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성장을 거부하는 기업들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성장을 거부하는 기업들
  • 임성희 기자
  • 승인 2011.12.22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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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피터팬증후군(Peter Pan Syndrome)은 육체적으로는 성숙해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어린이로 남아 있기 바라는 심리를 가리키는 말로 피터팬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은 성인이 됐어도 어린이로서 대우받고 보호받기를 원한다. 요즘에는 이 말이 정부의 보호만을 바라는 기업을 일컫는데 쓰이기도 한다. 특히 6, 70년대 경제개발시대를 거치는 동안 정부의 보호육성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이 겉으로는 자율화, 규제완화를 주장하면서도 위기를 맞을 때 마다 정부의 보호막을 요구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용어로 사용됐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성장을 거부하는 중소기업들로 우리나라의 경제는 적색신호가 켜졌다.

 

중견기업들의 하소연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의 성장 단계는 중소-중견-대기업 순으로 진행되지만 중견기업은 점점 줄어들고 성장을 거부하고 중소기업에 안주하려는 ‘피터팬 기업’이 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중소기업 보호정책은 쏟아내는 반면 중견·대기업 규제는 많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견기업 대표들은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웠더니 대기업과 똑같은 규제를 받고, 중소기업 지원 혜택 160개가 사라졌다”며 “누가 중견기업을 하겠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종태 퍼시스 사장은 “중소기업에서 졸업하면 정부 조달시장에 잔류할 수 없어 지난해 말 교육가구를 분할해 '팀스'를 세웠다”며 “사무가구와 교육가구를 더하면 공공부문 시장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면 사업을 그만 두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협력업체를 포함한 2500여 명의 직원들을 어떻게 하나 고심하다 결론을 내린 게 법인 분할이었다”고 토로했다. 2011년 3월 개정된 '산업발전법'은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났지만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중견기업은 제조업 분야 상시근로자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중소기업기본법)인 중소기업이 받는 혜택에서 모두 제외된다. 국내 중견기업은 현재 300만개 사업체 중 0.04%인 1200여개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 이희상 위원장(운산그룹 회장)은 “중소기업 범주를 넘어섰지만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 및 가업 상속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대기업이 되고 싶지 않은 160가지 이유’라는 글에서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 때 받던 지원혜택 160개가 사라지고 대기업 규제만 늘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중견기업을 하겠느냐”고 일침을 놨다. 한국의 기업 규모 분포는 밑이 넓고 허리가 가는 첨탑형 구조로 굳어졌다. 대기업 비중이 낮고 중견 기업층은 얇으며 소기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인구 1만 명 당 소기업(종업원 50인 미만 기준) 수를 계산해보면 한국은 9.7개로 일본(5.8)과 독일(7.1)보다 많다. 반면 인구 1만 명 당 대기업(종업원 500인 이상 기준) 수는 0.07개로 일본(0.14)의 2분의1, 독일(0.21)의 3분의1에 불과하다. 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1994년 중소 제조업체 5만 6472개 중 10년 후인 2003년 말 종업원 300인 이상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업체는 75개(0.1%)에 불과하다. 기업 구조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IBK 경제연구소가 우량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응답 기업인의 55%는 사업 축소나 외형확대 포기 등의 방법으로 중소기업에 남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능력이 있고 성장의 기회가 있어도 기업을 키우지 않겠다는 얘기로 이게 바로 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견기업위원회 이희상 위원장(운산그룹 회장)은 “중소기업 범주를 넘어섰지만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 및 가업 상속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대한상의 제공)

일방적 지원보다는 시장경쟁 촉진해 자생력 키워줘야

우리 정부의 대처는 너무 수박 겉핥기식이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키우겠다며 연일 대기업을 채찍질하고 대중소 동반성장,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 요란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문어발식 사업확장 등 대기업이 책임질 일도 있지만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보호한다’는 단편적이고 왜곡된 정책 기조가 더 큰 문제다. 병의 뿌리를 그대로 둔 채 곁가지(대기업)만 건드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산업계의 피터팬 증후군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법인세율 차등(대기업 22%, 중소기업 10%), 특별세액 감면(20∼30%), 중소기업 대출의무비율 제도, 공공기관 입찰 우대 등 160여 가지의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졸업하는 순간 이 혜택은 모두 없어지고 공공시장 참여제한, 사업조정 등 50개 법률에서 190개의 규제를 받게 된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정책보다는 시장경쟁을 촉진해 기업 스스로가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정한 중소기업 육성정책이 대·중소기업 간 또는 중소기업 간 경쟁을 왜곡시킨다고 판단, 공정 경쟁이 가능한 시장 환경을 만들고 그 바탕에서 중소기업의 혁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위해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기업인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 졸업제’ 도입이 돌파구 될까?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중단하는 졸업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지원 상한제가 시행돼 중복 지원도 없어진다. 기획재정부는 2011년 11월 22일 박재정위험관리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 지원사업군 지출효율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없애기 위해 재정지원 졸업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지원 기간과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 한정된 중소기업 지원 자금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일몰제를 도입해 실효성이 낮은 지원부터 줄이거나 폐지하기로 했다. 신설 또는 강화되는 모든 중소기업 재정지원 사업의 존속 기한을 정한 뒤 기한이 끝나면 자동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부분 중소기업 지원사업이 수혜 기간 등에 제한이 없다 보니 한계기업을 계속 지원하게 돼 퇴출이 지연되고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재정부에 따르면 2009년 50~99인 규모의 중소기업은 1997년에 비해 52.9% 늘었지만 300~999인 중견기업은 12.1% 증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1000인 이상 대기업은 오히려 15% 감소했다. 성장을 하게 되면 중소기업 혜택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견·대기업 수가 늘어나지 않는고 기업의 피터팬 증후군만 키운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내놓은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의 성장 단계별 재원배분 비율도 조정된다. 창업기에 있는 기업과 창업 후 6~9년이 된 성장기 기업 위주로 재정투자를 시행하고, 창업 후 10년 이상 된 안정기 기업에는 민간시장을 활용하도록 간접 지원할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5년 이하 창업기와 10년 이상 안정기 이후 기업에 지원이 집중됐다.

정부는 또한 재정지원 상한제를 도입해 특정기업에 재원이 집중되는 것도 막기로 했다. 부처 간 또는 중앙과 지자체 간 유사·중복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 기업이 각 부처의 여러 사업 또는 동일 부처의 사업을 중복으로 지원받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재정부는 지식경제부, 고용노동부, 중소기업청에 인력지원 사업이 지경부와 중기청에는 연구개발 사업이 유사·중복된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 7억 6000만원인 한 중소기업은 중기청, 지경부, 통계청 등 4개 재정지원 사업에서 매출의 절반 수준인 3억8000만원을 지원받은 사례도 있었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담당 기관의 지원 대상 선별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원받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 재무적 경영성과를 비교 평가할 수 있는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지원 사업과 수혜기업별 이력 사항을 통합관리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기로 했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었던 피터팬 증후군 기업들이 이번 정책을 계기로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정부는 탁상공론식의 무조건적인 제재보다는 현장을 잘 파악해 기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정책에 반영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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