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민주주의의 ‘디딤돌’, 혹은 ‘걸림돌’?
[이슈메이커] 민주주의의 ‘디딤돌’, 혹은 ‘걸림돌’?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9.0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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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민주주의의 ‘디딤돌’, 혹은 ‘걸림돌’?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한국 정치를 이끈 가장 대표적 지도자는 ‘3金(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었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풍미한 이들이 권력을 두고 서로 협력하거나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민주주의의 틀도 점점 잡혀갔다. 하지만 이들은 측근과 가신을 중심으로 당과 파벌을 운영하며 한국 사회의 ‘편 가르기’ 문화를 고착시켰다는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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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부작 드라마’ 평가받은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밀레니엄까지 지속된 ‘3김 정치 시대’가 마무리되고, 2002년 16대 대선은 3김이 퇴장한 가운데 치러졌다. 그만큼 선거의 의미는 막중했다. 이들이 남긴 나쁜 유산이기도 한 분열적 지역주의와 사당 정치, 정치부패 등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2001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참패했다. 당내에서는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두고 공방이 이어졌고, 이후 당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의 기회를 되살리기 위해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정당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권과 당권의 분리를 비롯해 총재직 폐지, 6명의 선출직 최고위원과 원내총무 및 사무총장을 당연직 최고위원으로 하는 집단 지도체제, 미국식 예비선거제를 도입해 모든 공직을 상향식으로 공천한다는 내용의 쇄신 방안을 내놓았다.
 
여기서 가장 주목받았던 것이 ‘국민경선제’라 불린 미국식 예비선거제도의 도입이다. 대통령 후보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만들겠다는 획기적 개혁 조치여서다. 그동안 우리 정치사에서 대선후보 선출 과정은 정당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하향식’이었다. 하지만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으로 바꿔 공천권을 국민에게 개방하게 되면 대중정당으로의 변모가 가능해지는 일이었다.
 
대선 후보 결정이 국민의 손으로 넘어오면서 이 과정은 매우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이 시작된 뒤 처음 지지율 1.2%에 불과하던 노무현 후보는 전국에서 ‘노풍’을 일으켰다. 광주 경선에서 37.9%의 득표로 호남 출신 한화갑(17.9%) 후보와 대세론을 펼쳤던 이인제(31.3%)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더니,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근거지인 광주에서마저 승리하면서 파죽지세를 달렸다. 주말과 휴일마다 치러진 경선에서 연일 이변이 벌어지자 ‘16부작 주말 드라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당내 이인제 대세론을 따돌리고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 후보는 그해 연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처럼 국민경선제는 이변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처음 이를 도입했던 미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들이 있다. 1960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존 F. 케네디가 거물 정치인이던 린든 존슨을 꺾었던 일이나, 2008년 버락 오마바가 민주당 핵심 주류이던 힐러리 클린턴에게 승리를 거둔 것도 경선 과정의 역동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이 시작된 뒤 노무현 후보는 전국에서 ‘노풍’을 일으켰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이 시작된 뒤 노무현 후보는 전국에서 ‘노풍’을 일으켰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경선룰’ 두고 숱한 잡음 이어져
우리나라의 국민경선제는 미국 대선의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제도의 맥락은 다소 다르다. 예비선거(Primary)를 일반 대중에 개방토록 한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대다수가 민주당 혹은 공화당 당원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국민경선제를 도입하면서 일반 국민의 참여 비율에 제한을 두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던 당시의 국민경선제 규칙은 당원 50%, 일반 국민 50%였다.
 
다만 혹자들은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이나 이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특정 정당의 대선 후보 결정에 동등한 권한을 갖는 것이 오히려 비민주적인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경선 과정마다 ‘역선택’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좁은 의미로는 자신이 진짜 선호하는 후보는 아니지만, 본선에서 당선 경쟁력을 더 갖춘 후보 중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이에게 전략적으로 투표를 할 수 있다. 넓게 보면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이 본선에 나오면 지지하는 정당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주자를 지지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지난 7월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선거인단으로 참여하고 이를 지지자들에게도 독려한 것을 두고 여야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국민의힘은 1차 경선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여권 지지층의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두고 각 후보 간 설전이 펼쳐지고 있다. 여권 지지층이 결집해 역선택에 나서면 경선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처럼 ‘경선룰’은 경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본 경선에서는 당원투표 5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를 통해 최종 후보를 선출하는데, 당원의 투표에 가중치를 더하는 ‘국민참여경선’과 같은 방식이라면 조직표가 중요해지는 차이도 있어서다. 현재 민주당은 경선 일정을 5주 연기한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으로 인해 오는 9월 5일로 예정됐던 대선 후보 선출일도 10월로 미뤄졌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자 선출은 선거일 전 180일 전까지로 되어있지만, ‘상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로 다시 정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9월 1차 예비경선에서 후보 8명을 압축하고 10월 2차 예비경선을 통해 4명으로 다시 줄이기로 했다. 2차 경선은 당원 투표(30%)와 여론조사(70%) 비율을 1차와 달리하고, 11월 전당대회에서 최종 후보를 선출할 때는 각각 50%씩 반영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사이의 네거티브 공방이 격화되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사이의 네거티브 공방이 격화되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당내 거센 네거티브 전은 후유증 유발
차기 대선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여야 각 당 후보들의 다툼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지지율 1·2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사이의 네거티브 공방이 격화되는 추세다. 당내에서 ‘원 팀(One Team)’ 협약식을 진행한 데 이어 양 캠프가 네거티브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전혀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이 지사 측이 이낙연 전 대표 측근의 옵티머스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찬반 논란과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의 관계 의혹을 끄집어냈다. 이에 이 전 대표 쪽도 이 지사의 음주운전 재범 의혹을 제기했고, 성남시장 시절 철거민 폭행 고발과 ‘욕설 논란’, ‘백제 발언’ 논란으로 이어졌다. 양 캠프가 서로 상대 후보의 사진을 폭로하며 ‘조폭 친분설’을 언급하는 모습도 나왔다. 지지자들 간 공방도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에 민주당은 당 홈페이지 권리당원·정책 게시판 운영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의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을 둘러싼 논란도 경선판을 잠시 흔들었다. ‘보은 인사’, ‘도쿄 관광공사에 어울리는 분’이라며 임명을 반대한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황 씨가 “정치 생명을 끊는 데 집중하겠다”며 거친 언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언행이라는 지적이 커지자 황 씨는 사장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의 사례에서 보듯 전문가들은 사생결단식 당내 경선은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JTBC 뉴스화면 갈무리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의 사례에서 보듯 전문가들은 사생결단식 당내 경선은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JTBC 뉴스화면 갈무리

 

전문가들은 사생결단식 당내 경선은 흥행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큰 후유증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한 상황이라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경선만 승리하면 대통령이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 경선을 일주일여 앞두고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40.6%, 30.1%의 지지율을 기록한 데 반해 여권 주자였던 손학규 후보는 8.0%, 정동영 후보는 2.5%로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런 만큼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이 공방도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는 ‘도곡동 땅’ 문제와 ‘BBK 주가 조작’ 논란에 대해 해명하라며 공세에 나섰고, 이 후보 측은 ‘정수장학회’ 문제를 거론하고 ‘최태민 일가의 허수아비’라 공격했다. 두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이 과열되자 당은 각 후보에 대한 검증청문회를 전국에 TV로 생중계하기도 했다. 급기야 합동연설회에서 각 후보 지지자들이 충돌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결국 이 후보가 승리하고 대통령까지 당선되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여당 내 야당’이었던 친박계와 사사건건 충돌했다. 당시의 폭로전이 남긴 여진은 대통령 퇴임 이후로도 이어져 두 사람은 결국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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