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현대 정치사의 변곡점 숱하게 만들어
[이슈메이커] 현대 정치사의 변곡점 숱하게 만들어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8.1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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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현대 정치사의 변곡점 숱하게 만들어

 

선거에 나서는 정당과 후보의 목적은 결국 승리다. 이를 위해 정치사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활용된 것이 ‘단일화’이다. 그동안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후보 단일화가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적이 다수 있다. 하지만 단일화가 후보들의 지지율 합산이란 결과만을 낳은 것만은 아니다. ‘1+1’이 아닌 마이너스의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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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실패 교훈으로 대통령 자리 오른 DJ

1987년 대선은 대표적인 단일화 실패 사례로 꼽힌다. 당시 5공 신군부 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며 정권 연장을 도모했지만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한 민심이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며 기류가 바뀌게 된다. 여기에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 사건마저 터지자 전국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로 뒤덮여 민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6월 29일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는 직선제 개헌을 받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이던 김영삼과 김대중 후보는 끝내 단일화에 실패했다. ‘양 김(金)’ 모두 강력한 지역 지지 기반이 있었고 대권욕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단일화 압박이 가해졌지만 두 사람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는 ‘4자 필승론’을 내세우며 승리를 자신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김영삼 후보가 먼저 출마 선언을 했고, 김대중 후보는 탈당 후 평화민주당을 창당해 대선 후보로 나섰다. 그 결과 김영삼 후보가 28.0%, 김대중 후보가 27.0%를 획득했고, 노태우 후보는 역대 최소 득표율인 36.6%를 얻어 ‘어부지리’ 승리를 거뒀다.

 

1987년의 분열은 민주화의 지체로 이어졌고 후보 단일화가 선거 전략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10년 후 15대 대선은 후보 단일화의 성공 사례가 된다.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다. 새정치국민회의를 이끌던 김대중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는 대선을 약 한 달 앞둔 1997년 11월 김대중 후보로의 단일화에 합의했다. 대선에서 연이은 패배를 겪었던 DJ에게는 일종의 승부수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갔던 유신 체제의 ‘2인자’와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는 총리 자리와 내각제 개헌 등 권력 분점을 매개로 김종필 총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반면 여권인 신한국당은 경선 결과에 불복한 이인제 후보가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독자 출마해 이회창 후보의 파이를 뺏는 결과를 낳았다. 김대중 후보는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이겼고, 이인제 후보는 3위를 기록했다.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았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았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각본없는 드라마와 같았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02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한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았다. 16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세론’이 횡행한 가운데, 선거 레이스 초반부터 큰 격차로 여론조사 1위를 달렸다. 새천년민주당은 전국 순회 국민참여 경선을 통해 유력 주자로 꼽히던 이인제 후보 대신 노무현 후보가 ‘노풍’을 일으키며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선거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전면에 나서 치른 6월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며 타격을 입었다. 당 일각에서 ‘후보 흔들기’와 재경선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 아들의 비리와 같은 악재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여기에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이던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인기가 치솟자 민주당 내부에서 두 사람의 단일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 선거를 한 달 앞두고 역사상 최초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에 합의하게 되었고, 노무현 후보는 “국민 사이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집권하면 한반도를 다시 전쟁의 공포로 몰아가고 구태정치, 과거 정치로 돌아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단일화 요구가 많아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키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두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이견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 11월 25일 노 후보가 단일 후보로 확정됐다. 단일화 직후 한 포장마차에서 노무현, 정몽준 두 사람은 소주잔을 들고 ‘러브샷’을 하는 상징적 장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를 단 8시간여 남겨두고 국민통합21에서 돌연 ‘지지 철회’란 폭탄선언이 나왔다. 여러 분석이 있었지만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분이 있는데 너무 속도위반하지 마라. ‘대찬 여자’ 추미애도 있고, 제가 흔들릴 때 제 등을 받치던 정동영 고문도 있다”는 노무현의 서울 명동 유세 발언에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 계기였다.

 

다만 오히려 그 여파가 당선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돌발 변수 발생 이후 노 후보와 참모들이 평창동 정몽준 대표의 집을 찾았지만 끝내 문전박대를 당했고, 이러한 모습이 생방송으로 전해지자 노 후보 지지자들의 결집으로 이어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선 일정을 5주간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은 경선 일정을 5주간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

 

표면적 단일화만 이뤄진 2012년 대선

2012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이명박 정권 연장을 막겠다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의 격돌에 나설 단일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경선 룰을 놓고 양측 간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했다. 결국 안 후보가 11월 23일 ‘백의종군’ 선언을 하며 야권 단일 후보직을 문 후보에게 넘겨 표면적인 단일화는 이뤄졌지만 중도 사퇴의 성격이 강했다.

 

안 후보는 사퇴 선언 후 2주가량 지나 문 후보를 돕겠다고 나섰으나, 당시 범야권 연대로 출범한 ‘국민연대’에는 불참했다. 안 대표 지지층의 표가 문 후보에게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백히 실패한 단일화였다. 실제 대선 과정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흔쾌히 도왔다고 보긴 어려웠다. 여기에 안 후보가 대선 당일 투표 직후 미국으로 출국한다는 사실이 사전에 알려지기도 했다. 결국 51.6%의 득표를 얻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은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원인을 분석한 ‘대선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문 후보가 당 장악력, 캠프 운영 등에서 미숙함을 보였다고 했다. 이와 함께 단일화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에 맞서 단일화를 추진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단일화 이후 안철수 후보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지지유세를 한 것애 대해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결과적으로 양쪽 지지자들의 갈등을 봉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패한 단일화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은 후폭풍도 남겼다. 문 후보는 대담집에서 ‘안 후보가 2012년 대선 때 미국으로 떠나지 않았으면 어땠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아쉬움들이 있지만 알 수는 없다”고 답했고, 이에 한 후보는 “동물도 고마움을 안다”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안 후보 입장에서는 후보 단일화 협상이 조율되지 못하자 스스로 사퇴했고, 대선 기간 내내 선거 지원을 하지 않았느냐는 강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되고, 2017년 펼쳐진 ‘장미 대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안철수 후보는 이번에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경쟁 구도를 펼치게 된다. 야권 일각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의 3자 단일화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국민의힘은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당내 결집을 강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국민의힘은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당내 결집을 강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20대 대선 역시 단일화가 분수령?

지난 7월 12일 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미 본경선에 진출할 6명의 후보자가 결정됐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경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여야 잠룡들이 10명을 넘는 상태이지만, 이번 대선은 지난 2017년 대선과는 달리 여야 1:1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1987년 체제 이후 지속된 보수와 진보 간 진영대결인 셈인데, 결국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날 가능성이 커 결국 이번에도 단일화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경선 일정을 5주간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현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가 맹추격하는 양상이다. 이 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자들은 지지율을 끌어올릴 시간을 번 셈이다. 그 시간 동안 이낙연·정세균 후보 간 ‘반명 연대’ 단일화 논의가 현실화 될 것이냐도 관전 포인트다. 경선판 자체가 180도 바뀔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 하지만 정세균 전 총리는 “후보 단일화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가설이다”며 “단일화 없이 경선을 완주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결선투표가 이뤄지게 되면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야권인 국민의힘은 유력한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입당이 지연되는 상황 속에서 당내 결집을 강화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입당을 계기로 ‘자강론’이 점차 힘을 받는 상황인데다, 국민의힘 지도부 역시 당내 주자들의 지원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이준석 대표가 대선 경선 버스 정시 출발론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윤 전 총장과 결국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와 같이 국민의힘 내 경선 승자가 당 밖 주자와 토너먼트 단일화를 하는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윤 전 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 단일화가 돼야만 정권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를 위한 경쟁은 필요하고, 그 절차에 따라서 (후보가) 결정될 것”이다면서도 “(그 경선은 당) 바깥에서 할 수도 있고 안에서도 할 수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결국 국민의힘의 ‘대선 경선 버스’ 출발 시점을 전후로 윤 전 총장이 어느 정치적 세력과 연대에 나설지 구체적으로 가시화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는 9월이 되면 윤 전 총장이 야권 단일화에 시동을 걸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윤 전 총장이 조기 입당을 택하지 않더라도 선거 국면 막판 야권 통합 메시지를 통해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고 국민의힘 입당 절차를 밟지 않겠냐는 게 정치권의 주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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