의 대응은 익숙한 일이다.

 

북한군 앞에 선 대면병의 임무

군에서 대면병을 선발할 때 기준은 특별히 없다. 임무의 특성상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병사 중에 차출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DMZ내에 위치한 GP나 철책에 위치한 GOP에서 근무해야 하기 때문에 엄격한 신원조회는 이뤄진다. GP관측장교로 근무한 필자와 함께 군복무를 한 대면병 출신 박 예비역 병장은 “4주차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심리전단 소속 간부가 면접을 통해 훈련병을 선발한다”며 “대면병은 자대에 배치된 후 2주간 별도의 교육을 받는다”고 말했다. 박 예비역 병장의 말에 의하면 대면병은 2주간의 교육 과정에서 대북 심리전의 중요성부터 글쓰기, 대응 논리 개발 법, 북한의 언어와 욕 등을 배운다. 대면병으로 근무하면 모든 방송원고는 자신이 직접 쓰는 것이 원칙이다.
 

GP에는 보통 GP장과 관측장교 두 명의 장교와 부GP장, 분대장 두 명의 부사관이 근무한다. 또한, 수색중대 병사들과 GP에 파견 온 관측병, TOD병, 의무병, 대면병 등이 경계를 선다. 이 때 대면병은 3인 1실의 별도의 숙소가 있다. 이 숙소에는 원고 작성에 필요한 다양한 책과 신문, TV가 위치해 있다. 대면병은 이 곳에서 방송원고를 작성한다. 원고 주제는 보통 신문과 TV를 참고한다. 남한의 소식을 북한초소 및 주민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시사에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면병은 일주일에 두세 번 지원되는 부식차량과 함께 들어오는 신문을 읽고 민주주의 체제의 우수성, 경제상황, 연예계소식, 국제관계 등의 내용을 원고로 작성해 방송을 한다.
 

대면병이 근무를 서는 초소는 평상시 병사 2~3명이 감시하는 고가초소다. 투명한 창문으로 북한군의 상황을 망원경 등 관측장비로 관찰하며 적 GP 및 북한 초소에 이상한 점이 발생했을 때 보고하는 최전방 초소다. 대면병은 임무 수행 시 망원경을 통해 북한 초소의 반응을 살피며 방송을 한다. 방송 일정은 하루에 세 차례로 나뉘어 있는데, 대북 확성기 방송과 겹치지 않는 시간대다. 국가안보나 민주주의 체제 등 민감한 주제는 대부분 아침에 방송된다. 이 때 원고는 국정원과 합동참모본부가 제공하는 심리전 자료를 기초로 작성한다. 돌발상황에 대비한 방송은 미리 녹음되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돌발 상황이란 귀순자 유도나 총격, 포격 도발 등이다. 대면병이 위치해있지 않은 GP에서는 돌발 상황 발생 시 보통 GP장이나 부GP장이 방송을 할 때가 많지만,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통은 대면병이 녹음한 자료를 사용한다. 

 

 

▲국군은 심리전의 한 수단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국방부

 

 

철책 앞에 두고 이어지는 신경전

남한 대면병이 방송을 진행하며 심리전을 펼치 때 북한은 보통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보통 남과 북은 각 도발에 대한 대응을 같은 방식으로 한다. 북한이 총격도발을 하면 남한 역시 총격으로 대응하고, 북한이 포격으로 도발하면 남측 역시 포격으로 대응하는 것이 남과 북의 대응 방식이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면 전쟁으로 확산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국군이 전투기를 사용하지 않고, 같은 포병으로 대응한 점도 같은 이치다. 심리전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보통 남측의 심리전을 무시하거나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전력난이 워낙 심해 대응방송을 하기 쉽지 않다는 게 북한전문가의 평이다. 한 북한 연구 학자는 “9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남한에 많은 방송을 했지만 전력 사정이 악화되면서 북한에서는 대응 방송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북한에서 확성기 방송이 어려워지면서 대남 전단지(삐라)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초소와 1Km도 떨어지지 않은 GP에서는 북한 병사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 망원경을 통해 보면 북한 병사의 표정까지 유추할 수 있을 정도다. 북한은 이 점을 이용해 남한에서 방송을 하면 손동작을 통해 글자를 만들어 응수하거나 욕을 한다. 때문에 대면병은 북한군의 손동작을 읽는 훈련도 받고 있다. GP에서 관측장교로 근무하고 전역한 류 예비역 중위는 “실제로 GP에서는 북한 병사와 소통하는 경우가 있다”며 “심각한 내용은 모두 상급부대에 보고되며, 보통은 평범한 내용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류 예비역 중위는 “보통 북한군이 대응할 때는 대면병이 방송을 한 이후가 많은데 이는 대면병이 북한군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방송해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의 말처럼 대면병은 방송을 할 때 친근감을 주고자 친구를 대하듯 반말을 사용한다. 또한, 한국을 지칭할 때는 ‘자유 대한’이라는 용어를 써 남한이 ‘자유’나라인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방송을 할 때는 북한 병사 및 주민이 이해하기 쉽도록 보통 북한 용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자유 대한에는 손 전화가 있는데 너희는 사용해봤니?’나 ‘오늘 메뉴는 불고기가 나왔는데 혹시 불고기 먹어봤니? 자유대한 불고기는 외국에서도 알아준다’와 같이 방송을 한다. 이에 북한에서도 같은 비슷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국경일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남과 북의 심리전은 더욱 뚜렷해진다. 북한은 김일성 부자의 생일, 인민군 · 노동당 창건일 등에 대남 확성기 출력을 높여 화려한 공연을 중계한다. 남한 역시 마찬가지로 각종 행사 때면 초소 공터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기도 한다. 대면병 초소에는 가끔 여군이 출현하기도 한다. 여 부사관이 방송을 하면 대부분의 경우 북한군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남한 초소를 기웃거리거나 망원경으로 남측 초소를 관찰하는 등 풍경이 나타난다는 게 GP에서 근무한 류 예비역 중위의 설명이다. 
 

보통 최전방 군인을 떠올리면, 총을 쥐고 북한을 바라보며 경계를 서는 병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전쟁방법이 다양해졌듯 복무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청춘을 바치며 국가를 지키는 군인들. 그 중에서도 하루하루 북한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매일같이 고민하는 대면병. 이들의 노력이 있기에 오늘도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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