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파벌’로 누른 ‘민심’, 정치력으로 극복할까?
[이슈메이커] ‘파벌’로 누른 ‘민심’, 정치력으로 극복할까?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10.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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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파벌’로 누른 ‘민심’, 정치력으로 극복할까?
 
일본 집권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 총재가 신임 총리로 선출됐다.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해 초대 총리를 맡은 이토 히로부미 이후 100번째 총리다. 전임 내각인 스가 요시히데 총사퇴했다. 스가 총리의 재임 기간은 384일로 전후 총리 34명 가운데 12번째로 짧았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3세 정치인으로 엘리트 코스 밟아와
1957년 도쿄도 시부야구에서 태어난 기시다는 일본 정치권에서 ‘금수저 출신’ 의원으로 분류된다. 정치인 가문 출신으로 부친 기시다 후미타케 중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역시 중의원 6선 등을 지낸 정치인이다.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3세 정치인으로 큰 굴곡 없이 한 번도 낙선되지 않고 내리 9선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당내 명문 파벌인 ‘고치카이(기시다파)’의 수장으로서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도 그의 최대 자산이다.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과 방위상 등을 역임하며 내각에서도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 문부과학성 부대신에 임명되며 내각 업무를 처음으로 경험했고, 2007년 아베 신조 1차 내각에서 내각부 특명대신에 임명된 뒤 소비자 행정 추진 담당상과 우주 개발 담당상을 거쳤다.
 
특히 그가 역량을 드러낸 건 2012년 아베 신조 내각에서 외무상을 맡으면서다. 2017년까지 5년 동안 외무상을 맡으면서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두 번째로 임기가 길었던 외무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외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국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파트너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며 그의 이름이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기시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해 9월 건강 문제로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절치부심 끝에 재도전한 그는 이번 총재 선거에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하며 적극적으로 선거를 준비했다. 초기에는 대중 지지도가 높은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에게 뒤진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결국 ‘반(反) 고노 전선’의 지지를 받아 자민당 총재와 총리의 꿈을 이루게 됐다.
 
이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인답게 안정적인 이미지는 그의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색깔이 없다’, ‘대중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그런 기시다를 총리로 이끈 것은 아베 전 총리의 수훈으로 꼽힌다. 아베는 파벌 소속 의원들을 총동원하는 것도 모자라 전화기를 들고 당 총재를 뽑는 1차 선거에 투표권이 있는 수많은 국회의원과 이들과 동수인 당원 및 당우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며 그의 이름이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기시다 총리는 외무상 재임 중이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며 그의 이름이 한국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전임 정권 그늘 벗어날지가 관건
기시다 내각이 어떤 정책 노선을 취할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발언했던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우선 2012년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이 추진했던 헌법 개정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긴급사태 조항 신설과 자위대 명기 등을 골자로 자민당이 제시해 놓은 기존 개헌안이 자신의 임기 중에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헌법 개정 문제에서 아베 노선을 사실상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생각인 셈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중점을 두며 자민당 보수정권의 기존 노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각 인선을 살펴봐도 핵심 자리는 아베와 스가 정권에서 요직에 있던 파벌 수장이나 아베의 측근이 잇따라 올랐다. 그러면서 미국과 기술 패권 등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는 중국을 상대로는 강경한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중국을 염두에 둔 조치로 반도체 등 중요 물자 확보 및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경제 안보 추진법을 제정하고 담당 각료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북한과의 현안인 납치 문제에 관해서도 정상 간 만남을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전임 아베 및 스가 정권의 노선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이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마주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인답게 안정적인 이미지는 기시다 총리의 강점이지만 ‘대중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인답게 안정적인 이미지는 기시다 총리의 강점이지만 ‘대중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일본 수상관저 홈페이지

 

국내 현안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서는 한층 공세적인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극복 방안으로 의료 난민 제로화 등을 내세우면서 건강위기관리청 창설안을 제시한 기시다 총리는 어려움을 겪는 사업자 지원을 위한 경제대책도 공약했다. 경제 정책의 골격으로는 디플레이션 탈피에 초점을 맞춘 ‘아베노믹스’의 틀과 유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아베노믹스의 혜택이 대기업으로만 쏠리고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점을 지적했던 만큼,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 방침을 시사해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스가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들로 인해 새로운 정권의 ‘허니문 효과’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10월4∼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을 지지한다는 대답은 45%를 기록했다. 직전 스가 내각 출범 지후 지지율이 65%였던 것과 차이가 두드러지는 결과이다. 아시히신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기시다 정권이 아베·스가 정권을 계승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답하기도 했다.
 
 
아베·스가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들로 인해 기시다 내각의 ‘허니문 효과’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Flickr
아베·스가 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들로 인해 기시다 내각의 ‘허니문 효과’는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Flickr

 

한·일 관계 개선 전망은 ‘흐림’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5일 기시다 총리와 첫 정상 통화를 가졌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양 정상은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 발전과 허심탄회한 소통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로서, 동북아 지역을 넘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함께 협력해야 할 동반자라고 생각한다”면서 “한반도 문제 이외에도 코로나 위기와 기후변화 대응,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새로운 도전과제에 맞서 양국이 함께 대응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희망이 있는 미래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양국 간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따뜻한 축하 말씀에 감사드린다. 엄중한 안보 상황 하에 한·일, 한·미·일 공조가 중요하다”며 “한·일 양국을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시키자는 문 대통령의 말씀에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일 관계 개선 전망은 어둡다.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비롯해 양국 현안을 놓고 대립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통화에서 양측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기시다 총리는 통화 뒤 기자들에게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들 문제에 관한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먼저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소송 관련 일본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이전 정권의 입장을 이어간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일본 측의 “일관된 입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첫 정상 통화를 가졌지만 양국 현안을 놓고 대립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 관계 개선 전망은 어두운 상황이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첫 정상 통화를 가졌지만 양국 현안을 놓고 대립 관계를 이어가고 있어 관계 개선 전망은 어두운 상황이다. ⓒ청와대

 

두 나라의 정치적인 면에서도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선과 참의원 선거 등을 거쳐야 하는 기시다 내각은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두르기보다는 대립 관계를 유지해 민심을 얻으려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관측이다. 한국 역시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만큼 일본에 큰 양보를 하면서까지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떨어진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양국 정상 간 허심탄회한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공감을 했다고 청와대가 밝힌 만큼 일본도 선거 국면이 끝난 뒤에는 조금씩 움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장기적 관점을 두고 한국 정부가 끝까지 대화의 손을 거두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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