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최익성 대표
[단독 인터뷰]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최익성 대표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6.01.31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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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대한민국 대표 저니맨,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하다

“특성화 야구부 창단으로 후배 저니맨들의 날개가 되겠습니다”


 

 

 

 

저니맨(Journey Man)은 흔히 해마다 또는 자주 팀을 옮기는 운동선수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며 말 그대로 떠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팬들에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국내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저니맨’이라고 하면 최익성 선수를 떠올리지만 누구도 그를 실패자 또는 떠돌이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시련 속에서도 포기를 모르는 도전자로 기억될 뿐이다. 은퇴 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그가 이제 후배 저니맨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자 야구계로 돌아왔다. 2016년 2월 저니맨 인생 2막을 준비 중인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이하 사관학교) 최익성 대표를 이슈메이커가 만나보았다. 




Q. 2016년 3월 국내 최초 특성화 야구부 창단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를 창단하게 된 계기 무엇입니까?

- 그동안 사관학교를 운영하며 학생 선수들이 학교 야구부 입단 후 실력 저하와 부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야구를 그만두거나 유급과 전학을 반복하는 경우를 자주 접했기에 선배 야구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수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며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 국내에는 그간 전무했습니다. 저 역시도 늦은 나이에 야구에 입문하게 되었고 선수 시절 잦은 트레이드를 경험해왔습니다. 그 누구보다 이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선수들에게 개별 맞춤형 프로그램 도입해 남모를 상처를 가진 선수들에게 패배자, 실패자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더 높은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특성화 야구부를 창단하게 됐습니다.

 

Q. 선수 선발과 코칭스태프 구성 등 지금까지의 창단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 지난 12월 학부모들과 선수들이 함께하는 1차 창단 설명회 개최 이후 창단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선수 구성의 경우 나이에 상관없이 17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며 모든 선수에게 개개인의 장점을 살린 맞춤형 특성화 교육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코치진의 경우에도 현역시절 통산 100승을 기록한 이상목 선수가 투수 수석 코치로 확정되었고 초대 경찰청야구단 감독인 김용철 한국다문화야구연맹회장님이 육성자문위원으로 함께합니다. 또한 메이저러그 스카우트 출신인 김태민 씨가 총괄 디렉터를 맡으며 미국식 교육을 접목해 선수들을 케어하고 선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자 합니다. 이 밖에도 많은 프로야구 출신 선수들과 전문가들이 인스트럭트로 참여하여 교육자문과 디렉터 역할을 맡으며 최고의 교육 시스템을 위해 함께 할 예정입니다.

 

Q. 특성화 야구부를 창단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 해외에는 유사한 사례가 많았지만 국내에는 이와 같은 포맷이 전무한 상황이다 보니 A부터 Z까지 모든 세팅을 직접 해야 하는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해외 사례를 연구·분석하여 벤치마킹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또한 학부모와 선수들의 인식 개선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야구만은 다른 종목과 연예계와는 달리 아직도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특성화 야구부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함에도 지금까지 한 길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선수들은 다른 방향을 선택하는 것에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Q. 특성화 야구부의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기존 사관학교의 프로그램과 달라지는 부분은 많은 경기를 통해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팀 훈련 위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개인 훈련이 수반되지 않으면 팀 훈련에 참여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개인 실력을 향상 시키는 부분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 센터에는 훈련장, 트레이닝장, 상담실 그리고 숙소까지 갖춰져 있기에 선수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과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재활을 겸하는 선수들에게도 전문 트레이너가 붙어 재활 전 과정을 관리합니다. 또한 기존의 실패 요인과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스포츠 심리, 운동역학, 투타 매커니즘, 트레이닝, 건강관리 등의 세부과정을 커리큘럼에 추가했습니다.


 

 

Q.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나이에 야구에 입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구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이며, 본인이 생각하는 선수 시절의 전성기는 언제인가요?


- 대부분의 야구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체계적인 야구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그러한 선수 중에서도 일부만이 프로에 진출하고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보다 많이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를 접하게 됐습니다. 고향인 경주가 야구 불모지였기에 야구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았지만 야구계에 오랫동안 종사해왔던 아버지의 권유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늦게 사직한 만큼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계명대를 졸업 후 1994년 신고 선수로 어렵사리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1997년 제 야구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시즌 전 경기를 소화한 것도 해당년도가 처음이었고 20-20 클럽(홈런 20개, 도루 20개 이상)까지 달성하여 미디어와 팬들의 관심과 응원도 가장 많이 받은 시기입니다. 

 

Q. 선수 생활 중 6번의 유니폼을 갈아입었으며, 이는 아직도 국내 프로야구에서 최다 기록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중 본인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구단이 있을까요?


- 많은 팬이 알고 있듯이 저는 삼성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한화, LG, 기아, 현대, 삼성, SK까지 일곱 팀의 유니폼을 갈아입은 대한민국 대표 저니맨이었습니다. 제가 거쳐 간 팀 모두가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저 역시도 이 팀들에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999년 야구 인생 통틀어 첫 우승을 경험한 한화 이글스, 선수생활의 마지막이었던 SK 와이번스도 있지만 역시나 처음 입단해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하고 선수 생활의 황금기를 누렸으며 힘든 시기에 저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 준 삼성 라이온즈에 지금도 가장 큰 추억과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삼성라이온즈 OB 모임의 창립 준비 위원회 발족을 위해 오랜만에 많은 선후배가 한 자리에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Q. 본의 아니게 다양한 팀을 옮겨 다니며 고난과 시련도 겪었지만 돌이켜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 6번의 트레이드를 경험했음에도 그때마다 팀 분위기 적응과 경쟁 상황 등 어려움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특히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지만 팀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어느새 정신적은 부분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 누구보다 멘탈은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지금의 사업을 할 수 있는 모태가 되고 자산이 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구단의 운영을 지켜봐 왔기에 야구육성사관학교를 운영하는 부분에서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Q. 현역 활동 중 자신만의 야구 철학은 무엇이며 본인에게 야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 저는 오로지 하나만 봅니다. 스윙 하나, 안타 하나에 집중하고 오늘이 없으면 내일이 없듯이 항상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수 생활에 임했습니다. 더욱이 프로의 세계에서는 엘리트와 비엘리트가 있기 마련인데 극소수의 엘리트를 부러워하기보다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잡을 수 있는 기량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저에게 야구란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입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도 이를 후배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으며 좋은 것은 물려주고 나쁜 것은 타파할 생각입니다.

 

Q. 본인의 선수 생활에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을 줄 것이며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 99점을 주고 싶으며 마지막 1점은 아쉬움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에 맞춰 자신을 평가하기 마련인데 이보다도 본인만의 확고한 성공 기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선수들과 출발과 환경이 달랐지만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고 굴하지 않는 선수 생활을 보냈습니다. 틀린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았기에 저의 선수 생활은 성공적이었다고 자신합니다. 그렇기에 팬들에게도 투지 있는 선수, 거침없는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며 팬들 역시 최익성이라는 선수를 보고 느낀 그대로 받아들여 줬으면 합니다.

 

Q. 은퇴 이후 야구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은퇴 이후 몇 년간 야구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며 배우고 싶었고 스스로 일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업에도 도전하고 방송 생활과 연기자 생활도 병행했으며 직접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야구계로 돌아가는 시점을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을 때라고 정했기에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야구에 관련된 활동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Q. 트레이드마크가 된 저니맨은 최익성 대표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 선수 생활 당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저니맨이란 별명이 미칠 정도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이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저에게 저니맨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으며 지금의 성공으로 이끈 길잡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저를 대한민국 대표 저니맨으로 만들어 줬으며 밑바닥부터 시작해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가 저니맨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나설 때 이를 실패자의 이름이 아닌 도전 정신이 살아있는 이로 만들기 위한 사명감도 생겼습니다. 제가 성공을 해야 또 다른 저니맨들도 저를 보고 힘들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2016년 앞으로의 목표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 2015년은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였으며 올해는 사업가로서 자리 잡게 될 중요한 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을 지어야 할 중요한 시점이며 큰 계획들이 연이어 준비되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역량을 집중하고자 합니다. 이제 야구 선수 최익성의 삶은 끝났습니다. 선수 생활 당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돌풍을 일으켰던 것처럼 야구 산업 CEO로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줄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은퇴 후 10년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살아왔으며 올해가 8년째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며 또 다른 길을 가는 저를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Q.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저니맨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있을까요?


- 흔히 인생은 짧다하지만 생각보다 길기도 합니다. 가끔은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하는 것도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가끔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 길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2016년 새해에는 좌절과 실패가 아닌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저니맨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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