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성우 박지윤
[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성우 박지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0.12.07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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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겨울을 따뜻하게 감싸는 청량한 목소리

 

언제부턴가 매년 겨울이 되면 하얀 눈과 함께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한편 있다.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겨울왕국(Frozen) 시리즈다. 생동감 넘치는 그림체와 흥미진진한 스토리, 그리고 귀를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노래 선율로 아이들은 물론 부모 세대까지 매력에 빠지게 한 겨울왕국 시리즈의 국내 흥행은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의 심경을 오롯이 목소리로만 표현해낸 성우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 중 아렌델 왕국의 두 공주 중 천진난만한 공주 ‘안나’ 역할로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성우 박지윤과의 진솔한 이야기를 이슈메이커 12월호를 통해 전해본다.

 

 

성우 박지윤사진=김남근 기자
성우 박지윤
사진=김남근 기자

 

반갑습니다. 이슈메이커 독자분들과 팬분들에게 안부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우 박지윤입니다. 감사하게도 매년 겨울이 되면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때문에 저를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한해가 어떻게 간지도 모르게 금방 지나간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1년이라고 표현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반드시 나아져야 하고, 돌아오는 2021년을 위해 올겨울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를 기다리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최근의 근황을 들려주세요.

“올해는 다른 해보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았어요. 돌아보면 그동안은 성우 박지윤보다 엄마 박지윤으로 정신없이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케어하며 제 일을 하고 싶은 만큼 몰두하지 못했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째는 드디어 10대가 되었어요. 부쩍 자라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지?’라는 물음에 잠시나마 답을 구할 수 있었던 시간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성우라는 직업이 제 인생의 마지막 직업일 줄 알았는데, ‘만약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것도 시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유튜브를 시작했고, 성우로서 다양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겨울왕국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겨울왕국과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3년은 저에게 가장 힘들기도 했던 해이자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진 해이기도 해요. 제 아버지(故 박용식)께서 별세하신 해이고, 사랑스러운 둘째가 태어나기도 했죠. 그리고 겨울왕국과의 인연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겨울왕국 이야기를 하려면 아버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아버지와의 스토리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아버지는 연기자셨지만, 가부장적인 면이 많으셨습니다. 친오빠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엄한 오빠셨죠. 그래서 저는 항상 FM으로 자라왔던 것 같아요. 저를 그저 박지윤으로 부르지 않고 배우 박용식의 딸로 바라보았기에 제 행동에 항상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다고 어려서부터 내면에서의 끼가 자라나고 있었어요. 하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죠. 아버지의 반대가 있으셨거든요. 당신이 직접 경험해보니 만만치 않은 곳임을 알았기에 자식들은 이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저의 끼를 표출하는 것조차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어릴 때부터 합창단, 중창단, 통기타반 등을 경험하며 노래에 소질이 있었던 저는 가족들과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면 아버지께서는 ‘잘하는데, 가족들 앞에서만 불러라’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그렇게 청소년기를 거치며 주위 친구들은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답니다”

 

 

“‘성우들도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대중들에게 편하고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성우 박지윤
“‘성우들도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대중들에게 편하고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성우 박지윤

 

그렇게 노래와의 인연이 끝났나요?

“아니요. 사실 저는 대중가요를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입 밖에 꺼내기도 무서웠죠. ‘내가 노래를 하며 대중들 앞에서 설 방법이 무얼까’라고 고민하던 중 ‘성악’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어요. 어머니와 함께 오디션을 봤고 소질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길로 저는 당장 아버지에게 달려가 성악을 하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시더니 ‘열심히 해봐라’라고 하셨어요. 너무나 기뻤지만, 그 말씀 뒤에 ‘재수는 못 시켜주니 1년은 열심히 밀어줄 테니 해보고, 만약 떨어지면 점수에 맞춰 대학에 입학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시 저는 고3이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남짓이었죠. 그래서 정말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습니다. 레슨에서 돌아오며 눈물도 많이 흘렸죠. 늦은 만큼 노력했고 그만큼 부담도 컸던 것 같아요. 다행히도 운이 좋았는지 성신여자대학교 성악과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당당히 뭔가를 말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거죠. 그때부터 아버지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기억나는 게 ‘아빠, 우리가 아빠 자식이니까 이쪽(연예계)으로 소질이 있지, 아빠가 박사였으면 우리도 그쪽으로 갔겠지’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서울고등학교를 나오신 아버지 친구분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고 있었거든요. 아버지는 ‘허허’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고명딸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위아래로 오빠와 남동생이 있어요. 중간에 낀 고명딸이죠.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유독 예뻐하셨던 것 같아요. 오빠와 동생은 아버지의 의견을 단 한 번도 거역하거나 이유를 단 적도 없었는데, 저는 대학 진학과 함께 할 말은 하고 장난도 치며 더 예쁨을 받았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을 때 삼 남매 모두 힘들어했지만, 유독 오빠와 남동생은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생전에 더 많은 추억을 남기지 못했던 게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故 박용식 선생님의 별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울왕국과의 인연이 시작되셨나요?

“네. 맞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아버지에게 의지를 많이 했던 터라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출산 직후였기에 몸도, 마음도 회복이 힘든 상태였죠. 그리고 성우라는 직업 특성상 녹음할 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용기도, 힘도 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라푼젤’ 때 인연이 있던 감독님께 오디션 제의가 왔습니다. 상황을 핑계 삼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오디션 준비를 했습니다. 처음 받아본 대본에서 ‘공주’ 역할을 보고는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는데, 하얀 종이 위에 간단한 스케치와 함께 펼쳐진 장면과 대사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장면은 겨울왕국1의 초반 부분에 나오는 ‘대관식 날 아침’ 장면이었어요. ‘이 작품 뭐지! 욕심이 난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원래 작품이나 역할에 욕심이 없는 편이었는데도 말이죠. 캐릭터 전체의 스토리나 작품 스토리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무언가에 홀린 듯 가슴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달 뒤의 일이었어요”

 

아버지께서 큰 선물을 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겨울왕국 안나 역할은 저에게 큰 도전이자 기회였습니다. 사실 겨울왕국 이전의 디즈니 작품 더빙에 성우가 노래도 한 경우는 드물었었어요. 지금은 많이들 그렇게 진행되지만, 당시는 생소했었죠. 그렇기에 만약 녹음 때 제가 잘 해내지 못하면, 이 시도는 그냥 시도에서 그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녹음 당일 목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초인적인 힘으로 6~7시간의 녹음을 진행했어요. 그렇게 겨울왕국1의 더빙 버전이 개봉하게 됐고,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노래 하나하나가 정말 명곡이었고,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의 음색과 노래의 음색이 같았기에 작품을 보고 듣는 이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는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어요”

 

겨울왕국 시리즈의 흥행 이후 방송과 라디오에서 종종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디오 게스트는 지금도 하고 있고,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비추는 등 많은 기회와 행운이 찾아왔어요. 너무 감사했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하며 느낀 점이 있어요. 성우라는 직업군에 대한 관계자들의 ‘어려움’이었습니다. 배우, 개그맨, 가수 등 방송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께서 아직 성우라는 직업군이 생소하셨는지 조금 대하기 어려워하시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호칭에 항상 성우님이 붙더라고요.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령 배우나 가수분들을 호칭할 때 ‘홍길동 가수님, 홍길동 배우님’이라고 하지 않잖나요? 하지만 성우에게는 아직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장벽을 허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장벽이 ‘성우를 성우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놓는 게 아닐까’라고 바라보게 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튜브도 시작하게 됐고, 동료 성우들과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성우 박지윤은 겨울왕국의 안나 오디션을 준비하며 캐릭터 전체의 스토리나 작품 스토리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는데도 무언가에 홀린 듯 가슴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사진=김남근 기자
성우 박지윤은 겨울왕국의 안나 오디션을 준비하며 캐릭터 전체의 스토리나 작품 스토리를 다 파악하지도 못했는데도 무언가에 홀린 듯 가슴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한다.
사진=김남근 기자

 

배우자인 성우 정형석님과의 캐미가 유독 눈에 띕니다.

“정형석 씨와는 부부캐미를 앞세운 ‘월드부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어요. 사실 개그맨 김영철 씨가 진행하시는 라디오에서 시작된 월드부부라는 애칭은 지금 유튜브 채널의 이름으로도 쓰고 있지요. 저와 형석 씨는 성격은 다르지만, 성향은 너무 비슷해요.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즐기죠. 부부가 함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해 코너를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도 유튜브 채널에서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고, 곧 선보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저희 둘 다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이 점을 장점으로 살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다만, 형석 씨가 EBS 라디오에서 ‘정형석의 밤의 라디오’를 밤 10시부터 진행하고 있어 서로의 사이클이 너무 달라져 있기에 어려움이 있지만, 도전에 대한 열정과 의지로 극복해 나가려 합니다”

 

자녀들도 두 분의 끼를 이어받았나요?

“제가 아버지께 끼를 물려받은 것처럼 아이들도 조금은 끼를 물려받은 것 같아요. 음악만 나오면 온 가족이 춤을 추기 시작해요. 처음엔 부끄러워했지만, 제가 아버지 밑에서 끼를 억누르며 살아왔던 경험이 있어 제 아이들에게는 그 끼를 가둬두지 말고 표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팬들의 연령대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비결은 무엇인가요?

“비결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는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가식 없이 솔직하게 임하고 있어요. 저는 그저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한 가정의 엄마이자 부인, 그리고 언니, 누나, 동생이라 생각하기에 ‘나랑 비슷하네’라는 공감이 호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남편 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와 정형석 씨가 부부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아요.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되면 ‘자연인과 안나가 부부구나’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시면서도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부부의 캐미가 팬층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계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성우이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저를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저를 알리고 성우라는 직업을 알릴 것입니다. 성우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성우들이 성우라는 틀에 갇히지 않도록 도전에 도전을 거듭할 계획이에요. 늘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지만 ‘성우들도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대중들에게 편하고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로서도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과 더 잘 지낼 거에요. 덧붙여 아내로서도 조금은 노력해야겠죠?(웃음)”

 

다가올 2021년을 맞아 새해 덕담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항상 저를 좋게 봐주시고 예쁜 눈으로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안나를 좋아해 준 어린 친구들이 훗날 청소년으로 성장해나갈 텐데, 혹여나 길을 가다 마주치면 편히 말도 걸어볼 수 있도록 SNS를 통해서 자주 소통해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항상 건강하고 힘든 마음 없이 모두가 다 잘 지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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