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Story] 영화 속에 그려진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Fashion Story] 영화 속에 그려진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6.02.01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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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영화 속에 그려진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디자이너, 관객과 스타일로 소통하다



 

 

▲코코 샤넬(Coco Before Chanel)은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인 가브리엘 샤넬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영화이다 ⓒ 영화 코코 샤넬

 

 

패션 디자이너란 일반인들보다 앞선 트렌드 감각으로 유행을 주도한다. 자신만의 개성과 특징, 앞선 트렌드 감각을 갖춘 디자이너들은 영화 시장에서도 필요한 존재다. 실제로 직접 영화 속 주인공으로 참여하거나 영화 속 인물들의 의상 제작을 위해 다수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영화 속에 그려진 패션 혁명가들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과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노라노는 21세기인 현재에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자, 현시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세 명의 패션 혁명가들의 인생 스토리가 영화로 제작되자, 많은 사람이 그들의 인생에 다시 주목했다.


 

▲ⓒ 영화 코코 샤넬, 영화 이브 생 로랑, 영화 노라노

 

 

프랑스의 복식 디자이너이자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인 가브리엘 샤넬은 가수와 배우를 꿈꾸던 시절, 카페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코코라는 애칭을 얻었고 사람들은 그를 코코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이후, 1910년 파리에서 여성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하며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복 디자이너로 전향한 샤넬은 당시 여성들을 갑갑하게 만들던 코르셋과 화려한 장식이 된 의상에서 벗어나 심플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을 제작했다. 그는 치마 길이를 짧게 줄여 생활의 편안함을 강조했으며, 움직임이 자유로운 여성용 재킷과 현재까지도 샤넬의 대표 아이템으로 사랑받는 체인 숄더백을 선보였다. 또한, 당시 장례식에서만 허용됐던 컬러인 블랙을 고품격화해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샤넬은 현재 샤넬 수트라고 불리는 가디건 재킷과 무릎길이의 치마, 향수 NO.5 등을 발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자신의 명성을 높였다. 그의 높은 명성과 대중성은 세계 유명 인사들의 스타일과 에피소드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는 점에서 확인 가능하다. 2009년 8월에 개봉한 영화 ‘코코 샤넬(Coco Before Chanel)’은 가브리엘 샤넬이 살아생전 제작했던 의상 및 액세서리와 그의 성공 과정, 운명적인 사랑 등 가브리엘 샤넬의 인생 스토리를 모두 담아냈다. 

 

코코 샤넬을 잇는 패션계 혁명가로 프랑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들 수 있다.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당대 최고의 패션 하우스 중 하나였던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그는 현재까지도 천재 디자이너라고 불리고 있다. 이브 생 로랑은 디올의 아트디렉터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상류층들만을 위한 오트쿠튀르를 진행했다. 오트쿠튀르를 선보이던 그는 우아하고 화려한 의복에 지루함을 느꼈고, 새로운 문화와 패션에 도전했다. 이후 평생의 연인이자 뮤즈인 피에르 베르제(Pierre Berge)를 만나 1961년 12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패션 하우스 ‘이브 생 로랑 쿠튀르 하우스’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컬렉션을 통해 남자의 턱시도를 여성 의복으로 탈바꿈시킨 르 스모킹과 세계 여러 나라 민족 고유 복장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한 에스닉 룩,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에서 영감을 받은 몬드리안 룩 등을 선보였다. 이처럼 이브 생 로랑은 디자인을 통해 여성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제공했고, 예술을 디자인에 입히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패션을 창조했다. 또한, 의상과 함께 향수와 립스틱 등 코스메틱 분야에서도 대중들의 사랑을 이끌어내며 현재까지도 많은 여성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브 생 로랑의 인생 스토리는 수 편의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다뤄졌다. 대표 작품으로는 2011년 4월 21일 개봉작이자 본인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Yves Saint Laurent - Pierre Berge, L’amour Fou)’와 2014년 6월 26일 개봉작이자 배우 피에르 니에이(Pierre Niney)가 주연을 맡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2014년 4월 16일 개봉작이자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Gaspard Ulliel)이 주연인 ‘생 로랑(Saint Laurent)’이 있다.


국내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인 노라노(Nora Noh)의 패션사를 그린 영화 ‘노라노(Nora Noh)’는 지난 2013년 10월 31일에 개봉했다. 1947년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노라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서울 명동에 의상실 ‘노라노의 집’을 열었다. 노라노의 집은 당시 패션에 대한 개념을 잘 모르던 한국 사람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또한, 노라노는 1956년 반도호텔에서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개최했다. 이 최초의 패션쇼는 100% 국내 기술을 사용했다는 점과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산된 모직 원단이 사용됐다는 점 등 다양한 이유로 큰 의미가 있다. 이 외에도 노라노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와 펄시스터즈의 판탈롱 스타일, 배우 엄앵란의 오드리 헵번 스타일, 육영수 여사를 포함한 다수 영부인의 의상 등 수 많은 의복을 창조하며 국내 패션계에 한 획을 그었다. 그의 활동으로 인해 해외에서 국내 패션의 위상이 높아지기도 했다. 노라노는 195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의상상(Best Dress Award)을 수상했으며, 1965년 하와이에서 최초로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며 브랜드 수출을 시작했다.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 패션쇼에 참가했으며, 1974년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노라노는 1977년에 예림양행을 설립한 뒤, 1978년 뉴욕 법인을 설립했고 1990년 홍콩, 일본 등에도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다. 영화 노라노는 국내 패션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노라노의 디자이너로서의 삶과 한국 근현대사 시절의 패션 및 문화 변화를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디자이너들

자신의 영감과 잠재력을 스크린 속 의상 작품으로 표현한 패션 디자이너들도 있다. 2013년에 개봉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작품인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192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아름다운 영상미와 화려한 의상으로 보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위대한 개츠비 속, 여성 의복은 ‘프라다’와 ‘미우미우’를 창조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제작했으며 남성 의복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미국 전통 클래식 브랜드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가 담당했다. 1920년대는 재즈 에이지라고 불렸다. 재즈 에이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물질적 풍요와는 대조적으로 정신적 빈곤과 불안을 안고 있던 시대를 말한다. 그래서 다수의 사람은 자아 상실감으로 향락과 소비문화를 탐닉했고 자동차와 영화, 재즈가 유행을 끌었다. 당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신여성을 뜻하는 플래퍼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또한, 여성들은 답답한 코르셋과 모래시계 형태의 드레스가 아닌, 보이시하고 자유로운 슬림 스타일의 드레스를 선호했으며, 귀밑까지 오는 짧은 머리에 메리제인 슈즈를 신은 플래퍼 룩이 유행했다. 여성 의복 소재로는 신체 움직임과 조화를 중시하며 고전적인 직선미가 특징인 모슬린과 크레이프 드 신, 실크, 벨벳 등 부드럽고 얇은 천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에 위대한 개츠비 여성 스타일링을 담당한 미우치아 프라다는 메탈릭 라메와 스팽글 실크 태피터(Taffeta), 카라 염색 퍼, 벨벳, 다양한 디자인의 모자 등으로 1920년대의 매력적인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1920년, 화려한 컬러의 오픈카가 유행하면서 남성 슈트는 블랙, 네이비, 그레이라는 한정된 컬러에서 벗어나 밝은 파스텔 톤으로 진화했다. 또한, 남성들은 초코 스트라이프와 볼드, 더블 브레스트 슈트, 슬림한 클래식 슈트를 선호했다. 브룩스 브라더스는 1920년대 스타일의 일상복과 파티복을 시작으로 보타이 등의 아이템을 선보이며 위대한 개츠비 남성룩을 완성시켰다. 또한, 브룩스 브라더스는 개츠비 컬렉션을 론칭하여, 매장과 온라인에서 개츠비 컬렉션 의상을 판매하기도 했다.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는 헵번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 1953)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은 지방시와의 만남을 통해 패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프랑스 귀족 출신인 지방시는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Sabrina, 1995)에 출연할 때부터, 헵번의 스타일을 담당했다. 사브리나 속 오드리 헵번의 주요 의상으로 꼽히는 블랙 테일러드 수트와 꽃무늬 튜브 톱 드레스가 대표적인 지방시의 작품이다. 또한, 사브리나에서 오드리 헵번이 착용한 시가렛 팬츠는 ‘사브리나 팬츠’라고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외에도 지방시는 하오의 연정(Love In The Afternoon, 1957)과 퍼니 페이스(Funny Face, 1957),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1961) 등에서 헵번만의 스타일을 완성시켰다.


이 외에도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와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 1980)에서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의 의상들을 선보였으며, 디자이너 장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가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1989),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The City Of Lost Children, 1995), 나쁜 교육 (Bad Education, 2004)의 의상 제작에 참여하는 등 많은 디자이너가 영화 의상 제작에 참여했다.


스타일로 자신의 창조력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디자이너들. 그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의상을 제작하며 캐릭터들이 대사만으로 전하지 못했던 의미를 옷으로 표현하게 도와준다. 또한, 자신이 직접 영화 속 주인공이 돼 타인에게 영감과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코코 샤넬의 말처럼, 다수의 디자이너가 영화를 통해 선보인 스타일은 영원히 영화를 통해 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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