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경쟁 대신 고소·고발 이어져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치열했던 양강 레이스, 최후의 순간까지 예측불허
20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대선은 ‘역대급’ 혼전이었다. 주요 후보들의 도덕성 논란 속 ‘비호감 경쟁’으로 불렸고 유권자들은 그 속에서 향후 5년을 이끌어갈 대한민국의 리더를 선택해야 했다. 치열했던 이번 대선 경쟁을 결산했다.
약한 정치 기반 속 여론조사 결과 들쑥날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초반부터 종반까지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접전 양상을 이어갔다. 두 사람 모두 여의도 출신이 아니라는 공통점은 신선한 점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검증 과정에서의 미숙함은 줄곧 지적을 받았다. 당내 정치 기반이 약해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도 들쑥날쑥했다.
두 후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해 여름 이후다. 윤 후보가 7월 말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대선 참여 의지를 밝힌 시점이자 이 후보는 이미 당내 경선에서 승기를 굳히고 있던 때다. 오랜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지지층을 다지고 있던 이 후보는 가을까지만 해도 윤 후보를 앞섰다. 하지만 11월 들어 국민의힘 경선 컨벤션 효과와 대장동 특혜 의혹이 조명을 받으며 지지율이 역전됐다. 11월 18일부터 3차례 실시한 조사에서 윤 후보는 각각 41.7%, 42%, 38.4%의 지지율 기록해 32.4%, 31%, 37.4%를 얻은 이 후보를 앞섰다.
그러다 12월 윤 후보의 배우자 리스크와 이준석 대표와의 갈등설이 불거지며 이 후보는 재역전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의 식견 부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2월 첫 번째 주 갤럽 조사에서 윤 후보는 36.4%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이 후보(36.3%)와 초접전 양상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다음 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36%를 기록하며 35%를 얻은 윤 후보를 앞섰다.
이에 윤 후보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한 후 실무형 선대위를 꾸리는 등 당 분란 상황 수습에 나섰고 지지율 반등에 성공했다. 여기에 2월 들어 이 후보자 배우자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 불거지며 지지세는 윤 후보로 향했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2월 첫 갤럽 조사에서 35% 동률을 기록했지만 이후 이어진 5차례 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이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월 15~17일 여론조사에서는 윤 후보가 41%를 기록, 34%를 얻은 이 후보를 앞지른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실제 결과는 윤 후보 48.6%, 이 후보 47.8%로 역대 최소 표 차로 마무리되었다.
끝없는 ‘네거티브’ 공방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로 시작해서 ‘네거티브’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정 운영의 비전이나 정책 경쟁 대신 상대 후보의 약점을 파고들어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해가려는 모습이 지속해서 나타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고소·고발, 여야 후보가 모두 수사 대상이 된 초유의 선거가 펼쳐지며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마저 붙었다. 서로에 대한 원색적 비난과 아니면 말고 식 폭로가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충돌이 빈번했다.
양당은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때부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고발사주 의혹을 둘러싸고 이미 한차례 난타전을 벌였다. 특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대선 기간을 관통한 핵심 소재였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0월 두 차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이 민간 개발로 밀어붙이려던 것을 공공개발로 돌려 성남시가 5,500여억 원을 환수한 것’이라고 말하며 정면 돌파에 나섰고, 민주당도 곽상도 의원 등 이른바 ‘50억원 클럽’의 면면이 국민의힘과 연결고리가 분명한 인사들이라는 역공을 펼쳤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이재명 게이트’로 명명하고, 이를 대선후보 TV 토론회와 전국 유세장에서 수시로 꺼내 들며 집요하게 이 후보를 공격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9월 떠오른 고발사주 의혹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여권 주요 인물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했다는 언론 보도로부터 비롯됐다. 이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김웅 의원 국회 사무실 압수수색에 맞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육탄전을 벌이는 등 공수처와 야당의 대립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여야는 선거운동이 끝나는 순간까지 서로를 향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선거 직전 ‘뉴스타파’의 보도로 등장한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 녹취록’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대장동 의혹의 초점을 윤 후보에게 돌리는 데 집중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투자금은 부산저축은행에서 대출이 1000억 이상 발생하면서 시작된 것인데, 김씨가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 브로커 조우형씨를 박영수 전 특검에게 소개했고, 조씨는 박 전 특검을 통해 당시 주임검사이던 윤 후보로부터 수사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주장이 담긴 녹취록이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후보가 여전히 ‘대장동의 몸통’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윤 후보의 ‘부동시 병역기피 의혹’을 놓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로 윤 후보의 ‘고무줄 시력’이 확인됐다며 허위 부동시 진단을 통한 병역 면탈을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시력 검사만으로 부동시를 판정하지 않는다며 “저급한 정치 공세”라고 맞섰다.
반전 거듭하며 성사된 막판 단일화
대선 6일을 앞두고 전격 성사된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쉽사리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양쪽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감정싸움을 벌이며 사실상 파국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으나, 두 사람은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공유하며 감정의 앙금을 쓸어버리고 손을 잡았다.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힘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세론을 형성했을 때만 해도 단일화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새해 들어 윤 후보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윤 후보에게서 이탈한 지지층이 안 후보를 ‘정권교체 대안’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윤 후보가 선거조직을 정비하고 다시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안 후보의 상승세도 이내 꺾였다. 이재명과 윤석열 양강 구도가 굳어지자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보수 후보의 승리 요구가 거세졌다.
이런 상황에서 안 후보는 2월 13일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단일화에 줄곧 부정적이던 안 후보의 입장이 변화하자 국민의힘 쪽에서는 “완주하기 위해 먼저 선수 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단일화 협상은 진전되지 못했고 1주일 뒤인 20일 안 대표는 “단일화를 제안한 뒤로 윤 후보로부터 어떠한 응답도 받지 못했다”며 결렬을 선언했다. 후보 간 ‘톱다운’ 방식의 담판을 요구했던 윤 후보와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생각 차이가 컸다.
투표용지 인쇄 전날이던 2월 27일 윤 후보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추가 협상 과정을 공개하며 “오늘 아침 9시 단일화 결렬 최종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물밑 협상 내용까지 세세하게 공개하며 안 후보의 공격해 단일화 논의는 완전한 파국에 이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서로 얼굴을 붉힌 상황이 공개되자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큰 상승효과가 없을 거라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이 후보는 ‘통합정부’를 약속하며 안 후보에게 구애했다. 최소한 안 후보가 윤 후보와 연합하지 못하도록 묶어두려는 전략이었다. 이와 함께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와의 단일화도 이뤄냈다.
극적인 반전은 마지막 TV 토론 이후 이뤄졌다. 4자 구도로 진행된 토론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새벽에 만났고, 안 후보가 사퇴하고 윤 후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사전투표 하루 전이었다. 완주를 여러 차례 공언했던 안 후보의 결정에 국민의당 지지자들의 항의도 빗발쳤지만, 그는 “정권교체가 안 되는 상황만은 막아야 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결과적으로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하며 안철수 대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