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도쿄 올림픽이 남긴 과제
[이슈메이커] 도쿄 올림픽이 남긴 과제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8.24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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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도쿄 올림픽이 남긴 과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20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대회 개최를 강행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안방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올림픽을 보며 잠시나마 지친 일상을 잊고 스포츠 경기의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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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체육 전환 후 최고 성적 거둔 일본
대한민국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6위를 기록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육상 남자 높이뛰기의 우상혁이나 남자 근대5종의 정진화 등 아름다운 4위 입상자들이 국민들에게 뭉클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만 따지면 분명 아쉬운 성적이다.
 
반면 개최국 일본은 금메달 27개와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 등 모두 58개 메달을 따내 종합 3위에 오르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특히 전체 33개 종목 중 절반이 넘는 19개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이 8개 종목에 편중되었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물론 이번 대회가 일본의 ‘안방’에서 열렸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실상 무관중으로 대회가 펼쳐졌으나 개막 이전까지 충분한 훈련의 기회가 있었고, 시차 및 환경 적응에도 무리가 없었다. 더욱이 코로나19 방역 문제로 인해 다른 나라들의 입국이 늦어져 현지 적응에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는 점도 일본의 좋은 성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국내 체육계는 내심 일본을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동안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종합 4위를 달성한 뒤, 2004년 아테네 대회를 제외하고는 올림픽 무대에서 줄곧 일본에 우위를 기록해 왔다. 그러다가 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일본이 메달 41개를, 한국이 21개를 기록하며 전세가 뒤바뀌더니 이번에는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와 같은 전세 역전은 일본의 엘리트 체육으로의 전환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오랜 기간 생활 체육에 방점을 두었던 일본은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번번이 한국과 중국에 밀리자 2010년대를 전후로 엘리트 체육에 대대적 투자를 재개했다. 2008년 아지노모토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를 건립했고, 2015년에는 문부과학성에서 스포츠 분야를 분리해 ‘스포츠청’을 신설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자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종목별 경쟁력 강화에 매진했다. 여기에 그동안 다진 생활 체육 인프라가 더해져 시너지가 극대화되었다.
 
최근 들어 메달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생활 체육 확대에 집중하자는 목소리의 기저에는 ‘선진국들은 엘리트 체육에 매진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깔려있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분석이었던 셈이다. 실제 생활 체육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가 중 하나인 영국 역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9개, 동메달 6개로 종합 36위에 그치자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로 인해 엘리트 체육 강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된다. 스포츠 복권 기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유망주 육성에 쏟아부었고, 사이클과 조정 등 메달 획득을 위한 전략 종목을 골라냈다. 이는 결과로 연결되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위, 2012년 런던 올림픽 3위, 2016년 리우 대회 2위에 이은 이번 대회 4위로 종합순위가 상승했다.
 
 
대한민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6위를 기록했다. ⓒ대한체육회
대한민국 선수단은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6위를 기록했다. ⓒ대한체육회

 

부작용 양산한 한국형 엘리트 체육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태동기는 1960년대로 볼 수 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대외적으로는 남북대결 구도에서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의 일체감을 형성해 국가주의를 고양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제도화했다. 이를 통해 국민체육진흥법이 제정됐으며 정부가 선수와 전문 지도자 육성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에도 이어져 1972년 체육특기자 제도가 신설된다. 중·고등학교의 우수한 선수들이 학업을 신경 쓰지 않고도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부의 기조는 민주화 이후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일례로 김대중 정부 말기인 지난 2002년 우리나라의 체육 예산 중 엘리트 체육 관련 예산이 28.2%에 달하는 것에 비해 생활 체육 관련 예산은 8.9%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국형 엘리트 체육의 문제는 부작용을 낳았다. 학창 시절 공부는 사실상 포기한 채 운동에만 몰두하다 보니 선수 생활이 중단되거나 은퇴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부지기수다. 여기에 선수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권력 사유화에만 몰두하는 일부 협회의 문제, 그리고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멍들게 하는 파벌주의와 서열주의로 인한 폭력 사건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결국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 육성이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요한 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조화다. 엘리트 체육이 탄생시킨 스타를 보고 해당 종목의 생활 체육이 활성화되어 유망주가 꿈을 키우고, 또 이들이 성장해 국제대회에서 스타로 발돋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주요 종목들은 저변 확대에 애를 먹고 있다. 1가구 1자녀가 대부분이 된 한국 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춥고 배고픈’ 종목을 택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유소년선수가 줄면 인프라가 축소되고, 결국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과거 전통적인 ‘효자 종목’으로 불리던 유도나 레슬링, 복싱 등은 수년째 침체의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코리아넷
전문가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코리아넷

 

기업들 적극적 후원 절실
전문가들은 지속적 관심과 투자가 결국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미국과 유럽 등의 체육 선진국 중 어느 나라도 생활 체육에만 매몰되어 엘리트 체육을 터부시하는 경우는 없다. 엘리트 체육 육성을 위해 기업들이 적극적인 후원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 이번 올림픽을 마무리하며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엘리트 체육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현실이 아쉽다. 특히 기업의 후원 참여가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번에 금메달 4개를 따낸 양궁의 경우 협회장 사인 현대자동차그룹이 선수들의 훈련, 양궁협회의 정비에만 37년간 500억 원 정도를 투자한 것으로 안다. 이런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덕분에 양궁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장기간 세계를 제패했다”면서 “국정농단 사건 이후 기업이 스포츠 후원을 끊은 여파가 지금도 이어진다. 한국 스포츠가 예전처럼 다시 세계를 호령하려면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현 스포츠 정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엘리트와 생활 체육의 통합을 중심으로 큰 변화를 맞은 뒤 후유증을 앓고 있다. 여러 진통 속에서 스포츠 단체가 전부 통합되어 2016년 대한체육회로 일원화됐지만 생활 체육과 엘리트 체육은 여전히 괴리되어 있고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주요 단체의 재정은 여전히 크게 늘지 않았고, 종목별 편차도 크다. 국민들이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다양한 가치들이 추구되면서 과거처럼 국가대항전에 온 국민이 열광하거나 집중하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십 년 동안 양궁 발전을 위해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고, 선수들을 위한 환경 조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십 년 동안 양궁 발전을 위해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고, 선수들을 위한 환경 조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결국 체육인들이 정책 결정을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엘리트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이 담고 있는 가치를 잘 설파해 정부의 투자는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한국 선수단에 금메달 4개를 안긴 대표 효자 종목은 양궁이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고, 선수들을 위한 환경 조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새로운 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은 펜싱도 SK그룹이 2003년부터 계열사 대표들이 연이어 대한펜싱협회장을 맡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나갔다. 핵심 계열사 SK텔레콤은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국가대표팀 지원을 위한 ‘드림팀’을 구성해 전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남자 도마에서 신재환이 금메달을 선사한 체조는 포스코 그룹이 든든한 후원자다. 포스코는 1985년부터 대한체조협회 회장사를 맡아오면서 체조 발전을 위해 37년여간 210억 원가량을 지원했다. 그 결과 이번 대회에서 여서정까지 여자 도마 동메달을 목에 걸며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특정 스포츠 종목을 지원하기 어렵다면 기업들이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성적 지상주의는 항상 경계해야 하지만 생활 체육의 중요성 이상으로 올림픽 성적이 가진 가치도 여전하다. 이번 대회에서 희망을 보여준 젊은 스타들이 3년 후 파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체육계에서 미래 청사진을 그려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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