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무너진 정의, 들끓는 민심
[이슈메이커] 무너진 정의, 들끓는 민심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1.04.13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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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무너진 정의, 들끓는 민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 전국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급기야 LH 해체와 3기 신도시 철회 요구가 확산하는 등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까지 흔들리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엄정 대처’를 선언하며 정부합동조사단을 통해 투기세력을 색출해내고 있지만 분노한 민심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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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약한 처벌 속 대담해진 범죄행위
2009년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으로 창립한 LH는 ‘국민주거생활의 향상과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여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존재이유로 두고 있다. 하지만 LH를 둘러싼 작금의 모습은 이와는 동떨어져 있다.
 
지난 3월2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자회견을 열어 LH 직원 10여 명이 광명·시흥 지역의 토지를 3기 신도시 지정 발표 전에 무더기로 사들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단순투자가 아니라 신도시 개발 사전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당 직원들의 땅 구입 시점과 융자 확보 경로, 이들이 구입 시 제출한 영농계획서, 땅에 경작한 각종 묘목이 상세하게 보도되면서 ‘투기의 교과서’라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에 대해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LH 직원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중대사안”이라며 사과했다. 정부는 정부합동조사단을 꾸려 주요 유관 기관과 부처 직원의 토지 거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급한 대로 국토교통부 공무원 4,500여 명과 LH 직원 9.900여 명 등에 대한 조사 결과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11일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13명 외에 7명이 더 늘어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다른 3기 신도시 지역에서도 유사한 투기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적발된 이는 모두 LH 직원으로 현재 수사 단계로 이첩되었다.
 
 
야권은 LH 직원들이 땅 투기에 나섰던 시점과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사장 재임 기간이 일부 겹치는 점을 지적하며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야권은 LH 직원들이 땅 투기에 나섰던 시점과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사장 재임 기간이 일부 겹치는 점을 지적하며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여기에 경기 용인 반도체 클리스터부터 부산 가덕도까지 공직자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수사의 칼날을 고위 공직자 등으로 겨누고 있다. 이미 “(수사대상에) 국회의원 3명이 포함됐다”는 언급도 나왔다. 이미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모친이 경기도 광명시의 신도시 예정지 인근 땅을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고, 김경만,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본인 또는 가족이 각각 시흥장현 공공택지지구와 화성비봉 공공택지지구 인근에 땅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재직자, 정치권 인사까지 투기 의혹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다면 법을 위반하고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투기 의혹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고 참담한 사건”이라며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야권은 LH 직원들의 일탈 행위를 비판하면서, 이들이 땅 투기에 나섰던 시점과 변창흠 국토부 장관의 LH 사장 재임 기간이 일부 겹치는 점을 지적하며 책임론을 꺼내들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LH 직원들이 사전에 어디가 신도시가 될 거라는 것을 예측을 했든지 비밀을 사전에 알았든지 해서 개인적 이익 취득하기 위해 묘목도 심고 보상을 전제로 했다”며 “검찰이 철저히 조사를 해서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부동산 투기 근절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적반하장 태도로 논란 키워
이와 같은 문제는 현행법으로 공직자나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를 막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 종사자가 내부 정보를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또한 ‘부패방지법’에도 공직자가 업무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몰수나 추징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이 피의자가 내부 정보를 불법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업무상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기실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과거 1·2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도 대규모 부동산 투기와 땅값 폭등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당시 시작한 1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문제가 터져 검찰이 이듬해부터 2년 간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 명을 적발한 바 있다. 또한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2기 신도시 개발 때도 투기 문제는 재현됐다. 검찰은 2005년 ‘부동산 투기 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이들을 잡아들였다. 그 중 공무원 27명이 포함됐지만 제대로 된 처벌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과 박탈감에 쌓여있는 상태에서 LH 사태가 터지며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 분석한다. ⓒ청년진보당 페이스북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과 박탈감에 쌓여있는 상태에서 LH 사태가 터지며 민심이 폭발한 것이라 분석한다. ⓒ청년진보당 페이스북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적반하장 태도도 전해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해당 회사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받아야만 가입과 글 작성이 가능한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LH 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서 물 흐르듯 지나가겠지”라며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투기 의혹에 분노한 농민들이 경남 진주에 위치한 LH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자 LH 관계자가 “8층이라 하나도 안 들려 ‘개꿀’(너무 좋다)”이라고 조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충모 사장 직무대행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던 당일에도 한 추정 직원은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마란(말란) 법 있나요”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국민적 공분이 커지며 조직을 해체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11일 “LH의 신뢰회복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해체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18일 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LH 혁신에 절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차원에서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가하겠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16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16일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청와대

 

무너진 정의, 부패의 고리 끊을 수 있나
LH 직원들의 투기 논란이라는 악재가 터지며 여권의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취임 후 최저치’라는 초라한 여론조사 성적표를 받았다. 리얼미터의 발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34.1%, 민주당 지지도는 28.1%로 각각 나타났다. 두 지표 모두 지난 1월1주 조사보다 낮은 최저치다. 지난 3월19일 발표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 37%, 부정 55%로 문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나쁜 수치를 나타냈다. 더욱이 정부·여당의 어설픈 ‘물타기’ 시도도 민심 이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왜 LH 사태에 이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부동산 정책 실패를 첫 손에 꼽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도권 아파트값과 전셋값이 폭등하며 많은 국민들이 상실감과 박탈감에 쌓여있는 상태에서 LH 사태가 터지며 폭발한 것이다.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임운택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세대는 ‘영끌’해서 주식투자를 하는 등 위험을 감수하고 자산을 불려나가는데, LH는 내부 정보로 수십억의 이익을 부당하게 올린 셈”이라며 “업무를 가지고 투기를 한 LH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우려스러운 것은 요란스럽게 쏟아진 의혹에도 재발방지 대책의 상당수는 국민 분노를 잠재우기엔 미흡한 수준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당정은 부동산 개발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해 땅 투기를 하는 공직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고 이들이 얻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은 몰수·추징하는 내용의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땅 투기를 한 공직자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이나 그 이익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리게 하고, 취득한 재산을 몰수 또는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번 3기 신도시에서 땅 투기를 벌인 LH 직원 등의 공직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몰수나 추징, 혹은 형벌의 소급효가 인정되는 것은 친일·부패행위로 취득한 재산 같은 것이라 투기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서다.
 
이번 사태는 공직자 윤리나 사회 정의의 차원을 넘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이슈로도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며 거센 분노를 표출한 국민들에게 과연 정치권은 반칙과 부패라는 고리를 끊을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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