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Ⅰ] 오징어게임으로 완성된 준비된 창작자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Ⅰ] 오징어게임으로 완성된 준비된 창작자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1.10.27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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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오징어게임으로 완성된 준비된 창작자

 

유난히도 길었던 2021년 추석 명절, 가족들과 모여 무심코 채널을 돌리던 중, 넷플릭스를 통해 입소문이 번지던 ‘오징어게임’에 눈길이 갔다. 평소 OTT 서비스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B급 감성 넘치는 제목에 잠시 시선을 멈춰본다. 단순한 킬링타임 오락물이겠거니 하는 마음에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고, 그 길로 485분, 8시간이 넘도록 정주행을 시작했다. 현실과 향수가 공존하는 독특한 색깔의 영화에 황금 같은 연휴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넷플릭스 역대 최대 TV쇼로 평가받는 오징어게임을 접한 기자의 실제 경험이다. 세계인을 열광시킨 이 작품을 만들어낸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이슈메이커에서 황동혁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영화감독 황동혁ⓒ 넷플릭스
영화감독 황동혁
ⓒ 넷플릭스

 

현실과 미지의 공간이 공존하는 작품

명분 없는 자극적인 소재, 히어로, 억지 신파, 블록버스터 액션, 천문학적인 제작비. 현대 상업물의 흥행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들이다. 이들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 많게는 3~4가지 요소들을 극에 포함시켜 대중들의 감정을 정신없이 쥐락펴락한다. 관람 과정은 가슴이 뛰었다가 즐겁다가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났다가 먹먹해진다. 하지만 작품이 끝나는 시점에서는 무언가 공허해진다. 혹자는 이를 우스갯소리로 ‘현자 타임’이라고도 표현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을 짧은 시간에 쏟아내어 아무런 감정도, 감동도 없는 해탈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지칭한다. 때문에 방송·영화 업계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 같은 흐름을 따르지 않을 시 ‘영상 예술’ 행위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들은 시대적 흐름에 민감하다. 맵고 달고 짠 자극적인 영상에는 이미 적응을 완료했다. 그래서 신선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과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미지의 분리된 공간이 공존하는 작품,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한 오징어게임이 지구촌 전역에서 화두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점이 아니었을까?

 

오징어게임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황동혁 감독이 세계적인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70~80년대 한국의 문화와 현재의 시대적 배경을 절묘하게 버무렸음은 물론, 세계인이 공감할만한 소재를 유쾌하고 덤덤히 풀어냈기 때문이다. 2008년 처음 오징어게임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당시에는 ‘난해하다’, ‘기괴하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작을 포기했던 작품이었지만, 13년이 지난 현재에는 세계에서 가장 흥행을 한 TV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은 칼럼을 통해 “황동혁 감독은 ‘그간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상업영화 시장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고, 관객보다 먼저 웃고, 관객보다 먼저 우는 영화와 드라마에 지쳤다. 이 과잉이 쌓여서 임계점에 달하는 순간 한국관객도 한국영화를 버릴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낯설지만, 완성도 높은 영화 ‘남한산성’을 만들었다”라고 전한 바 있다. 최 소장이 전한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영화 남한산성이 흥행한 영화였나?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 소재 선정과 이어져

황동혁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2005년 단편영화 ‘기적의 도로’로 영화감독에 데뷔한 그는 2007년 ‘마이파더’로 장편 데뷔를 했고, 2011년 ‘도가니’, 2014년 ‘수상한 그녀’, 2017년 ‘남한산성’, 2020년 ‘도굴’로 이어지는 필모를 쌓아나간다. 흥행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성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감독이 추구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이 감독만의 색깔이 묻어나는지가 중요하다. 모든 작품을 감상한 이후 드는 생각은 ‘?’였다. 작품마다 연출 기법, 촬영 기법, 스토리 전개, 감정 표현, 장르 등 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장편 상업영화에 ‘입봉’해 흥행 감독 반열에 올랐음에도 새로운 시도의 폭이 너무나 커 보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공통된 점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남한산성을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보인 시대적·사회적 공감대를 끌어내는 황동혁 감독 특유의 소재 선정이다. 그래서 그는 작품 남한산성에 대해 ‘낯설지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가장 많은 수상내역을 자랑하는 작품은 남한산성이다.

 

이러한 그의 일관성이 결국 오징어게임이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개봉 초기 잔인한 묘사와 극단적인 소재 때문에 작품성에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이를 통해 화제성을 잡으며 흥행에 이르게 된 것이다. 만약 13년 전에 같은 시나리오로 제작에 들어갔다면, 제작비와 형식, 수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어찌 보면 10여 년간 묵혀온 것이 오징어게임이 진정한 빛을 보기 위한 숙성의 시간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동혁 감독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영화로 만들어보려고 했을 때 낯설고 기괴하고 난해하다는 평이 많아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이 됐고, 현실감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슬프게도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라며 “요새는 아이들까지도 게임을 하지 않나. 남녀노소가 열광하는 요소다.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가상화폐니, 전 세계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오징어게임 후속작은?

황동혁 감독이 오징어게임 시즌2를 제작할지에 많은 이가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황 감독 본인은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바는 없다’고 일축했다. ‘형님만 한 아우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가 전작의 부담을 떠안고 후속편을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다. 그동안 그래왔듯 새로운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필모를 쌓아나가는 것이 황 감독 자신이 원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데뷔 후 그동안 여러 작품을 만들어오며 꼼꼼하고 노련한 연출과 날카롭고 차가운 미장센, 거북한 폭력묘사, 인위적이지 않고 절제돼있는 톤앤매너와 스토리텔링이라는 특징을 만들어온 만큼, 많은 이들은 후속 작품에서는 더욱 깊숙이 현실을 고증하고 역사를 탐구해 세상사를 풍자할 수 있는 작품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작품을 보더라도 자극적이고 불편한 소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연출하기도 했고, 사회적 리스크가 큰 작품을 연출해왔기에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작품이 ‘반드시 흥행할 것이다’라는 전망을 하기는 어렵다. 남한산성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 스펙트럼이 넓기에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그를 신뢰하는 제작사도 있다. CJ ENM은 이러한 이유로 남한산성 제작을 지원했다.

 

 

황동혁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수상내역을 자랑하는 영화 남한산성에 대해 “그간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상업영화 시장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고, 관객보다 먼저 웃고, 관객보다 먼저 우는 영화와 드라마에 지쳤다. 그래서 낯설지만, 완성도 높은 영화 ‘남한산성’을 만들었다”라고 밝혔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 CJ엔터테인먼트
황동혁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수상내역을 자랑하는 영화 남한산성에 대해 “그간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상업영화 시장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고, 관객보다 먼저 웃고, 관객보다 먼저 우는 영화와 드라마에 지쳤다. 그래서 낯설지만, 완성도 높은 영화 ‘남한산성’을 만들었다”라고 밝혔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 CJ엔터테인먼트

 

황동혁 감독의 향후 행보와는 별개로 세계는 오징어게임 앓이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중국에서는 오징어게임을 표절한 예능 게임을 선보이려고 했고, 핼러윈을 맞아 오징어게임 굿즈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오징어게임 속 초록색 체육복을 입고 실적을 발표하기도 했고, 오징어게임 출연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배우로 대접받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오징어게임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출연진과 제작진들은 영화 속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됐다. 끝으로 시사위크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밝힌 황 감독의 ‘전하고픈 메시지’를 전한다.

 

“이 작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세상이 됐다는 게 작품으로 보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으로 보면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는 말이 아니야, 그래서 궁금해. 너희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라는 기훈의 대사를 넣은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라며 “우리는 모두 경마장의 말처럼, 게임판 위의 말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말이 아닌 사람이다. 말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게임판을 만들어낸 시스템,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 사회에 대해 알아야 하고 울어야 하고 분노해야 한다. 그걸 기훈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내가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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