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스윙보터’ 세대의 등장
[이슈메이커] ‘스윙보터’ 세대의 등장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4.27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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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스윙보터’ 세대의 등장

차기 대선 전초전으로 불렸던 4·7 재·보궐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국민의힘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를 동시에 탈환했고, 최근 5년간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승을 거뒀던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재창출에 빨간불이 드리워졌다. 이번 선거 결과와 함께 주목받은 점은 ‘MZ세대’의 두드러진 표심이다. 이 세대 유권자들은 내년 대선에서도 스윙보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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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위선에 ‘비토’로 답한 20대
그동안 진보 진영의 든든한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20대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당에 몰표를 주며 여당 참패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선거 당일이던 지난 4월7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 20대 남성 유권자의 72.5%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오 후보에 투표했다는 20대 남성 비율은 50대 남성(55.8%)은 물론 보수 성향이 뚜렷한 60세 이상 남성(70.2%)보다도 높았다.

30대 남성 역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32.6%)의 두 배에 육박하는 63.8%가 오 후보를 뽑았다고 답했다. 30대 여성에서도 오 후보를 찍었다는 응답(50.6%)이 박 후보(43.7%)에 앞섰다. 박 후보가 오 후보를 이긴 건 전 연령대와 성별을 통틀어 40대 남성과 20대 여성뿐이었다.

20대 유권자들은 지난해 총선에서 남성은 여당에 47.7%를, 여성은 63.6%의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이던 2017년 6월 여론조사에서도 20대 남성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40대 남성(89%)과 비슷한 87%에 달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동안 진보 진영의 든든한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20대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당에 몰표를 주며 여당 참패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KBS 뉴스화면 갈무리
그동안 진보 진영의 든든한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20대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당에 몰표를 주며 여당 참패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KBS 뉴스화면 갈무리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에선 2030 세대가 문재인 정부에 거센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정권 초기 주 52시간 근무제와 최저임금 정책, 청년실업 대책 등에 지지를 보냈지만 현재는 극심한 취업난과 집값 급등 상황 속에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이 터지며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더욱이 2019년 ‘조국 사태’ 등 공정성 논란에 더해 ‘김상조·박주민’ 사건, 이번 서울시장 보선이 치러지게 된 이유인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과 같이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 논란까지 더해지며 분노가 꾸준히 축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역시 20대 남성들은 또 하나의 내로남불로, 20대 여성들은 남성 권력의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작년 총선 직후인 2020년 5월 40%를 기록했던 20대의 여당 지지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해 올해 3월에는 28%까지 떨어졌다. 집권 여당이 이 같은 추세를 애써 무시했지만 20대의 여당 이탈 추세는 지속해서 진행된 셈이다.

 

지상파 방송 출구조사 결과 서울 20대 남성 유권자의 72.5%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지상파 방송 출구조사 결과 서울 20대 남성 유권자의 72.5%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문재인 정부 이후 갈라진 남녀
또한 이번 선거에서는 20대 성별 간의 극명히 표심도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20대 남성의 경우 오세훈 시장에게 보인 지지율이 72.5%에 달했고 여성의 경우 40.9%로 무려 31.6%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이는 60세 이상 남녀 간 차이인 3.1%포인트의 10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40대와 50대 남녀 지지율 격차 4.4%포인트, 6.1%포인트와도 확연하게 다른 양상이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이후 극심해진 ‘젠더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 기점은 주로 2018년 불법촬영 편파수사 반대를 주장하며 젊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냈던 ‘혜화역 집회’가 꼽힌다. 이후 많은 20대 남성 유권자들은 오히려 정부와 집권 여당의 여성 친화적 정책으로 인해 ‘역차별’ 감정을 느꼈다고 반박하며 갈등이 극심해졌다. 아버지 세대라면 몰라도 적어도 자신들은 남성으로서 수혜를 입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급진적 주장을 하는 여성 커뮤니티나 성 관련 사건의 편파수사 논란 등도 남성들의 표심 이탈을 불러왔다. 올해 초에도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논란과 남자 아이돌을 애정 관계로 엮어낸 2차 창작물 ‘알페스(RPS)’ 이슈가 터지며 성별 갈등이 크게 비화된 바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20대 유권자를 폄하한 발언들도 문제가 됐다. 지난 2019년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두고 “교육을 제대로 받았나 하는 의문이 있다”(설훈 의원)고 힐난하거나 “거의 60∼70년대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적대의식을 심어줬기 때문”(홍익표 의원)이란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박영선 후보 역시 선거 유세 중 20대 지지율이 낮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자 “20대의 경우 과거의 역사 같은 것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보다는 경험치가 낮지 않나”고 답해 논란을 자초했다.

오 시장 캠프에서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았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선거 이후 페이스북에 “2030 남성의 표 결집력을 과소평가하고,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하다 나온 결과”라며 “성 평등이라고 이름 붙인 왜곡된 남녀 갈라치기를 중단하지 않으면, 20대 남성 표가 갈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즘”이라고 반박하며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 전 교수는 “국민의힘 내에 여성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안티 페미니즘’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고 지적하며 “이대남 표심 얘기만 떠들어대고, 이대녀 표심 얘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남성우월주의 사회가 여실히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여성계는 20대 여성 표의 15.1%가 거대 양당을 향하지 않고 ‘회색지대’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당
여성계는 20대 여성 표의 15.1%가 거대 양당을 향하지 않고 ‘회색지대’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당

 

15.1%의 회색지대, ‘젠더’에 투표한 20대 여성
여성계는 20대 여성 표의 15.1%가 거대 양당을 향하지 않고 ‘회색지대’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20대 남성(5.2%)은 물론 60대 여성(0.4%), 30대 여성(5.7%)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20대 여성들은 민주당에 성범죄 귀책사유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국민의힘 남성 후보보다는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또한 성 평등 정책이 여성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니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군서정당 후보들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의당 김진아, 기본소득당 신지혜, 무소속 신지예, 진보당 송명숙 후보는 양당 후보와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에 이은 4~7위에 자리했다. 이에 대해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성인지 감수성, 젠더 감수성이 가장 민감한 사람들이 20대 여성”이라며 “이번 선거를 왜 하게 됐는지 질문을 던지고 기존의 여야 구도 외에도 다른 대안에 관심을 갖자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다만 젠더 갈등 양상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10∼11월 만19∼34세 청년 6,5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작성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청년 남녀 간 성 평등에 대한 인식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74.6%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한 반면 남성 51.7%는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우리 사회가 여성 또는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20대 초반(19~24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한편 지난해 9월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서울연구원의 조사에서도 20대는 가장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남녀갈등을 꼽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대의 젠더 관련 인식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이어진다. 성 평등 관련 정책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신중하고 균형적으로 수립해 남녀 모두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유권자의 표심 변화에 주목하며 청년들과 접점을 넓혀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는 방침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20대 유권자의 표심 변화에 주목하며 청년들과 접점을 넓혀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는 방침을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대남’ 잡아라, 구애 작전 펼치는 여당
여야 정당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대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선거 이후 민주당 2030 의원들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년간 어렵고 민감한 문제를 정부와 지도부 판단에 의존했다”며 “당의 관행과 기득권 구조, 국민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오만과 독선에 더 이상 눈감거나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청년들과 접점을 넓혀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도종환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온라인·오프라인 소통 채널을 모두 가동해 못다 전하신 민심을 듣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영대 민주당 대변인도 “공정과 정의 초석을 세우기 위해 내부부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대남’을 잡기 위한 구애 작전에도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대권 출마 의사를 밝힌 박용진 의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서 남녀 모두 100일가량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는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내놨고, 민주당 개별의원 차원에서도 군 가산점을 재도입하거나(전용기 의원), 군 경력을 인정하는 방안(김남국 의원) 등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분노한 표심을 잠시 달래기 위한 ‘보여주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약속이 현실적인 지원책보다는 민주당 당론이나 헌법재판소 심의 등을 통과하기 어려운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결국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없을 경우 20대 유권자들의 분노 표심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역시 안심하기는 어렵다는 표정이다. 여전히 높지 않은 20대 지지율이나 높은 비호감도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거대 양당들이 결과를 두고 제각기 해석을 하는 모습이지만, 득표에만 골몰하고 정쟁만 일삼는 기성 정치권의 실망스러움이 이어진다면 당장 내년 대선에서 20대가 어떤 표심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바야흐로 ‘스윙보터’ 세대가 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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