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전방위 압박에 한숨짓는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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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2.03.04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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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리스크 속 반기업 규제에 우려

노동이사제 도입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전방위 압박에 한숨짓는 재계

 

한국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3.9%로 지난 2017년(3.2%) 이후 4년 만에 3%대 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올해 경제성장률은 1년 만에 다시 2%대로 떨어진 2.9%로 전망했다. 여전한 코로나19 여파와 불투명한 국제정세, 장기간 누적된 경제 여건 부실화 등으로 인해 3% 수준의 성장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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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 해소 위한 규제개혁 요구하는 경영계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의 가장 큰 변수는 국제정세다. 올해는 첨단 정보기술 패권을 두고 경쟁해 온 ‘G2’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되어 우려가 큰 상태다. 이로 인해 경제계는 ‘리스크’ 해소를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기업들의 손발을 묶어놨던 낡은 규제부터 혁파해야 한다”며 “정부도 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과감하고 신속한 정책을 펼쳐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재계를 둘러싼 분위기는 이와는 상반된다. 반기업 규제와 각종 악재가 기업들을 옥죄고 있어서다. 특히 기업들이 입을 모아 반대했던 각종 규제성 정책들이 잇따라 추진되며 불만이 커지고 있다. 노동이사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제도 대부분이 경영권에 민감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기업 옥죄기’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에 우선 도입된다. 지난 1월 11일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노동자 대표를 공공기관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공공기관은 비상임이사에 노동자 대표의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노동자 중 3년 이상 재직한 1명에게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노동자 대표의 경우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동조합의 대표를 가리킨다. 임기는 2년이고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제도는 오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서는 이미 31개국 가운데 19개국이 도입한 보편적인 제도다. 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핀란드 등 유럽 주요국의 공공 및 민간기업에 광범위하게 안착했다. 하지만 재계는 이 같은 법안이 유럽과 환경이 다른 국내 현실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대립적·투쟁적 노사 관계가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거론되는 나라로 꼽히고 있는 만큼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의사결정 과정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효율성을 떨어뜨려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전문성 대신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노동이사가 결정되면 경영감시를 위한 전문적인 이사 역할보다는 노동자 이익 대변 쪽으로 편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학계 전문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노동이사제가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5%가 ‘노조 측으로 힘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57.0%가 ‘노동이사제가 우리나라 경제시스템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고, 61.5%는 ‘노동이사제가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준다’고 평가한 바 있다.

 

 

지난 1월 11일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노동자 대표를 공공기관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회
지난 1월 11일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노동자 대표를 공공기관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회

 

경영계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시행된 노동이사제가 법이 막상 시행되면 민간기업에까지 도입 압력이 번져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무엇보다 수차례에 걸쳐 재검토를 요청한 제도가 사회적 합의 없이 속전속결로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노동계는 제도 도입이 경영진의 독단을 막고 경영 투명성과 명확하고 합리적 근거에 의한 의사결정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그간 공공기관에서 문제가 된 낙하산 인사와 이들의 전횡,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업무 수행 방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산업재해 감소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서 발언권 및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안전 인력과 예산 확보 등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대표소송’ 관련 논란도 지속

지난 1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도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대표적인 규제법안으로 꼽힌다. 안전사고 발생 시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사업주에까지 과도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 자칫 경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노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 징역과 벌금을 동시에 부과할 수도 있다. 한편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형을 선고받은 지 5년 이내에 또다시 적발되면 형을 최대 50%까지 가중한다. 최고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사업주가 경각심과 책임 의식을 갖고 산업재해 예방에 노력을 갖추라는 취지다.

 

그러나 절실한 입법목적에도 불구하고 제정 과정부터 지금까지 많은 논란과 반발이 뒤따르는 이유는 법률 규정이 모호하다는 것 때문이다. 많은 기업가들은 ‘어떻게 법을 지켜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경영책임자’의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의 조직과 인력, 예산을 갖춰야 하는 지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다.

 

국민연금이 추진 중인 ‘주주대표소송’에 대한 우려도 계속되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고의나 과실로 비위행위를 저지르거나 손해를 입힌 이사(임원)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추궁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할 때 회사 대신 주주가 해당 이사에 소송 제기하도록 한 제도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안전사고 발생 시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사업주에까지 과도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 자칫 경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안전사고 발생 시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사업주에까지 과도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 자칫 경영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는 회사의 손해를 보전하고 경영진의 위법·부당행위를 감독해 경영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장치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업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임원에게 물을 수 있어 기업의 경영권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법안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재계는 정상적인 투자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손해에도 무분별하게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어 소송 남발로 인한 경영활동 저해가 우려된다고 전한다. 이에 경총을 비롯해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코스닥협회 등 7개 경제단체는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연금이 ‘기업 벌주기식’ 주주활동에 몰두하는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경영권을 지켜낼 변변한 방어 수단 하나 없는 상황에서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개정안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것은 실질적 경영 간섭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를 두고도 한국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반기업 정서’와 같은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ESG 경영 기조가 강화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중소기업 10곳 가운데 9곳이 ESG 준비가 덜 됐다고 말하는 등 빠른 제도 적용이 기업들의 경영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서다.

 

기업이 탄소중립에 기여해야 된다는 목소리와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ESG 경영은 세계적 흐름이 됐다. 세계 경제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2020년 9월 ESG 평가 지표가 담긴 보고서를 발행하는 등 기업의 ESG 달성 여부는 어느덧 중요 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들은 기업의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기후 관련 금융 위험에 관한 행정 명령’을 발표한 데 이어, 6월에는 기후 위험 공시법 등 11개 주제로 구성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및 투자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하원을 통과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난 2014년 비재무적보고지침(NFRD)을 제정해 유럽 내 근로자 수 500인 이상 대기업 등이 ‘환경’과 ‘사회·고용’, ‘인권’, ‘부패’ 등의 리스크 관리 방안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지난해 3월에는 유럽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ESG 공시를 제도화하는 ‘지속가능금융 공시 규제’(SFDR)를 시행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ESG 공시 의무화로 기업 압박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상장사는 환경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고, 2030년부터는 모든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재계는 집단소송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ESG 경영 여부를 평가하는 제도 실행에 불만이 많다. ESG와 같은 비재무적 정보를 바탕으로 집단소송을 걸면 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영 여건이 좋은 대기업과 달리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도입이 쉽지만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9월 중소기업 3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 ESG 애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9.4%는 ESG 경영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밝혔고, 53.7%는 중소기업을 향한 ESG 도입 요구가 적절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로 인해 명확한 국제 기준이 나올 때까지 제도 도입을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제회계기준(IFRS)이 국제가능성기준위원회(ISSB)를 설립해 글로벌 기준을 만들고 있는데, 글로벌 기준과 별도의 움직임을 펼쳤다가 자칫 다시 제도를 바꾸는 이중 작업으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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